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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희 Sep 19. 2023

인상 깊었던

아침 9시부터 조깅을 하러 나왔다. 일요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소리치면서 아주 열정적으로 조정 타는 사람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뛰는 사람들, 강아지들이랑 여유롭게 공 던져주며 산책하는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커피 마시러 나온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했다.


인상 깊었던 사람들 중 한 명은 아이 생일인지 아침 일찍부터 놀이터에서 알록달록 풍선들을 불면서 파티를 준비하던 아빠였다. 일상 속에서 이렇게 아빠들의 높은 육아 참여도가 매번 느껴지는 호주이다. 아빠 혼자서 몇 개월 되지 않은 아기나 여러 아이들을 케어하는 모습은 꽤나 자연스럽다. 또 다른 인상 깊었던 점은 목줄 없이도 얌전하게 산책하는 강아지들이다. 어떨 때는 누가 주인인지도 모를 정도로 떨어져서 걷기도 하고 아예 들판에 풀어놓고 혀 내밀고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호수 옆이라서 그런지 갑자기 물에 뛰어드는 강아지들도 있는데 주인도 작정하고 같이 들어가기도 하고 아마 다시 목욕시킬 생각에 좌절하는 주인들도 종종 보인다. 그렇다고 호주 모든 곳에서 목줄 없이 다녀도 되는 건 아니다.



이번 주에 다시 비가 온다 해서 쇼핑몰에 가서 우산을 샀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다가 가게 앞 소파에 잠시 앉아서 쉬려는데 옆에 한 아이가 혼자 새끼강아지 한 마리를 품에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진짜 너무너무 귀여웠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더니 생후 6주 차였고 이제 막 입양을 받은 거였다. 그렇게 한 5분이 지났을까. 아이가 갑자기 부모님을 찾으러 가야겠다며 처음 보는 나한테 강아지를 맡겼다. 얼떨결에 강아지를 안게 되었고 난 그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아기강아지한테서 솔솔 풍기는 특유의 꼬순내가 너무 좋고 포근했다. 자고 있는데 아직 좀 떨림이 있었고 그 아이는 그게 좀 무서웠던 것 같다. 그렇게 동생을 포함한 모든 가족이 올 때까지 나는 계속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쇼핑몰을 나와 빅토리아 공원을 가려는데 아무리 지도를 살펴보아도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원래의 나라면 어디든 걸어서 나가보고 찾을 텐데 너무 덥기도 했고 여기서는 '웬만하면 물어보자' 라는 태도로 바뀌어서 옆에 짐정리하던 할머니한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보았다. 차가워 보였던 할머니는 갑자기 세상 밝아지면서 자기가 직접 보여주겠다며 나를 거의 안아주다시피 이끌고 골목으로 나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면서 내 뒤에 크로스백을 궁디팡팡 해주듯이 팡팡 쳐주는 것이 아닌가. 만약에 그 가방이 없었더라면 정말 궁디팡팡 해주실 것 같았다. 괜히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고 되게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고마운 순간이었다. 호주에서는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면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정성스럽고 자세하게 잘 설명해 주어서 구글맵을 열기보다 괜히 직접 더 물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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