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요한 볼프강 폰 괴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을 때가 있었다. 하나, 둘 쌓아 올린 것들이 별 거 아니었다는 듯 스르르 모래알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가버리는 공허감이 드는 밤이 달의 주기처럼 찾아왔다. 마찬가지로 삶의 주기에도 굴곡이 있어서 어느 때는 모든 것을 다 잡은 것 같다가도 어느 때는 진짜 내 것인 게 하나도 없었다. 어느새 나는 이뤄나가는 것과 동시에 이뤄온 것들을 돌아보게 되는 나이에 접어든 것이다.
나름대로는 한 눈 팔지 않고 뛰어 온 것 같은데, 과연 나한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이름 석자는커녕 우리 엄마 석자 씨가 금이야 옥이야 키워낸 내 살가죽만 방송국에 뜯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저항 한 번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었고 동시에 세상이 주는 허무함을 채우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성취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없어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실패해도 괜찮은 것은 젊은 청춘에게만 주어지는 특혜 같았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20대만큼 넉넉하지 않을 것도 같았다. 만약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지금과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조금은 덜 허무한 삶을 만들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삶을 치열하게 살아보기는 한 것일까?
이런 비슷한 질문에서 악마와의 거래를 시작한 남자가 있다. 법학·의학·의학에 신학까지 모든 학문을 섭렵했으나 인생의 허기와 지적 열망을 동시에 느끼는 학자 파우스트.
철학, 법학, 의학, 신학까지도 공부했는데
가련한 바보로 여기 있다는 것에 괴롭다.
이런 파우스트 앞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해결사를 자처한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인생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멈추지 말 것.” 만약 파우스트가 이 말을 내뱉게 된다면, 계약은 파기되고 그는 지하 세계로 내려가 메피스토펠레스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그토록 추구했던 인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야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거래가 성사된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소원은 무엇일까? 클레오파트라도, 진시황제도 원했던 그것, 누구나 가끔은 생각해보는 ‘젊음’이 아닐까.
다시 20대가 된 청년 파우스트는 거침없이 사랑도 한다. 순수한 그레트헨을 유혹해 두 사람은 연인이 되는데, 그레트헨은 실제로 괴테가 젊은 시절 짝사랑했던 인물이다. (대작가의 여자관계는 꽤 복잡해서 학문적 영혼의 친구였던 쉴레마저 잠시 그를 외면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괴테 본인은 사랑에 대해 “오직 한 여자와 사랑을 오래 나눈 남자가 사랑의 본질을 더 잘 있다.”라고 말했다. 언행불일치인지 지식 욕구가 왕성했던 탓에 사랑의 본질 역시 다양하게 탐구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을 알 길이 없다.
괴테는 자신을 어린이 취급했던 연상의 여인을 소설에 도입함으로써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나름대로는 이루었다. 하지만 달콤한 사랑은 잠시였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이 계약은 악마와 성사된 거래라는 점이다.
너는 누구냐?
악을 원하면서도 선을 창조해내는 힘의 일부분이죠.
메피스토펠레스는 소원을 이루어줌과 동시에 방해 공작도 펼치는 이중적 인물이다. 이 악마는 두 사람이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그녀의 오빠에게 알렸고, 급기야 파우스트가 오빠를 죽이게 만든다. 결국 그렌트헨은 정신 착란으로 파우스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물에 빠트리고 메피스토펠레스의 계략으로 어머니마저 죽게 만들어 감옥에 갇힌다.
이 정도 악랄한 죄를 저질렀다면 도스토예프스키같은 작가의 시점으로는 시베리아 종신행 정도는 가야 마땅했겠지만 괴테는 면죄부를 준다. 파우스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강렬한 욕망에 이르고 싶어했다.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렌트헨이 자신의 죗값을 받겠다며 탈옥을 거부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덕분에 그녀는 천상으로 간다.
1부는 세속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재밌게 풀리지만 2부에서는 그리스 신화 및 각종 수사들이 등장해서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고전은 제목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막상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고 했던 마크 트웨인의 말에 가장 적합한 예가 <파우스트>다.
