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두려움이 빚어낸 완벽한 아름다움

교토 <금각사>

by 여행생활자KAI

원래는 ‘은각사’를 가려고 했다. 이름에서부터 화려함이 느껴지는 ‘금각사’보다는 왠지 ‘은각사’ 쪽이 끌렸다. 은각사는 1482년 아시카카 요시마사 쇼군이 금각사를 따라 만들다가 재정난으로 은을 덮어씌우지 못한 사찰이다. 완전하지 못한 것, 미완성이 주는 여백, 상상의 여지를 나는 사랑한다.


하지만 애초의 생각과 달리 어이없게도 한자를 헛갈린 탓에 버스를 잘못 탔고, 우린 정반대의 금각사에 내렸다. 금각사 킨카쿠지(金閣寺)와 은각사 긴카쿠지(銀閣寺)를 제대로 못 본 탓이다. 게다가 은각사와 금각사는 은과 금의 거리만큼이나 정 반대에 있었다. 결국 우리에게 은각사는 미지의 공간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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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할 때면 늘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생긴다. 그 예기치 않음이 때때로 불쾌할 수도 있고 무척이나 즐거울 수도 있는데, 이번엔 후자였다. 은각사면 어떻고 금각사면 어떠랴..지금 즐거우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

우리가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데에는 눈부신 금각사의 자태도 한 몫 했다. 은각사에게 미안하게도 금각사는 눈부셨다. 오후의 작렬하는 태양을 받아 금빛은 더욱더 찬란했고, 바로 앞 연못은 금각사를 좀 더 깊은 모습으로 투영하고 있었다.


소설 <금각사>에서


‘금각 그 자체는 시간의 바다를 건너온 아름다운 배’


라고했던 미시마유키오의 표현에 수긍이 갔다. 소설 <금각사>는 아름다움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과 파멸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미조구치’는 보잘 것 없는 외모와 선천적인 말더듬으로 고독한 유년시절을 보낸 인물이다. 아버지로부터 ‘금각처럼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란 그는 금각과 같은 절대미를 갈망하지만 그에 못 미치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하다가 끝내 우상을 파멸시킨다.


소설 <금각사>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완벽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그만큼 불완전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금각사 역시 불안이 만들어낸 소산이었다. 1950년 한 사미승에 의하여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55년에 재건했다. 1950년은 일본은 패망 후 어수선한 시기였다. 불안의 시대가 빚어낸 어둠 속 달과 같은 존재, ‘금각사’. 때로 불안의 덩어리들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불안할 땐 더욱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일단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그런 마음이 잠잠해 졌다고.. 고흐는 불안을 그림을 승화시켰고, 금각사의 주인공은 불안을 파멸로 표출 시켰다.


승화와 파멸. 불안 앞에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나는 고흐같은 위대한 사람이 못되기에.. 승화는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 그렇다고 ‘금각사’의 미조구치처럼 자멸할 자신도 없다.


평범한 나의 선택은 불안을 삼키는 쪽이다. 컵에 든 물이 가득차서 넘칠까봐 불안할 때는 그 물을 좀 마셔버리면 된다. 마음에 두려움이 차올라서 불안해질 때 내가 쓰는 방법이다. 두려움을 한 움큼 삼키고, 한 번 더 나를 믿어 보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불안의 시대를 아름다움으로 딛고 일어선 금각사처럼,

자신을 온전히 믿고 나아간 고흐처럼,

그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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