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일에서 무소속이었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학원을 다니며 글을 쓰는 꽤 단조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간혹 외롭긴 했지만 외로움이란 모름지기 스스로 짊어져야 할 ‘무게’라 여겨왔다.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나란 인간은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편에 속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에서 워낙 관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보니 이곳도 저곳도 속해있지 않은 ‘경계인’이 묘한 편안함을 주기도 했다. 매슬로우가 ‘위계론’에서 설명했듯 인간은 누구나 외로움과 소외감을 싫어하고 타인과 접촉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그렇지만 수만 겁의 생애 한가운데 무소속이 편한 시기도 한 번쯤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한동안은 단촐한 혼자만의 시간이 쓸쓸하기보다 호젓했다.
물론 그럼에도 생활이라는 것이 있기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런저런 관계가 형성 되곤 했다. 그 인연들은 독일인이든 한국인이든 다정한 현재 진행형인 경우도 있지만(이것은 매우 특별한 축에 속한다.) 얼룩진 만남 혹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허무함으로 사라질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교육, 직장, 학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독일에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분도 있었지만, 정착기에 필요한 정보나 도움만 쏙 받고 얌체처럼 연락을 끊은 이들도 있었다.(흥칫뽕! 잘 먹고 잘 사세요. 저도 잘 살게요) 처음엔 그런 사람들이 야속했다. 대체 나는 무슨 오지랖으로 낯선 이에게 음식을 나눠 주고, 관공서를 따라가 주며, 내 일 마냥 그들의 골치 아픈 고민들을 들어 준 것일까. 일평생 몰랐던 내재된 박애주의를 아주 양껏 발휘했더랬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퍼주기만 했던 내가 미련 곰탱이처럼 느껴져서 속상했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서 ‘혹시 나한테 문제가 있나?’ 자아 비판의 나날이 이어졌고, 새로운 관계를 향한 문은 열릴 듯 말 듯 삐걱삐걱 소리만 내다 점점 더 좁아져 갔다. 소심해진 자발적 경계인은 어느 순간부터 상처 받기 싫다는 이유로 아예 마음의 문을 걸어 잠가버렸다.
그러다 ‘코로나’라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재앙이 휘몰아치면서 진짜 문이 잠겼다. 국경 봉쇄라니. 악화일로 속에 많은 사람들이 독일을 떠났다. 비자가 만료되어서, 취업이 잘 되지 않아서, 일하던 회사가 문을 닫아서,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유럽의 코로나가 염려되어서 그나마 몇 안 되는 지인들, 불특정 다수의 한인들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편의 학업 일정 상 독일에 남기로 결정한 나는 완벽한 혼자가 됐다.
자의적으로 고독을 만드는 것과 타의에 의해 고립에 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고립’이란 지독하게 무서운 단어였다. 두렵고 막막했고 무엇보다 적요했다.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시간이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뚫고 지나간 어둠의 장벽에 나만 뒤쳐져 내팽겨 쳐진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인연들의 얼굴이 터널 속을 통과하듯 휘리릭 지나갔다. 그래, 다들 각자의 길과 방향이 있는 거지. 떠날 사람은 떠나고 머무를 사람은 머무르는 거지.
여전히 알 듯 말 듯 했지만, 오고 가는 것이 인생의 섭리이니까...괜찮아.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다 문득 왜 나는 떠난 그 사람들을 미워했을까 질문을 던져보았다. 곧이어 그냥 그때 상황에 충실했으면 된 것 아닌가?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연락 두절쯤이야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주 작은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었다. 외국 나오면 한국인을 조심하라던데 지금껏 사기 한 번 안 당한 게 어딘가. 무언가를 바라고 도와준 것도 아닌데 연락을 끊었다고 해서 배은망덕이라며 욕할 필요도 없었고 서운해 할 명목도 내게 없었다. 단지 그들은 그 시기에 내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고, 인간 대 인간으로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기에는 서로가 맞지 않았던 것뿐이다. 이런 사람도 있는 거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니까. 모든 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 역시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명제는 관계에도 적용된다. 그들도 나도 결국엔 떠날 행인일 뿐인데, 누가 먼저 다가왔고 연락을 끊었느냐가 뭣이 중헌디 싶었다.
‘떠날 사람’이라는 명제를 깔고 보니 오히려 언제 바뀔지 모를 간사한 마음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떠날 사람이기에 조금은 느슨하게 상대를 바라볼 수 있었고 동시에 떠날 사람이기에 간절함의 작용으로 그 순간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어디 사람뿐이랴. 이마를 환히 비추는 햇살도 볼을 간질이는 바람도, 세차게 어깨에 끼얹는 비도 곧 떠나간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언젠가 떠날 사람일 뿐인데...
그 뿐인데.
당신 역시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했더라면 조금은 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역으로 조금은 더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1년 넘게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는 상황을 겪으며 관계를 재정립함과 동시에 언제 다가올지 모를 새로운 만남을 준비했다. 그래. 매슬로우가 말했잖아. 인간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싫어한다고. 괜히 혼자 살고 싶다고 으스댔던 내가 계면쩍었다. 왁자지껄 정이 부대끼는 소란스러움이 그리웠다. 비자발적인 칩거 생활로 인해 까끌해진 몸과 마음은 윤활유를 원했다. 누구를 만나든 록다운 기간 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고, 건강히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 서로를 우쭈쭈 해 주고 싶었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수다를 떨고 싶었다. 코로나라는 어찌하지 못할 거대한 벽이 아주 조금은 만남과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틈을 만들어 준 셈이다.
상황이 점차 완화되면서 다시 사람들이 독일에 오고 또 가기 시작한다. 이젠 구태여 처음 온 손님을 경계하지도, 떠나는 나그네를 붙잡지도 않으려 한다. 대신 오는 이에게는 환영의 악수를 가는 이에게는 뜨거운 포옹을 내어 주련다.
헐렁하지만 단단하게.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그렇게 나는 내가 원하는 온도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