2부에서 파우스트는 좀 더 행동반경을 확장한다. 여러 시공간을 오가는데 그리스 신화의 세계에서 최고의 미녀 헬레나를 만나 사랑도 한다. 1부에서 그렌트헨과의 사랑이 현실적이라면 2부에서는 초현실적인 사랑이 펼쳐진다. 또한 나이가 든 파우스트는 점점 더 발전하고 있었다. 1부에서처럼 사랑하는 여인이 미혼모가 되게 만들고 그녀의 불행 앞에 도망가는 치사한 남자가 아니었다. 파우스트는 그녀와 결혼까지 해서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험심 강했던 두 사람의 아이 오이포리온는 하늘을 날다가 추락사하고, 동시에 헬레나도 사라진다.
그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공훈을 세우고 황제로부터 바닷가의 넓은 간척지를 하사 받는다.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결론적으로 파우스트는 모든 일에 성공을 거두고 절세의 미녀와 사랑도 나눴으니 후회 없을 생을 살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낸 것이 아니었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악마적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 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꿈을 꾼다. 자유는 스스로 얻었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날마다 자유와 삶을 쟁취하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네
자유로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고 싶네
그러면 순간을 향해 말할 수 있으리라
순간아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자유로운 땅에서 만인이 평등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환영에 감격한 파우스트는 말한다. “순간아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악마의 계약이 파기되는 순간이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회심의 미소로 그를 지옥으로 데려가려는 찰나, 천사와 그렌트헨이 나타나 파우스트를 천상으로 인도한다.
파우스트는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간척지 개간에 방해가 된다며 노부부를 살해했고, 사랑하는 여인과 가족들도 죽게 만들었는데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파우스트가 신약성서를 번역하는 장면이 조금은 답을 준다. 그는 처음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로 번역했다가 말씀을 뜻, 힘, 마지막에는 행동으로 바꾼다.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파우스트는 ‘행동’했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는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난봉 짓을 일삼으며 살인에도 과감했던 그가 천상으로 간 것은 인생을 방관하지 않아서였다. 파우스트는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했던 괴테의 초상화였다. 작가는 단 한순간도 삶을 놀리지 않았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집안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법대를 다녀야 했던 22살의 괴테는 학교 근처의 아우어바흐 캘러에서 자신의 문학을 정점에 올려줄 작품, <파우스트>를 구상했다. 22살에 집필을 시작해 58세에 이르러 1부를 완성했다. 2부에 대한 구상은 이미 있었지만 친구 쉴러가 요절하자 그 충격으로 20년 가까이 집필을 중단했다가 82살 때 마무리를 했고 이것은 작가의 유작이 되었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6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그만큼 이 책에는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괴테의 모든 사상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한편으로는 일평생 그가 펜을 놓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괴테는 작가뿐만 아니라 바이마르 공국에서 재상과 도서관 관장을 맡았고 다방면의 학문에 밝았다. 최고의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다.
한 번은 독일에서 괴테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글쓰기에 최적화될 수 있도록 집을 색깔별로 설계한 치밀함과 박물관으로 만들었을 만큼 방대한 한 남자의 수집품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는 맥시멀 리스트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욕심이 많은 남자임에 분명했다. 물질·정신적 만족 모두를 추구했고 일도 사랑도 글도 뭐든지 불꽃 튀게 했다. 괴테는 편하게 시간 속에서 빈둥거린다면 그것으로 인생은 끝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번도 삶을 방종하거나 나태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래서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었다.
평생을 질주해 왔다. 유능한 자에게 이 세상은 침묵하지 않으리라.
어떤 순간에도 만족을 모르는 자, 그가 나아가는 길엔
고통도 행복도 함께 하겠지.
<파우스트>는 16세기 초 독일에서 활동했던 주술사 파우스투스 전설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독일어로 파우스트(Faust)는 "주먹"이란 뜻도 있다. 라틴어로는 "행복한 사람"이란 의미도 지닌다. 주먹 꽉 쥐고, 정면으로 세상을 돌파할 용기를 품고 나아간다면 궁극의 행복한 사람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파우스트>에서 읽는다.
괴테는 용감한 사람을 좋아했다.
"걱정하지 말고 얼음 위를 나아가라, 가장 용감한 자가미처 길을 내지 못한 곳을 보게 되면 네 자신이 길을 만들라“/《용기, 괴테 시집》고 독려했다. 비록 방황하더라도 행동하는 한 인간은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삶은 의문투성이지만 결국 정답을 찾는 이는 나 자신이다. 파우스트가 그랬고 괴테가 그랬으며 당신도 그럴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5VnsQoBCW3o&t=188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