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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훈 May 12. 2020

관점이 전부일 때가 많아

내가 '돈까스' 등으로 대중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때 난 그것을 말 그대로 조롱으로 생각했다.


다 잡아 족치고 싶었어.


'쓸데없는 선물 해 주기' 같은 문화를 다들 알잖아.


한 동안 이러한 유행이 있었어:


  보통 여자들이 많이 했었는데 내 사진들을 프린트해서 액자에 담고 다른 여자 친구들에게 선물을 많이 했다.


그러고는 그 액자를 들고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자신들의 sns 계정이 많이들 올렸다. 많은 경우에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태그 해서.


나에 대한 밈들이 너무 많아서 나 자체가 밈이 되어버린 줄 알았다. 생각해보자,


10대, 20대, 30대들이 sns에서 근 4-5년간 가장 많이 놀린 사람이 누구일까?


힘든 시기였다. 물론 당연히 내 책임이 제일 컸다.


난 입을 닫고는 절대로 못 산다.


하지만 음악으로 유명해지고 싶었지. 내 랩이 얼마나 멋있는지, 이런 예술은 지금까지 없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구자가 되고 싶어 했지, 언제나 그게 주가 되길 원해왔었지, 진정성이 있는 음악인이라면 거의 다 그렇겠지.


자만심 1도 없이 힙합과 젊은 사람들 문화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이룬 것을 팩트로 아는 나로서는


어린 친구들이 무지해서 하는 행동들이 너무 같잖고 멍청해 보였다. 되갚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왕따는 고함을 지르면 더 초라해질 뿐이다. 내 자존심은 회복이 필요했지만 폭탄 세례를 맞는 도시는 공격이 멈춘다 해도 회복기간이 이후에 당연히 필요하다. 건물도 다시 지어야 하고, 행정적인 체계도 다시 잡혀야 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버텼다.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내가 소유하는 음반 회사 중 하나인 '인디고 뮤직'

친구들과 회의를 하는 자리에 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까진 아니어도 몇몇은 진심으로 이런 나의 상황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밈이 많은 게 최고예요.'

'이건 인정이 담겨 있는 것이에요.'

'누구는 평생 못 알려져서 굶고 있는데..'

'사람들이 형을 의식한다는 말이에요.'


등등의 이야기를 들었고, 나의 뇌는 순식간에 쾌감이 엄청 담겨있는 확장이 되는 기분이었다. 타노스가 돌멩이 하나 건틀렛에 낄 때마다 느끼는 업 같다고 하면 느낌이 올까.


'어떻게 이렇게 멍청했지?'


'새로운 문들이 엄청 열리네.'


그때부터 나는 이런 상황을 반기며 즐겼고,

나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드는 데에 도가 트기 시작했다.


물론 미리 인정하는데 항상 여유만만하지는 않았다.


가끔은 쿨을 잃었다.


가끔은 누구를 고소한다고 개인적으로 연락도 했다.


내 신념과는 위배되는 행동들을 했다.


난 누가 다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함부로 막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아이나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예외로 둬야 한다고 믿는데, 이것은 누구나 특히 이 시대에는 꼭 생각해야 할 주제라 글에 포함한다.


어쨌든 시대의 파도가 적어도 지금은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을 느낀다.


신선한 관종이 이기는 시대다.


염따, 한요한, 그리고 예쁘고 잘 생겼는데 새롭고 섹시하게 춤을 출 줄 아는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따라 하듯이.


난 내 새 정체성을 껴안고 나의 일부로 환영하며 받아들였다.


내 운명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밈을 창조하는 전문가들도 나를 못 따라오는 경우가 있다.


밈 문화에서 난 새로운 예술/문화에 1등을 해봤거나 지금 1등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차트에서 2주 가까이 일등 했다.


돈까스 판매량이 나 때문에 올라갔다는 식으로 쓴 가사를 썼었는데,


그 가사가 담긴 노래가 발매됐을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내가 망상환자 아니냐며 조롱했지만 그 똑같은 사람들은 지금도 그럴까.


무언가를 1등 한다는 것은 그게 거의 무엇이 되어도 그것을 이루어낸 사람은 사회가 인정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도?


그렇다. 예를 들어 이런 말이 있다.


'사람 한둘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10만 명을 죽이면 정복자라 불린다.'


광개토 대왕은 왜 '대' 왕일까?

(미리 얘기하지만 이러한 정복자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팩트를 관찰했고, 그것을 내 주장의 근거로 사용한 것뿐이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말에 대한 방어가 철저해야 한다는 시대에 산다는 것에 대해서 모두가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모두를 응원합니다.)


관점 하나 때문에 최악의 수치심이

최고의 영광이 되었다.


나에 관한 밈 하나가 새로 창조될 때마다 난 간식을 받은 강아지가 된 기분이 든다. 진심이다.


이 말을 함으로 많은 사람들은 나의 행복을 뺏기 위해 나를 더 안 놀릴까 봐 걱정까지 된다.


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나를 놀리는 사람이 병신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흥미로울 수도, 짜증 날 수도 있는 조건이 따르는데 난 35살의 사업체 10개가량에 투자를 하고 있는, 적이 매우 많은, 흔들림이 많은 삶을 살고 있는, 또 미디어가 구워삶기를 이미 많이 한, 면적이 매우 큰 과녁판같은 표적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 어른은 패기와 쌍욕보단


여유와 창의력으로 싸워야 한다.


그런 훈련과 연습을 매일 해야 하므로 내 뇌는 더 강해지고, 멘탈도 세진다는 것을 안다. 발전은 쾌락을 준다.


덜 괴로운 정도가 아니라

더 행복해졌다.


이 글을 쓴 게 지금까지 쓴 그 어느 글보다 나에게 더 많은 행복을 준다.


낄낄대면서 썼다.


그런데

그 날 그 회의를 안 했다면 어쩌면 난

이 글은 물론이고 이 책에 포함될 글 하나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관점이 전부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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