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매혈기_위화
얼마전 경찰과 관련한 영상 제작을 하게 되면서 경찰로 정년퇴임 하신 시아버지가 떠올랐다. “경찰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야?” 남편에게 물었다. 그는 어렸을 때 제복을 입은 아버지가 영웅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실제로 경찰이 되는 꿈을 꾸기도 했었고 지금도 매년 ‘경찰의 날’마다 아버님께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남편은 그동안 아버지와 주고받은 문자들을 지우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에게는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는 기념일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몇 십 년 동안 평소에는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주고받는 날 이었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들으며, 남자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궁금했다.
그는 어렸을 때 영웅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청소년기에는 그렇게도 미웠다고 한다. 보통 청소년 나이 때의 아버지는 40대 중후반, 한창 사회생활의 절정에 달아 있을 때였고 가정보단 직장 내에서의 관계, 승진에 더 집중할 시기였다. 그렇다보니 퇴근이 늦었고 술 약속이 많았던 아버지가 싫어서 반항도 많이 했었다. 이상하게 아버지와의 사이가 어색해졌고 멀어져갔고 각자의 삶이 바빠 회복할 시기를 놓쳤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 같은 어른이 되어보니 사회생활의 고단함, 무거운 가장의 무게를 이제 겨우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너무 많이 늙어버리셨다. 그렇게 싫어했던 아버지를 닮은 내가 언뜻언뜻 보일 때, 볼 때마다 작아지고 계신 아버지가 떠올라 서글퍼졌다.
작은 아이일 때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가 청소년기에는 대결구도가 되었다가 성인이 되어 다시 화해하는 부자의 관계는 늘 엄마를 친구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여전히 부자 관계가 달달하지는 않다.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가사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가로지는 강이 있다. 그렇지만 그 위로 화해의 비가 내리고 꽃구름이 흘러다니고 있음을,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남편의 눈빛에서 보았다.
우리 시대의 모든 아버지들의 모습이 비슷하지 않을까싶다. 자신의 꿈보다는 자식의 꿈이 우선인 사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음에도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 평생을 희생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상하게 가정에서의 자리가 작아지고 고독해지는 사람, 아버지.
허삼관은 이런 보통의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 그는 가족을 위해서 피를 파는 공장 노동자다. 이 남자의 인생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매혈’이다. 피를 팔아야 건강을 증명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생애 처음으로 매혈을 한 허삼관은, 그 돈으로 마을에서 제일가는 미인 허옥란과 결혼을 한다. 이어 일락, 이락, 삼락 삼형제를 낳는다.
허삼관 인생의 첫 번째 고비는 가장 아꼈던 일락이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이상하게 아내의 전 남자친구인 하소용을 닮아가는 것이 수상쩍었고 결국 부인을 추궁해 자백을 받아낸다.
그는 큰아들에게 대 놓고 "재수 옴 붙었다며 다음 생애는 네가 나의 계부로 태어나서 고생 좀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 아들의 머리를 돌로 내리 치는 사고를 냈을 때 자신의 피를 팔아 사고를 수습한다. 피로 이어지지 않았을지언정 그동안 기른 정을 외면할 수 없었다.
허삼관은 그런 사람이었다. 투박스러운 말투에 고집스러운데다가 밑도 끝도 없이 우악스럽지만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허삼관이 가진 인간미와 특유의 낙천성에 있었다.
아내가 하소용의 부인과 싸우고 있다는 전갈에도 허삼관은 끄떡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은 돼지가 뜨거운 물 무서워하는거 봤냐”는 말로 응수한다. 이미 뜨거운 물을 경험해 본 사람은 더 이상의 시련이 무섭지 않다. 맷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록 혼외자식을 데려왔을지언정 세 아들의 엄마인 아내를 믿었고, 두 사람이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일궈온 삶의 지혜를 신뢰했다.
허삼관은 가족의 힘을 믿었고, 그 힘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가령 전국에 가뭄이 들어 온 가족이 옥수수죽으로 연명을 하다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게 됐을 때, 그는 또 한 번의 해학으로 슬픔을 이겨낸다.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유대인 수용소 생활을 놀이라고 했던 것처럼, 허삼관은 말로써 요리를 한다.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요리를 해주는 시늉을 하는데, “이 요리는 삼락이한테만 주는거야. 삼락이한테만 침 삼키는 걸 허락하겠어.”와 같은 유머로 가족들을 웃게 만든다. 침 삼키는 걸 허락한다니, 슬픈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키득키득 웃음을 생산하는 것은 <허삼관 매혈기>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이 가족은 돈은 없을지언정 웃음이 넘쳤다. 일락, 이락, 삼락이란 이름역시도 첫 번째 즐거움, 두 번째 즐거움, 세 번째 즐거움이니, 작명 센스에서도 허삼관 가족의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이들이 살아온 배경인 1950~1980년대는 중국 격동의 시기였다. 하지만 허삼관은 보통의 가장이었다. 문화 대혁명이 뭔지 잘 몰랐고 경제 부양책이었던 대약진 운동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단지 내 가족이 배 골이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있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그럼에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은 흔들렸고, 풍파가 들이닦쳤고, 그럴 때 마다 허삼관은 피를 팔았다. 오십칠 일간 옥수수죽밖에 못 먹은 식구들에게 국수를 사 먹이기 위해, 농촌 생산대에서 피골이 상접해 돌아온 일락이에게 용돈을 쥐어주기 위해, 이락이네 생산 대장을 접대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주저하지 않고 팔았다.
평생 가족을 위해 피를 팔 수 밖에 없었던 허삼관은 생전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해 피를 팔아보려 하지만 이미 너무 늙어 있었다. 더 많은 피를 뽑기위해 물을 연거푸 벌컥벌컥 마셔도 보아도 소용없었다. 더 이상 피를 팔 수 없는 늙은 육신을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며 한없이 쓸쓸했다. 서글픈 눈물에는 파란만장했던 일평생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었다. 망연자실 하는 허삼관의 모습은 마치 가장자리가 소멸해 가고 있음을 느끼는 은퇴한 아버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평생 희생하는 삶을 살았음에도 자식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죽을 때 키워준 것을 생각해서라도 조금은 가슴이 북받치고 눈물을 흘려주기만을 바란 사람이 허삼관이었다.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허삼관은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크고 작은 위기 속에서 가족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표현에 서툴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만큼은 어느 누구 못지 않았던 허삼관의 삶은 우리 시대에 아버지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남자들을 닮았다.
유년 시절을 돌아보면 아버지도 말이 많으시진 않았다. 그런데 집에 오실 때 특히 귀가가 늦을 때면 늘 양손에 뭔가를 사가지고 오셨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그 검은 봉지 안엔 어느 날엔 군고구마가 들어있었고, 어느 날엔 귤이, 또 어느 날엔 투게더 아이스크림이 빼꼼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소한 먹을거리였지만 그것은 자식들에게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무뚝뚝한 아버지 나름의 사랑 방식이었다.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마음은
말보다는 몸짓에 깃들어 있었다.
먹거리들이 사리진 봉지 안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고스란히 쌓였다. 새삼 아버지란 이름을 가진 남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 마음이 이 세상의 아버지들이 삶을 살아가는 희망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