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생활자KAI Feb 27. 2021

일요일마다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말간 얼굴, 순수한 열정

                        

 태양이 가장 뜨거운 오후 2시,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밤 10시, 아침 이슬이 기지개를 펴는 오전 8시, 각자 다른 시공간에 사는 우리는 일요일이면 일제히 동시 접속을 한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종이와 펜을 준비한다. 내 글을 들어줄 최초의 독자가 기다리고 있다.

몇 날 며칠 밤새워 써 내려간 글을 처음 발화할 때 느끼는 야릇한 쾌감, 내 글에 대한 첫 평가를 기다리는 초조함이 결합된 묘한 시간,


“합평”.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며 처음 합평을 제안했을 때 학인들은 쑥스러워했다. 대부분 학교 혹은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 즉 ‘발표’를 해 본 경험은 있지만, ‘낭독’은 난생처음이라고 했다. 정보나 주장이 아닌 내 인생이 그대로 베인 글을 스스로 읽는다는 것은 뭐랄까. 일종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렇다 보니 한동안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어깨는 약간 삐죽 빼족했고, 볼에서는 연분홍빛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를 타고 첫 글이 첫 독자 앞에서 읽힌다. 나머지 학인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점차 낭독자도, 청자도 글에 빠져든다.


 낭독자에게는 읽는 것 자체가 제2의 퇴고다. 읽다 보면 십중팔구 고칠 부분이 나온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면 막히기 마련이다. 글을 읽으면서 고쳐나간다. 낭독이란 소리 내 읽는 것과 동시에 쓰는 작업이다. 어떤 청자는 조용히 눈을 감고, 어떤 이는 바지런히 메모를 해가며, 혹은 낭독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글을 듣는다. 이미 읽은 글이지만 눈이 아닌 귀를 통해 전해져오는 활자들은 또 다른 살아있음으로 나비처럼 귓전에 날아든다. 낭독이 끝나면 각자 글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첫 시간에 학인들은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좋다고만, 공감된다고만 했다. 물론 하나같이 열심히 쓴 글이지만 좋은 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우린 모두 초보자니까. 그럼에도 하나같이 좋다고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은 글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낯설어서였다. 한편으로는 ‘내가 초보인데 감히 누구를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기도 했다.


분명한 건 글은 쓰다 보면 는다. 합평도 하다 보면 는다. 점차 소란 소란 말이 하고 싶어 아우성이다. 초반에는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그쳤지만, 반복적으로 집중해서 듣다 보면 단어 하나하나의 쓰임에 대해 곱씹게 된다. 나아가 각 단락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떻게 구성을 짰는지, 어떤 접속사 혹은 인용에 의해 문장들이 연결됐는지 꼼꼼히 구조를 파악하며 듣게 된다. 단순했던 감상이 날카로운 평가로 변모해 갔다. 유명 강사나 작가의 코칭도 좋지만, 때로 나와 가장 비슷한 보통의 독자가 지적하는 평가가 더 예리하고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글에 대한 평가에 진심을 다한다. 학인에게 건네는 말은 곧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니까. 함께하는 이들의 글을 정기적으로 만나다 보니 D님은 비유나 묘사를 잘하고, A님은 인용을 탁월하게 사용하며, C님은 문체가 담백하다는 스타일까지 잡아낸다. 바야흐로 글을 보는 안목이 생긴 것이다.


 청자는 타인의 글을 통해 역지사지 혹은 공감을 느낀다.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솔직하다. 각 에피소드들이 살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는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겠구나’, ‘새로운 경험이 이토록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구나,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이제라도 그 사람을 이해해야겠다,’ 인간이 가진 도무지 설명 불가능한 갖가지 감정들을 학인들의 글을 통해서 헤아리게 된다. 이 부분은 글쓰기와 별개로 합평이 가진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시차 차이로 인해 사는 곳을 인지했고, 화상회의 아이디가 이름을 말해줬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그 흔한 나이조차 모른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구구절절 말한 적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처럼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었다. 반려묘의 죽음을 함께 애도했고, 주변인의 우려를 뒤로한 채 과감히 나아간 선택을 응원했으며, 후회로 점철된 과거를 위로했다. 일상에서는 좀처럼 접점이 없었을 우리가 ‘글’이라는 하나의 공통사로 모여 자음과 모음에 담긴 뜨거운 삶을 나눈다. 때로는 너무 웃어서 배가 아팠고 때로는 너무 울어서 심장이 아팠다.


실제 하지 않는 시간의 분위기를 묘사하기란 어렵다. 단순히 합평을 통해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정의하기엔 그 의미가 퇴색되는 느낌이다.  화상이라는 제한적인 공간과 서로 다른 시간의 벽을 우리는 각자의 색들로 채워갔다.  그 빛들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고 영롱하여 눈부셨다.  마치 영화 <북클럽>이나, <건지 감자 껍질파이 북클럽>과 같은 동화같은 이야기를 매주 연출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음..합평반 이름을 따로 지어야 할까.)


소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는 첫사랑에 빠진 감정을 “까무러칠 정도의 황홀함”이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첫사랑에서 아주 멀리 이탈해 온, 약간은 시시한 감정을 가진 어른이 된 나는  합평을 통해 다시 한번 까무러칠 정도의 황홀함을 느낀다고 이 글을 통해 고백한다. 학인들이 발견한 일상의 의미화가 근사했고, 그들의 생각 주머니에서 발화한 꽃잎 같은 글들이 아리따웠으며, 무엇보다 이를 함께 나눌 수 있음에 충만했다.


 주 중의 우리는 각자의 시공간에서 글을 읽고 쓴다. 일요일이 다가오면 열심히 빚어낸 글을 꺼내 듣고 말한다. 읽고, 쓰고, 듣고 말하고.. 삶에서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을 말간 얼굴과 순수한 열정으로 만나는 시간. 나는 오늘도 그 소박하고 정겨운 일요일의 시간을 기다린다.





✔️합평 방법


1. 정해진 시간 안에 어느 정도 표준화된 분량(A4 1~2페이지)으로 글을 쓴다.

2. 미리 각자 낭독할 글을 공유한다.

3. 글을 미리 읽어 온다.

4. 낭독은 반드시 소리 내어 또박또박 실감 나게 읽는다.

5. 선 칭찬, 후 비판으로 비평한다. 평가에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동반되어야 한다.



✔️합평 효과


1. 낭독을 통해 자신의 글을 다시 한번 퇴고할 수 있다.

2. 내 생각을 말하는 훈련을 키울 수 있다.

2. 내 글에 대한 타인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다.

3. 글을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5. 경청과 역지사지의 마음,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쌓아갈 수 있다.

6.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 구조, 문장력 등을 배울 수 있다.

학인들과의 우정은 덤❤️




                                              























매거진의 이전글 내 글은 얼마짜리일까? 7천원~2천 만원까지 크몽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