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아침 일찍 문을 두드리는 “똑똑똑”은 좋지 않은 징조이다. 산토리니와 아쉽게도 작별해야 하는 마지막 날 아침. 이른 시간 세차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이야기인즉슨 선박 파업으로 모든 배들이 운행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언제 재개될지는 아무로 모른단다.
이때 처음으로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실감했다. 그 당시 그리스는 국가 파산 직전이었고 텔레비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회사들의 파업과 인출을 위해 은행 앞에 줄지은 인파가 보도될 때였다. 뉴스와 달리 우리가 실제로 만난 그리스는 너무나 평온했고 일상적이었다. 오히려 이 나라가 위기 상황이 맞는 것인지 갸우뚱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 듯 페리 파업이라니.. 차선책으로 페리가 아닌 비행기도 알아봤지만 이날은 비행기도 운항을 안 한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파업으로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이 상황이 전혀 짜증나지 않았다. 물론 계획이 틀어졌기에 약간의 걱정은 있었지만 그것은 작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이 섬에 머무를 빌미가 생겼다는 것이 내심 기뻤다. 자발적 체류가 아닌 불가항력적 상황에 의해 산토리니에 묶이게 된 것이 한편으론 재밌었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무정형 여행이 장기화되면서 어느새 부정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세상은 참 얄궂어서 절대 내가 만든 시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시간의 변화무쌍함과 상관없이 그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요령만 있으면 그만이다. 비로소 나는 시간의 노예가 아닌 시간의 주인이 된 듯 한 해방감이 들었다. 드디어 매일 매일 짜놓은 시간대로, 정해진 계획대로 살아왔던 일벌레의 시계가 고장 난 것이다.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잔하기 이를 때 없는 산토리니의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며 우린 이야기 했다.
“뭐 어때.. 내일이든 언제든 페리가 뜨긴 뜨겠지.
그런데, 산토리니라면 영영 이 섬에 갇혀 버려도 행복하지 않을까?”
이 날 산토리니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