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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Feb 04. 2021

내 글은 얼마짜리일까? 7천원~2천 만원까지 크몽후기

첨삭/교정 팁 8가지

                                                                    

저 멀리 강화도에서 가난한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순수 시인의 대명사였다. 가난은 그의 배를 굶게 했을지언정 영혼을 갉아먹지는 않았다. 시인은 마치 신의 목소리를 받아 적는듯 속인으로서는 절대 쓸 수 없는 투명한 시를 썼다. 인터뷰를 할 때도 흘러나오는 말투는 시만큼이나 착하고 고왔다. 조용히 천천히 세심히 길어올린 말들을 엮어나갔다.



“시집 한 권이 팔리면 저한테 돌아오는 돈이 겨우 3천원이에요. 그런데 3천원이면 저는 밥 한 끼를 사 먹을 수 있어요. 얼마나 고마운 일이이에요. 이 쌀이 제게 오기까지 농부들이 흘렸을 땀을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성인이 순진할 수는 있어도 순수하기는 어렵다고 믿은 내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혔다. 지금까지 만나 본 어른 중 유일무이한 어떤 순수의 결정체였다. 그 하얗고 부서질 듯 한 심성의 결에 감탄하면서도 나같은 속물은 절대 그처럼 살 수도, 쓸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난한 시인은 극단의 예이지만 실제로 많은 문인들이 어렵게 살아간다. 순수하게 시,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오롯이 글만 써서 밥 벌어 먹고 살기 어렵다. 작가들은 자서전 대필이라든지 문화 센터 글쓰기 강사, 번역 등 부수적인 일들을 통해서 하루하루를 벌어먹고 산다. 강사나 번역은 좀 다른 개념이지만 대필의 경우 생활고로 시작했다가 자괴감이 들어서 그만두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내 글이 아닌 남의 글을 그것도 뒤에서 써 준다는 건 그 기간동안 내 글을 못 쓴다는 것을 의미했고 동시에 스스로 영혼을 파먹는 일이기도 했다.

독일에 살게 되면서 한국에서처럼 방송작가 일을 활발하게 할 수 없게 된 나는 크몽을 시작했다. 이 일을 통해 전업 작가들이 넌지시 주고 받았던 무너진 자괴감의 실체를 약간은 피부로 느꼈다.


크몽에서의 글쓰기는 대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의뢰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우선은 자기소개서가 가장 많지만 별 시텁지 않은 소신이랍시고 자기소개서는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스스로 세웠다. 자기소개서라는 것은 학교나 취업의 등락을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인생 중대사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타인의 인생을 대신 써 줄 자신도 없었고 끼어들 마음도 없었다.

자기소개서가 아니더라도 상품 홍보 블로그, 대학 리포트, 영화 칼럼, 사보 기고, 트렌드 동향 정리, 고소장까지 각양각색의 의뢰가 들어왔다. 고소장은 전혀 에상치도 못한 분야였는데 3자 입장인데도 분노가 앞을 가려서 정의감에 불타올라 글을 썼다.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으나 제일 열심히 작업했다.

이외에도 별의별 이유로 매끈한 글쓰기를 원하는 수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박봉이라 해도 글로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도무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모르겠는 엉망진창의 글로 골머리를 앓으며 뜯고 해체하고 조립할 때면 피로했다.


‘내 글을 써야 하는데 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초반에는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읽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경우도 있었고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서 방패를 하나 만들어야 하나 싶은 글도 있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돈을 지불했겠지만, 겨우 몇 천원에서 몇 만원으로 내 살이 여기저기 뜯기고 있다는 기분을 떨쳐버리기가 힘들었다. (여기에 크몽 수수료 20%를 제외하면 생선 뼈다귀에 겨우 달라 붙은 살점만큼의 돈이 내게 들어온다.)


물론 크몽에서도 방송작가는 스케일이 좀 달라진다.  엄연히 내가 했던 일이고 공식적으로 이름을 걸고 영상물을 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그림자 같은 역할은 아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프로그램을 맡길 때는 대부분 1회 이상 미팅을 원했고 한국이 아닌 독일에 거주하는 나는 이에 응할 수 없었다. 한 번은 굴지의 대기업에서 단가 2천 만원의 해외 광고 영상 제작의뢰가 들어왔다. 미팅을 할 수 없었던 나는 한국의 방송작가 친구에게 넘겼다. 배가 안 아팠다면 거짓말말이다. 아니 대놓고 엄청나게 배가 아파서 한 며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나는 독일에서 겨우 몇 천원받고 남의 글을 고쳐주고 있는데 이 친구는 한국에서 기고 날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전 세계에 배포될 영상을 만든다고 생각하니 샘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일이 적어진 그녀에게 저 멀리 독일에서 일감을 던져주었음이 기쁘기도 했다. 만약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일이 가버렸다면 더 분해서 뒷목잡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크몽을 안할 생각은 아니다. 어쨌든 내게 좋은 수입원이 되어 주고 있고, 보람도 느낀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의뢰자들은 글이 새롭게 태어난 것 같다고 연신 고마워했다. 나 역시 미천한 내 글에 대한 그들의 피드백에 감사했다. 창작이야말로 근사한 일이지만 글을 매끄럽게 해준다는 의미의 ‘윤색’도 썩 괜찮은 일이었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글들을 한데 모으고 어울리는 옷을 입혀서 자기 자리에 맞게 배열하는 과정이 의외의 희열을 가져다주었다. 어지럽던 글들이 매끄럽게 정리됐을 때 불투명했던 것들이 환하게 보이는 순간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초반에 나를 괴롭혔던 몹쓸 자괴감은 재창조의 희구로 바뀌고 있었다.


