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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Jun 07. 2021

게임에 빠진 아이는 어떻게 책에 탐닉하게 됐을까?

                                                                                                                                        

아이의 취미는 게임, 특기도 게임이었다. 게임 유튜버를 할만큼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물론 게임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게임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시대는 이미 지나도 한참 지났다. 오영은 박사의 조언처럼 게임은 이제 놀이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어릴 적에 고무줄놀이를 하고 공기놀이를 했듯 소위 디지털 세대라 불리는 2000년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게임은 하나의 문화일 뿐이다. 많은 부모들의 딜레마는 여기서 생긴다. 그렇다면 게임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게임 중독에 빠지지는 않을까. 공부를 등한시 하면 어떡하나…. 대체적으로 게임을 그러니까 좀 많이 즐기는 아이들은 책을 안 본다. 영상에 익숙하다보니 독해력 자체가 느리고, 키보드 자판이 익숙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건 팔이 아파서라도 싫다.




엄마가 글쓰기 수업을 신청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게임대신에 내 생각을 글로 쓸 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우리의 수업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아이는 게임 마니아였다. 선생님이 눈치 채지 못 할 거라고 여겼겠지만 온라인 수업을 할 때도 아이가 집중하는지 안하는지는 다 보인다. 초반엔 전 세계 게임 유저들에게 온갖 메시지가 날아 들어왔다. 아이의 시선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화면 아래 손가락은 쉴 새 없이 게임 채팅방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다 들린단다 얘야.’) 대놓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말하진 않았다. 대신 게임으로 아이의 환심을 사보려 했다. 초반에 글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시킬 수 있어야 했다. 


“게임 좋아한다고 엄마한테 얘기 들었어요. 그런데 게임도 시나리오가 있는 거 알아요?”


아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게임은 개발자들이 만드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 친구가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데, 동료 중에 시나리오 작가도 있어요. 게임에도 캐릭터가 있죠? 그거 다 작가들이 창조하는 거예요.“


“와~ 진짜요?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요?”


건너편에서 타닥타닥-신나게 두들겨대던 자판 소리가 멈췄다. 내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뿐만이 아니에요. 학교에서 숙제로 뭐 내줘요?”


“뭐 요즘은 스피치도 좀 하고, 탐구 생활 보고서 같은 것도 쓰고요.”


“그거다 쓰는 거죠? 그럼 나중에 학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고등학교나 대학갈 때 뭐 써서 내죠?”


“입학지원서요.”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려면 뭐 써요?”


“이력서랑 자기소개서요.”


“죽기 전에는 뭐 써요?”


“음...유언장이요?”


“글쓰기가 매우 싫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쓰면서 살아요. 그런데 그걸 잘 못해서 대필을 부탁하고 매번 전전긍긍하면 인생이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글쓰기에 대한 아이의 관심은 제로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았다. 그림을 보고 주어와 서술어를 꾸며보는 아주 단순한 두 세줄 문장쓰기부터 시작했다. 물론 짧은 글에도 틀린 맞춤법이 왕왕 있었지만 고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따금씩 보이는 탁월한 묘사나 비유를 칭찬해줬다.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나 혹은 가족, 주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써보면서부터였다.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일상을 글로 표현하고 활자로 기록할 수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할 무렵 시쓰기를 도모했다. 


“오늘은 나에 대해 시를 써 볼 거예요.” 


“네에?! 아~~~~저 시 진짜 못쓰는데. 왜 써야 되요?”


“취미가 뭐예요? 시쓰기요. 멋지지 않아요?


“오 좀 멋진데요!”


“그래서 쓰는 거예요. 별 거 없어요. 멋있으니까.”

(특별하거나 남다른 것에 골몰하는 사춘기 중학생에게는  ‘멋짐’ 이라는 게 꽤 통한다.)


“근데 저는 저를 잘 모르겠어요. 엄마가 저보고 생각이 없데요. 선생님 저는 정말 생각이 없을까요? 그런데 무슨 유튜브에서 봤는데요. 코기토 에르고 논 숨이 그랬다면서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코기토 에르고 논 숨(cogito ergo non sum)은 사람 이름이 아니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라틴어에요. 그 말은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했죠.”


“아~ 데카르트.. 그럼 저는 생각을 안 하니까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음.. 지금 생각하고 있잖아요?”


“네?”


“내가 생각 없이 사는 걸까? 그럼 존재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고 있는데요?”

곧바로 아이는 뭔가 떠오른 듯 시를 썼다. 


