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조심하세요.
’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6월, 독일에 첫발을 디딘 외국인에게 현지 사람들이 일관되게 당부한 것은 다름 아닌 ‘겨울’이었다. 오뉴월에 섣부른 추위 걱정이라니, 이해가 안 갔지만 예고대로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겨울’이었다. 서머 타임, 백야가 끝나면 낮은 밤이요 밤은 깊은 밤인 바야흐로 어둠의 장막이 시작된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종일 흐리거나 비의 연속이다. 차라리 비라도 시원하게 내리면 속이 좀 뻥 뚫릴 것 같은데, 내 마음은 보기 좋게 무시한 채 시종일관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감정선을 한없이 처지게 만들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데도 습한 기운 탓인지 으슬으슬 추웠다. 수면 잠옷을 입고 물주머니를 껴안고 라디에이터에 등을 붙이고 있어도 한기가 돌았다. 한해의 끝자락이 주는 쓸쓸함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더불어 나뒹굴었다. 독일에서 11월이 시작됐다는 것은 곧 혹독함과의 싸움에 대비해야 함을 의미했다.
무자비한 독일의 겨울을 경험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왜 그토록 혹한을 걱정했는지, 한스 에히리 노삭이 왜 《늦어도 11월에는》이란 제목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11월은 책 속의 남자 주인공인 뮌켄이 그때까지 꼭 일을 끝낼 것이라는 의지에 기인한다. 극작가였던 그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작품을 마무리하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오후 4시만 되면 깜깜해 지는 겨울에 집필의 노동을 이어간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 가혹한 처사다.
독일의 공업 도시에 사는 스물여덟 살의 마리안네는 유명 사업가인 남편과 어린 아들을 둔 상류층 여성이다. 가랑비가 오락가락하는 5월의 어느 날, 남편 대신 참석한 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베르톨트 뮌켄을 처음 만난다. 이 순간이 두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겨우 단 한마디 때문이었다. 통상적인 인사도 자기소개도 없이 첫눈에 보자마자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남자. 그 달콤한 음성은 그녀의 귀에 사뿐히 안착했다. 얼었던 대지가 녹았고 마른가지에 잎이 돋아났다. 봇물 터지듯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혹독했던 긴 겨울 끝에 찾아온 봄날 같은 이 사랑이라면, 사업이 전부였던 남편이 파놓은 삶의 무상함을 채울 수 있을 같은 확신이 들었다.
작가 한스 에히리 노삭은 재력가였던 배우자를 버리고 뮌켄을 선택한 마리안네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가치는 ‘사랑’임을 증명해 보인다. 돈과 일 밖에 몰랐던 그녀의 남편은 1950년대 초 독일 라인강의 기적과 맞물려 팽배해진 물질만능주의, 경제적 호황을 입고 성공한 사업가들 이면의 냉담한 세계를 대변한다. 반대로 마리안네는 물질보다는 정신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충실했다. 돈으로 무장한 딱딱한 공업도시에서 ‘사랑’이라는 꽃을 피운 순수하고 가녀린 영혼이었다. 작가는 돈에 밀려 경시되고 소외되는 인간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산업사회에서 자본주의와 사업가들이 만들어낸 허상뿐인 문화(마리안네의 남편이 뮌켄에게 준 ‘상공인협회’ 문학상 같은 것들)를 교묘하게 풍자하고 있다. 마리안네는 함부르크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부르주아 계급에서 벗어나 글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던 작가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하다.
사랑에 눈이 먼 그녀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마저 보이지 않았다. 나와 함께 죽을 수도 있다는 한 남자만 보였다. 일말의 고민 없이 베르톨트를 따라 집을 나선다. 그저 자신의 삶이 안전하기만을 바랐던 마리안네에게는 일생일대의 일탈이었다. 소설의 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녀의 행보는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만큼이나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했다. 노라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남편의 액세서리로 정지된 정물화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사랑을 통해 진실된 나를 찾고 싶었다. 남편과 살아온 혹은 견뎌온 지난 세월은 뮌켄을 기다렸던 시간이었다.