음..이렇게 쓰고 보니 가식적인 것 같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정화 어쩌고저쩌고 운운했던 건 나에 대한 항변이자 포장일 뿐이다. 까놓고 말해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였다면, 한국에서 계속 방송작가로 잘 나갔다면 크몽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나는 결단코 시인처럼 3천원에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도 크몽 노란색 창에 접속한다.


의뢰자님 안녕하세요.
문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몽으로 약간의 반찬값을 버는 전문가의 윤문 팁


1. 문장의 군더더기를 치운다.

군더더기라 하면 기본적으로 접속사다. 하지만, 그러나, 그런데, 그래서...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사를 절단한다.

같은 단어들도 삭제한다.

가령 ‘단골 질문 메뉴다.’

질문과 메뉴가 같은 의미이므로 둘 중 하나만 작성한다.

‘단골 질문이다.’ 혹은 ‘단골 메뉴다.’


2. 이해하기 어려운 긴 비문은 반으로 나눈다.

문맥을 파악할 수 없는 비문들이 나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땐 문장을 반으로 쪼개고 알맹이만 살려낸다.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문장은 과감히 버릴 필요도 있다.


3. 중복되는 의미의 단어와 문장을 삭제한다.

가령 ‘코로나19로 달라진 주거 문화’에 대해 글을 쓴다면, 주제를 의식한 나머지 대부분의 문단 시작을 ‘코로나 19로 인해서’ 집안에 머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코로나19 때문에’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증가했다. ‘코로나19로’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했다. 같은 맥락의 문단들이 반복해서 첫 문단으로 나오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주제에 함몰되어 비슷한 말을 계속 하고 있진 않은지 살펴보자.


4. 주제에 맞는 예인지 살펴본다.

앞서 코로나로 바뀐 주거 문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홈트레이닝, 베란다 정원 만들기, 홈오피스 꾸미기 등의 예를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일종의 반조리 식품인 밀-키트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배달 업계는 코로나로 인해 특수를 입고 있다’로 써 나가버리면 주제가 산으로 갈 수 있다. 보통 다양한 정보를 녹여내려고 하다 보니 파생되는 실수 중 하나다. 주제와 비슷한 것 같지만 어울리지 않는 소재는 과감히 버리자.


5. 특정 계층들만 사용하는 은어, 신조어를 이해하기 쉽게 바꾸고 영어 표기는 스펠을 넣어주거나 한글로 고친다.

특히 영어를 한글로 많이 쓰는 사람들이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업계일수록 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우리는 패셔너블한 당신의 어드바이저가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업그레이드 해 줄 수 있는 프로페셔널함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초이스하세요.’ 얼핏 들었을 때는 문제가 없는 문장이지만 영어가 너무 많으면 불편하다. 엄연히 한글로 쓴 글이고 읽을 대상 역시 한국인이다. 대화할 때는 어느 정도 감안이 되겠지만 활자화되어 대중에게 보이는 글은 영어를 최소화 하는 편이 좋다. 만약 한국어로 대체할 수 없는 영어 사용 시 (스펠링)을 꼭 써 주자.

은서, 신조어도 인터넷 글쓰기는 어느정도 허용이 되겠지만 자기 소개서, 보고서 등 공적인 문서에는 쓰지 않는 편이 신뢰감을 높일 수 있다.


6. 적절하지 않은 인용은 다른 글로 대체한다.

보통 글의 주제를 부각시키거나 품격을 높이고자 인용을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인용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잘 생각해보고 글의 문맥과 적합한 인용을 사용해야 한다. 경험 상 더 적합한 인용으로 대체 했을 때 의뢰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 이었다. 아울러 인용 시 꼭 따옴표 표시를 해 준다.


7. ~것 같다. ~것으로 보인다. 는 자신 없어 보이는 종결어미다.


입장이 불분명한 문장이다. 글쓴이가 자신이 주장하는 바에 확신이 없다는 뉘앙스를 풍길 수 있다. 이런 종결형 어미는 ‘ ~것이다.’ ‘~한다.’로 바꾼다.


8. 상투적인 표현을 피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백지장도 맞들면 낮다. 위기는 기회다, 개혁정신으로 혁신해야 한다, 이런  진부한 표현은 안 쓰느니만 못하다. 차라리 빼는 게 나을 뿐더러, 상투적인 표현을 대체할 수 있는 문장들을 생각할 때 내 글쓰기 실력도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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