제목: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부모님은 내가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맞다. 
나는 생각을 안한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생각 주머니들이 점점 자라기 시작했다. 시에 재미를 붙였고 원고지 500자도 쓰지 못해 쩔쩔매던 손가락이 어느새 2000자 가까이를 써내기 시작했다. 기폭제가 되어준 책은 <어린왕자>였다. 다독을 권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단 독후감을 쓰기 전, 책에 관해 1시간 정도 토론 혹은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초2 때 읽었던 <어린왕자>와 중 1이 되어서 읽은 <어린왕자>는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그때도 이해가 안가서 ‘뭐지?’ 했었는데 지금도 ‘뭐지?’ 라는 거다. 그런데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뭐지?’가 약간 다르단다. 나는 그 설명할 수 없는 ‘뭐지?’에 대해 써보라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처음 ‘어린왕자’를 접했다. 하지만 이해가 하나도 안 가고 뭐지 하고 시작해서 뭐지하고 끝났다. 시간이 지나 중학교 1학년, 우연히 또 이 책을 접했다. 별 기대를 안 하고 읽었는데 느낌이 아예 달랐다. 물론 이번에도 뭐지 하고 시작했다가 뭐지 하고 끝났다. 그런데 2학년 때에 뭐지 하고는 많이 달랐다. 그때는 생각 없는 뭐지였고 지금은 생각 있는 뭐지였다. 
(중략)
나는 뭐지라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한 번 더 읽어봤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뭐지가 답이다. 나는 항상 다른 뭐지를 느껴보기 위해서 이 책을 5년 마다 읽을 것이다. 여러 번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을 헤매게 만든다. 만약 어린왕자에게 "뭐지가 뭘까요?” 라고 묻는다면.. "상관없어요. 당신이 생각하고 싶은 것이에요."라고 답을 할 것 같다.



전문을 다 실진 못했지만 어른들은 절대 넘볼 수 없는 아이만의 시각으로 쓴 독후감은 생생하게 날아 다녔다. 신선했고 놀라웠다. 무엇보다 나를 감동하게 만든 것은 독후감 끝에 추신으로 쓴 짧은 메모였다. 


와아아아!!!!! 드디어 끝났다!! 고작 이거 쓸려고 일요일을 다 썼는데 무의미하게 게임하는 것보다 의미있게 머리를 쥐어짜내서 이렇게 철학적으로 시간을 보낸 게 뿌듯하다.


게임을 할 때 느꼈던 몰입감을 글쓰기에서도 발견한 것이다. 더욱이 앞서 언급했던 멋짐이 꽤 중요한 중학생은 자신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행위가 꽤 근사하다는 걸 자각할 때, 더 열심히 글을 쓰기도 한다. 아이는 글 쓰는 내가 멋있어서 또 글을 쓴다. 

감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내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주책맞게 눈물이 날 뻔했다.



 사실 청소년 시절의 나는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다. 우리 집 형편은 좋지 못했고 돈을 버셔야 했던 엄마는 늘 피곤해 보였다.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 내 결핍을 채워준 것은 책이었다. 방에서 홀로 라디오를 들으며 스탠드 불에 의지해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고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동경했으며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탐닉했다. 그렇게 책을 끼고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작가를 꿈꾸게 됐다.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이유는 바로 이 연장선에서다. 내가 그 시절에 느꼈던 정서적 위로, 무궁무진한 또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책은 펼쳐보기 전에는 조용하다.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펼치기 시작하면 엄청난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 책이다. 아이들의 책장에 꽁꽁 덮어진 책을 펼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역할이라면 역할일 것이다. 


글쓰기가 성적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안다. 영어, 수학처럼 필수과목도 아니다. 그럼에도 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냐고 묻는다면 결국 아이가 말한 ‘뭐지?’가 정답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생각을 쓰는 것이고 내 마음을 쓰는 것이다. 우리는 ‘뭐지’를 알기 위해 책을 읽고,  ‘뭐지’를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쓴다.  아이가  마음에 품은 ‘뭐지’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훗날 헤밍웨이를 이야기하고 릴케를 읊을 줄 아는 마음이 풍요로운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아이는 여전히 게임을 제일 좋아한다. 하지만 취미가 하나 더 생겼다. ‘책읽기와 글쓰기.’ 우선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초중생 독후감 쓰기 팁 


1.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사실 동기랄게 없죠 대부분 엄마 혹은 학교에서 읽으라고 시켜서 읽는건데, 동기라니.. 너무 가혹한 처사일 수도 있습니다^^: 결코 좋은 시작이 나올 수 없습니다.)


2. 책의 내용 혹은 주인공, 주제에 대해 간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말로 시작하거나 책 배경에 대한 묘사도 좋습니다. 책의 주제가 모험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모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3.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기억에 남는 글귀를 체크 합니다. 아이의 독후감에 인용할 수 있도록 유도 합니다. 


4. 줄거리2/3, 참 재미있었다 1/3, 최악의 독후감 입니다. 


독후감은 말그대로 책을 읽은 뒤 감상을 쓰는 것 입니다. 책에 대한 내 감상을 줄거리와 교차할 수 있도록, 마치 레고 조립하듯 맞춰가는 습관을 들입니다. 감상이 어렵다면 책 속 주인공의 경험과 나의 경험을 연결해 보세요. 책의 전체 줄거리를 다 쓸 필요는 없습니다. 책 속의 핵심 메시지 하나와 나의 경험을 버무립니다. 


ex. 노인과 바다->실패, 포기했던 경험 

어린왕자->반려동물을 키워봤던 경험


5. 재미있었다,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금지어!


왜 재미있었는지 쓰는 것이 독후감입니다. 다짐형 결론역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식상한 끝맺음 입니다.  주인공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고 나였다면? 가정해보거나 책에 대한 정의 등을 통해 결말을 정리해 보세요. 


6. 제목을 꼭 쓰도록 합니다. 


의외로 제목을 안 쓰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제목은 내가 쓴 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성을 가집니다. 각자 이름이 있듯 모든 글에도 이름을 붙여줘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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