모두를 버린 대가로 모두에게 외면당한 사랑은 평탄할 수 없었다. 불안한 도피가 이어진다. 친구 집에 잠시 머물다가 라인강을 넘어 국경 근처의 작은 도시로 밀려온다. 산업 혁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인강을 건넜다는 것은 마리안네가 자신이 살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저 너머로 발걸음을 옮긴 것을 의미했다. 낯선 도시에서 시작된 현실에서의 사랑은 이상과 달랐다. 마리안네는 사랑을 좇아 가출할 정도로 과감했지만,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옳았는지 의구심을 던진다. 시종일관 갈팡질팡하는 여자의 심리묘사는 이 책이 뻔한 통속 소설로 치부되지 않는 뒷받침이 된다.
마음이 편치 않기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뮌켄은 완벽주의자인 동시에 자격지심으로 가득 찬,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다. 상류층 출신인 마리안네를 경제적으로 충족시켜주지 못해서 괴롭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작품의 성공뿐이었다. 11월에 상연될 희곡에 집중해 보지만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작가는 창작의 고통을 앓았고 마리안네는 자신이 방해가 될 뿐이라는 부채감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누구도 입 밖으로 문제를 꺼내지 않았다. ‘늦어도 11월에는’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겠느냐며 얄팍한 기대를 걸면서도, 내면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운명적 사랑이 현실의 속박으로 변해갈 때 즈음 시아버지가 찾아온다. 그녀는 백기를 들었다. 못 이기는 척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영영 올 것 같지 않았던 11월이 왔다. 마리안네는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라디오에선 뮌켄의 작품이 그녀가 사는 도시에서 초연된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다신 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기다림이 피어난다. 이미 알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이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예상대로 남자는 찾아왔고 마리안네는 다시 사랑에 모든 것을 건다.
두 사람은 함께 도로 위를 달렸다. ‘환희’란 것이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죽음은 영원하다”는 글씨와 함께 사고 다발 구역이 보이고, 빗길을 뚫고 굉장한 속도로 달리던 중고 폭스바겐은 철로 교각에 부딪힌다. 연인은 허공을 향해 가볍게 날아올랐다. 아프지 않았다. 어떤 두려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번뇌에 종지부를 찍게 되어서 홀가분했다. 마리안네는 뮌켄의 손을 잡았다.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함께라면 이대로 죽어도 좋은 사람과 맞이하는 마지막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사랑의 배경이 되는 5월에서 11월 사이, 6개월의 시간은 독일에서 가장 좋은 계절이다. 화양연화와도 같은 찬란한 계절 가운데 절묘하게도 두 사람이 만나는 중요한 분기점에서는 항상 비가 내린다. 이 사랑은 처음부터 먹구름을 동반한 잠깐의 강렬한 햇빛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거침없이 사랑했고 그 안에서 휘몰아치듯 번뇌했다. 희망고문과도 같았던 11월의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속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게 증폭하는 11월은 끝끝내 아련한 사랑을 닮았다.
소설의 주제와도 같은 《늦어도 11월에는》이란 제목은 ‘늦어도’라는 형용사와 ‘11월’이라는 시제가 만나 독특한 뉘앙스를 빚어낸다. 늦어도 11월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늦어도 11월이 가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까? 매년 11월이 되면 마음이 헛헛해진다. 올해도 다 갔구나 싶으면서도 한 장 남은 시간에 어떤 기대를 걸어 보게 된다.
한 해가 끝나기 전, 마음에 품고 있었으나 하지 못한 일을 해 보고 싶다. 숫자 11처럼 누군가와 나란히 공원을 걸으며 바스락바스락 낙엽을 밟아보고도 싶다.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한, 혹은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못한 그대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도 11월에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마리안네처럼 나와 함께라면 이대로 죽어도 좋을 어떤 한 사람이 늦어도 11월이 가기 전에 나를 찾느라 애달픈 마음이 되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늦어도 11월에는…
그래서 11월에는…
그럼에도 11월에는….
#spätestensimnov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