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앞에 좌절하는 당신에게

노인과바다_헤밍웨이

by 여행생활자KAI

인생에서 맛 본 최초의 좌절은 ‘수능’이었다. 학교에서 내 성적은 큰 변동 없는 중상위권이었다. 어느 정도 모의고사를 통해 결과를 예상했고, 가고 싶은 학교를 염두에 두었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원래도 취약했던 수리 영역을 완전히 망쳤고, 암담한 채점 결과지를 들고 방에 들어가서 밤새 울었다. 한 며칠을 눈물바다로 지내며 온 식구들이 내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허망했고 막막했다. 고3에게는 수능이 인생의 전부였고, 어른들 또한 대학이 성공 잣대를 가늠하는 관문이라고 누차 강조했기에 절망감은 더 컸다. 이 정도면 재수를 고려할 법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성격 탓도 있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욕심도 있었지만 내 인생에 재수란 없다고 수십 번 다짐했다. 운전면허 시험부터 시작해서 어떤 시험이든 다시 본 적은 없다. 한 번 했던 일을 반복하는 것이 싫어서 처음부터 두 번은 없을 것이란 각오로 임했다. 연애도 비슷해서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는 내키지 않았고,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두 세 번 이상 보는 것은 흥미가 없었다. 하물며 내 쇼핑리스트에도 재구매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결국 꺼이꺼이 울면서도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진학했다.


지금도 재수에 대한 미련은 없다. 세상이라는 만만치 않은 존재에 일일이 부딪혀가면서 깨달았다. 어른들이 세뇌했던 것 보다 수능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님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어른의 삶에는 낙제보다 곱절은 더 쓰디쓴 시련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무엇보다 ‘실패’라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딛고 일어설 힘’을 동반한다는 것을 말이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악천후와 거센 파도에도 결코 인간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각인 시켜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는 어부다. 한때는 대어를 낚으며 호시절을 보냈지만 어느덧 세월의 풍파에 휩쓸려 깡마르고 주름살 패인 노인이 되었다.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운이 다한 것이라며 그를 얕잡아보았다. 세상은 바뀌고 있었다. 모터보트로 편하게 고기를 잡는 젊은 어부들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노인을 무시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낡은 돛단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낚싯줄과 미끼만으로 고기를 잡았다.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바다를 남성명사 엘 마르(el Mar)’라 부르며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던 젊은이들과 달리 산티아고에게 바다는 여성 명사 ‘라 마르(la Mer)였다. 바다는 싸우고 공격해야 할 상대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어머니의 품같은 존재였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는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지식하고 남루한 노인이었지만, ‘바다와 똑같은 빛깔의 파란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산티아고에게는 언제나 자신을 따르는 마놀린이 있었다. 소년은 어릴 때부터 노인과 함께 바다로 나가 고기 잡는 법을 배웠다. 마눌린에게 최고의 어부는 산티아고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산티아고가 계속해서 고기를 잡지 못하자 부모님은 소년을 다른 배에 승선토록 했고, 노인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출항을 한다. 동행 대신 행운을 빌어준 마놀린의 응원 때문이었을까. 어획 제로 85일째 되던 날, 일생일대의 운이 그를 찾아온다.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를 만난 것이다. 노인은 일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총 동원해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회항하는 길에 상어의 공격을 받게 되고, 그들로부터 청새치를 보호하기 위한 제 2의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그는 꼬박 나흘 간 힘겨운 전쟁을 벌였다. 격랑에 휩싸일 때마다 소년을 떠올렸다. ‘그 애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함께하지 않지만, 소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 싸움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소중한 사람이란 생각만 해도 힘이 나는 존재였다. 노인은 새들과 이야기 하며 고독을 이겨냈고, 물 한 병과 낚은 물고기로 공복을 메우며 악착같이 상어의 습격을 버텨냈지만, 끝끝내 청새치를 지키지 못했다.


‘물고기가 물어 뜯겼을 때 노인은 자신이 물어뜯긴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상어를 원망하기보다 애당초 내 욕심으로 낚은 것이 잘못이라며 청새치에게 미안해한다.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 고독한 망망대해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고행은 흡사 탐진치(貪瞋癡)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른 수행자를 보는 것만 같다. 그는 심술맞은 파도가 밀려와도 화를 내거나 좌절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고꾸라지고 휩쓸리고 피로 점칠 될지라도 흔들리지 않았다. 노인에게는 올곧음으로 삶을 마주할 수 있는 고매한 지혜가 척추처럼 아로 새겨져 있었다. 그는 거친 파도가 지나간 뒤에 잔잔한 물결이 온다는 이치를 이미 터득했던 것이다.


