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에 찾은 일본이란 열도. 그 가운데 ‘청수사’는 단어만으로도 가슴 시원해지는 장소였다. 찬란한 햇빛아래 무성한 초록 이파리들에 둘러싸인 청수사는 780년, 나라에서 온 엔친 스님이 세운 사찰이다. 이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절을 짓는데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가로, 세로로 끼워 맞춘 나무 기둥에 의해 건물이 지탱되고 있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뾰족함 하나 없는 이 사찰이 다른 사찰들 보다 유독 편안하게 다가왔다. 날카로운 것 없이 둥글둥글한 것들로만 이루어진 이 장소가 참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나무로 맞추어진 널찍한 대청마루에 누워있노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발끝에 열린 문 사이로 바람이 오가고 햇볕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대자로 누워 바람의 떨림과 햇살의 머무름을 즐겼다. 그 순간 모든 것이 평화로움으로 일시 정지가 됐다.
청수사 본당을 나와서 조금만 걸어가면 세 물줄기가 나오는 작은 폭포가 보이는데, 유독 이곳에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청수>는 ‘성스러운 물’이란 뜻으로 엔친스님께서 이 폭포를 발견하고 절을 창건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세 물줄기는 왼쪽으로부터 각각 지혜, 사랑, 건강을 뜻하며, 이 중 원하는 물을 마시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어쩌면 세 물줄기 중 하나만 마시라고 한 연유는 욕심을 버리란 뜻도 깃들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세 물줄기 가운데 미나는 ‘사랑’을,
나는 ‘지혜’의 물줄기를 마셨다.
결혼 생활을 하고 보니 그날 사랑보다 지혜의 물을 마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글인 미나에겐 사랑이 필요했지만, 현실로 점철된 결혼에선 사랑보다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 훨씬 더 많다.
물론 범인(凡人)인 나는 지혜롭게 넘기지 못하는 상황을 부지기수로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현명함이 필요한 순간이 올 때면 청수사에서 빌었던 지혜의 물을 마음 속 한 움큼 마셨다. 그러면 마음이 조금은 청신해지는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