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싱글의 어느 중간 지점
그러니까.. 결혼을 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결혼’ 이란 것은 내게도 굉장히 어려운 단어였다. 사랑해서 결혼 한다는 것은 딱히 설명할 말이 없어서 내뱉는 만사형통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결혼이 가장 하고 싶었을 때는 집 계약 만기일 때였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20살 이후 10년 넘게 서울이란 땅에서 월세와 전세를 전전긍긍했던 나는 이사에 지쳤다. 처음엔 이 동네 저 동네 살아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이사 비용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훨씬 컸다.
때로는 어떤 이의 인생 최종 목표가 될 만큼 대한민국에서 내 집 마련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물론 결혼할 누군가와도 내 집이 아닌 전셋집에 살 확률이 높겠지만.. 이 짐을 혼자가 아닌 둘이 지는 게 나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결혼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2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일종의 병이었다. 짧은 열병처럼 그 시기가 지나면 결혼에 대한 욕망은 이내 잦아들었다. 단순히 집이 이유였으니 원점으로 돌아가 보면 나는 결혼, 즉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을 절실히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혼을 쉽게 여긴 치기어린 오만함이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내 기준으로는 좀 빨리 결혼을 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남편의 집요한 설득과 추진력이 없었다면 지금쯤 우린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다. 결혼식을 치를 때까진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식이란 파티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잘 살 수 있을까?”
신혼에 대한 단꿈보다는 몹쓸 두려움과 걱정이 엄습해왔다. 혼자 살아온 10년이란 세월의 무게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게다가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고 한 곳에 적을 두기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오가는, 종영 후엔 여행을 떠나곤 했던 삶의 방식은 결혼이란 제도에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무엇보다 내 공간이 중요했던 나에게 타인과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산다는 것에 숨이 막혔다. 정착과 유랑의 간극은 이토록 큰 것이었다.
이제 와서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통념상으론 결혼 전에 했어야했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안다. 바보 같은 짓임을.
고맙게도 남편은 서운함을 표하기보다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결혼 전에 왔어야 할 ‘메리즈 블루(Marriage blue)’가 늦게 찾아온 것일 뿐이라며 나를 다독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겐 두 달의 시간이 주어졌다. 겨우 신혼집을 전세로 구했는데 두 달 후에나 입주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전세난이 이럴 땐 고맙기도 하다.) 결혼 전에 집을 합치는 여타 부부들과 달리 우리는 결혼을 하고도 두 달을 떨어져 살게 됐고, 나는 어떻게든 이 시기를 미친 듯이 재미나게 보내고 싶었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혼수도 사야했고, 써야 할 원고가 산적해있었으며, 주변 정서 상 이제 막 결혼 한 여자가 남편을 두고 여행을 간다고 하면 달가워하지 않을 것임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유부녀와 아가씨의 어떤 중간 지점에 느낌표 하나 정도는 찍고 싶었다.
미나를 꼬드겼다. 여행 계를 털어서 짧게라도 바람을 쐬고 오자고.
굳이 콘셉트를 정하자면 “짧은 소풍”이랄까.
그렇게 유부녀가 되었음에도 유부녀가 되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한 여자와 떠나자는 말에는 무조건 오케이부터 하는 자유로운 싱글녀는
다시 배낭을 멨다.
나에게는 가깝고도 먼 결혼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했다.
이번 여행지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