산티아고는 상어들에게 뜯겨 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돌아온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상처투성이 손을 보고 울었고, 마을사람들은 청새치의 굉장한 크기를 확인하고 나서야 경외의 눈빛을 보낸다, 월척의 기쁨이 아닌 패잔병의 쓰라린 상흔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산티아고는 녹초가 되어 잠이 든다. 그리고 꿈을 꾼다. 이번에는 거대한 사자의 꿈이다. 노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실패에 단 1초도 머무르지 않았다. 포기란 용납될 수 없는 단어였다. 그는 곧바로 또 다른 꿈을 꾸면서 상처를 극복했다. 노인은 내일 또 바다로 나아갈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것이다.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이자 슬럼프에 빠졌던 작가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을 안겨 준 <노인과 바다>는 그가 쿠바에 살면서 만난 실제 어부를 모델로 하고 있다. 작가는 주변 인물들을 작품 속에 자주 등장시켰는데 간혹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표현한 탓에 지인들로부터 절교를 당하기도 했다. 가령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무기여 잘 있거라>의 간호사 캐서린도 실제 인물이었는데, 그는 1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 된 적이 있다. 이곳에서 자신을 치료해 준 간호사 쿠로프스키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두 달 만에 이별 통보를 하면서 이 사랑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훗날 헤밍웨이는 쿠로프스키를 작품에 투영시켰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여자들을 빼놓고는 거론할 수가 없다. 그는 총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을 했고, 새로운 사랑을 할 때 마다 대표작을 내놓았다. 첫 번째 아내 해들리 리처든슨과의 결혼생활 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를 썼고, 두 번째 아내 장 폴린 파이퍼와 살면서 <무기여 잘 있거라>(1929)를 선보였다. 세 번째 부인 마서 겔혼과 쿠바에 정착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를 발표했고. 마지막 네 번째 아내 메리 웰시와의 결혼 생활 중 <노인과 바다>(1951)를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첫 번째 아내 해들리를 제외한 세 명 모두가 기자 출신이란 점도 흥미롭다.

헤밍웨이와 아내들


복잡한 사생활뿐만 아니라 사선(射線)을 넘나드는 참전, 두 번의 비행기 추락 사고와 자동차 전복, 투우와 낚시, 알코올 중독, 우울증, 엽총 자살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변화무쌍했다. 파란만장한 인생은 의욕과 열정이 넘쳐났음의 동의어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포기하지 않았다. 작가의 인생 사전에 좌절은 없었다. ‘왕성한 활동’이라는 단어는 헤밍웨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음을 느끼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한 메모를 남겼다.



짧게 갈겨 쓴 쪽지이지만, 이 문장은 빗소리를 들으며 내가 원하는 꿈을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모두가 한 물간 작가라며 외면했을 때조차도 헤밍웨이는 펜을 놓지 않고 <노인과 바다>라는 역작을 탄생시켰다. 노인은 참패를 맛보고 지쳐 쓰러져서 잠들면서도 사자의 꿈을 꾸었다. 인간은 굴복하지 않는다. 무력감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도전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헤밍웨이가 표현하고 싶었던 인간상이었다.


우리는 실패를 업고 나아간다. 과연 고난 없는 성장이 존재할 수나 있을까. 하물며 식물도 바람에 흔들려야 잘 자란다. 그래서 실내 화분을 튼튼하게 키우려면 줄기나 이파리를 일부러 손가락으로 살살 흔들어줘야 한다. 자연도 인간도,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바람’이었다. 때때로 불어 닥친 시련은 나를 흔들지언정 무너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밀어주었다. 우리는 흔들리고 일으켜 세우면서 나아간다. 그러니 행여나 지금 당신의 꿈이 실패했더라도 절망 앞에 고개 숙이지 말자. 꿈이란 것은 인생에서 오가는 손님같은 것이니까.. 이번에 찾아온 손님이 실패라는 꼬리표를 남기고 훌쩍 떠나 가버렸다 해도, 붙들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분명 또 다른 꿈의 손님이
우리네 인생에 찾아 올 테니..

https://youtu.be/cGnWHBZHC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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