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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Jul 10. 2021

모든 글쓰기는 물음표에서 시작한다.

어른들은 왜 물음표 대신 마침표만 강요할까?

“선생님 솔직히 저도 재미없었어요.”

“그럼 왜 처음부터 재미없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다들 재미있다고 하니까요. 나만 재미없다고 하면 이상하잖아요.”      


어쩌다 보니 수업과 관계없이 영화 <승리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가 재미있었다고 말한 아이는, 선생님은 별로였다는 대답에 곧바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왜 처음부터 재미없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이상해 보일까 봐서”였다. 왜 남들이랑 생각이 다르면 그것은 틀린 답이 되는 것일까?    


글쓰기 수업을 하기 전의 나는 요즘 아이들은 다를 것이라고 착각 혹은 환상을 가졌다. 천편일률에 이골이 난 세대들이 부모가 되었다. 그들은 자녀에게 더 자유롭고 더 열린 길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라고 여겼다.


나와같은 지금의 30~40대는 주입식 교육에 입시 학원까지 쌍쌍바 폐해를 고스란히 받은 세대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죽어라 공부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첫 월급이 고작 88만 원이었던, 88만 원 세대였다.     


미래는 응당 더 나아져야 했다.
미래는 희망을 담보로 존재하는 것이니까…


우리 다음의 세대는 달라졌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남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성인이 되어 결혼하는 그런 평균에 맞춘 삶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라고,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그렇게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환상이었다.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평균에서 이탈하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괜히 틔는 행동을 했다가 왕따를 당할까 봐 걱정했다. 남들과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그것은 학교생활, 친구 관계, 꿈에도 해당됐다.      


“선생님 제 꿈은 축구선수인데요. 엄마한테 비밀이에요.”

“왜 비밀이에요?”

“엄마가 하지 말래요”

“왜?”.

“몰라요. 그래서 저희 엄마는 제가 꿈이 없는 줄 알아요.”     


주말에는 솔직히  시간씩  때도 있는데요. 어른들이 유튜브는 많이 보면  된데요.”

“왜 많이 보면 안 돼요?”

“몰라요. 그냥 보지 말래요. 눈 나빠진데요.”     


내가 어릴  어른들은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단지 대상이 텔레비전이 유튜브로 바뀌었을 .  당시 나는 대체  텔레비전을 보면 눈이 나빠진 다는 것인지 이해가  갔다. 아무도 명확히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그냥 보지 말라고 했고  시간에 공부를 하라고 했다. 속으로만 왕왕 궁금증이 일었다.      


어른들은  텔레비전을 보시지?  안경은  쓰셨지?’     


어른이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지 많다. 물론 하면  되는 것을 배우는  역시 교육이다. 아쉬운 점은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것에 있다. 유튜브를 많이 보면  되는 이유가 단순히 눈이 나빠져서일까. 중독, 선정적인 광고, 편협한 생각.... 여러 가지가 있지만 누구도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배운 아이들은 마찬가지로 정답만 적어낸다.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처음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면 대부분의 글들이 비슷하다. 결론은 “참 재미있는 하루였다.” “주인공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로 끝나는 것이다. 대부분이 결론에서 다 막혀버린다. 내 생각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으니 정리도 안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모든 글에는 이유가 있다.


즉 좋은 글은 ‘재미있었다’를 쓰는 것이 아니라 ‘왜 재미있었는지’를 쓴 글이다. 왜 신났는지, 왜 기대가 됐는지, 왜 슬펐지, 왜 사랑하는지, 왜 행복한지 ‘왜’를 밝히는 여정이 바로 글쓰기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사유가 담긴 글이 탄생한다. 확장해서 보면 우리네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이유다. 아인슈타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고..’ 심지어 나라는 인간이 태어난 것에도 이유가 있다. 부모의 사랑!


이유를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다.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이 문장 하나로 모든 이유의 가능성을 다 차단해 버린 것은 아닐까.      


수업 시간에 소설 <아몬드>를 자주 읽는다. 이 책은 요즘 한국 청소년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부분 읽었거나 소장하고 있다. 학생들이 꼽은 인상적인 문장은 의외로 이 구절이었다.      


“자기네들 맘대로 낳아 놓고 왜 자기들이 정한
미션을 내가 수행해야 되는데?
후회할 거라고 자꾸 협박하는데
후회를 해도 내가 하는 거잖아.”     


이 대사에 아이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랬다. 후회를 해도 본인이 하는 것이다. 10대. 아니 모든 인격체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혹시 부모는 곧 창조자라는 그 권위로 한 인격체에 대한 주도권을 마구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가 창의적으로 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동시에 우리 아이가 남들과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물론 자식에게 가하는 강요라는 것은 훗날 고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고난에 빠지지 않는 것보다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평균에 맞춰 사는 것이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삶의 이유를 모르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어른들은 모르지만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누구보다   알고 있다.




#이유를 알아가는 글쓰기 팁     


모든 글에는 이유가 있다. 즉 원인과 결과가 있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의 첫째도 이유, 둘째도 이유, 셋째도 이유다.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왜 그 생각을 했는지 왜 그 감정을 느꼈는지 쓰는 것이 글이다. 어른들의 글도 마찬가지인데, 의외로 결과만 있는 글들이 많다. 반드시 문장 앞뒤로 원인, 이유가 빠지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쉬운 연습법은 “왜냐하면~ 때문이다.”를 써보는 것이다.

가령 이 남자는 무슨 고민을 할까?를 주제로 10대부터 70대까지 “왜냐하면 ~때문이다”로 이유를 써 본다. 이런 식으로 “왜냐하면~ 때문이다.”가 훈련이 되면 접속사를 빼본다. 자연스럽게 원인과 결과가 물 흐르듯이 연결되도록 문장을 써 버릇한다.      


왜?

물음표의 어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간이 앉아서 무언인가를 생각하는 모습을 본뜬 기호라는 의견이 가장 지배적이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다. 즉 내가 온몸으로 표현하는 그 물음을 써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모든 글쓰기는 물음표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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