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파랑’을 불러일으킨다. ‘산토리니’라고 소리 내 불러보면 마치 새파란 바다가 흘러넘치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든다.
산토리니는 ‘이아’와 ‘피라’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마을은 푸른 절벽에 떨어질듯 말듯 빼곡하게 서로를 맞대며 자리하고 있다. ‘이아’와 ‘피라’는 두 소녀의 우정을 담은 단편 영화 제목 같기도 하고, 남매 혹은 자매이름 같기도 했다.
우리는 잔망스러운 이 장소에서 남매와 같은 재원과 희락을 만났다. 어쩌면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20대의 재원과 희락.. 넷은 여행지에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도 금세 친해졌고, 같은 숙소에 묵게 되었다. 우리가 지냈던 민박집은 풍채 좋은 아버지와 사랑스러운 두 딸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가족이 함께 펜션을 하며 오순도순 사는 모습이 부러웠다. 게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가 앞이라니.. 넷이서 같이 여기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수백 번도 더 했다. 외딴섬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펜션을 운영하며 사는 것, (막상 살아보면 심심해서 몸이 안달이 나 이 섬을 빠져나갈 궁리만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음직한 판타지다. 비록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 할지라도 그 환상적인 꿈은 일상의 고단함에 작은 위로를 건넨다.
봄날의 산토리니는 이제 막 겨울잠에서 깬 듯 했다. 산토리니 사람들은 곧 다가올 성수기 관광객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알록달록 페인트칠을 하고, 정원을 가꾸고, 레스토랑들은 새 단장을 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마을 어귀 아무데나 앉아 사람들이 지붕꼭대기에 페인트칠 하는 모습을 하릴없이 바라보다가, 어슬렁어슬렁 골목을 배회 하다가, 카페에 앉아 햇빛을 한 몸에 받으며 커피를 홀짝이다가, 배가 고프면 문을 연 몇 개 되지 않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다.
할 일 없음이 이곳에서의 유일한 할 일이었다. 이 시공간 속에서 만큼은 나는 그냥 나였다. 아이템에 시달리는 나도 아니었고, 섭외전화에 전전긍긍하는 나도 아니었고, 화낼 곳이 없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버럭 소리를 지르던 나도 아니었다.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는, 절대적으로 행복한 나였다.
영화 <천국의 속삭임>에는 눈이 안 보이는 아이가 나온다. 빛깔 이란 게 어떤 건지 너무 궁금했던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물었다.
“친구야 파란색은 어떤 느낌이야?”
“어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스쳐가는 바람..그런 바람 같은 느낌이야.”
자전거를 달릴 때 마주 한 스쳐가는 파란 바람이, 에게 해 위를 천천히 지나간다.
파랑을 닮은 바람은 이곳이 천국이라고 속삭였다.
나무늘보처럼 바다에 기대어 꿈을 꾸었다.
영영 헤어 나오고 싶지 않은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