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한 날보다 설렌 날이 더 많았으니까
어렸을 때 영화 <마스크>를 무지 좋아했다. 한 열 번은 넘게 다시 본 것 같다. 마스크만 쓰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주인공 짐 케리의 모습을 보며 그런 마법의 장비 하나 즈음 갖고 싶었다. 주인공을 따라 하겠다고 얼굴에 초록 물감을 덕지덕지 발랐다가 안 지워져서 엄마한테 혼쭐이 났던 기억도 있다.
영화 <마스크>뿐만 아니라, <슈퍼맨>,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 많은 영웅들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것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고 대체 어떤 사람인지 베일을 벗겨보고 싶게 만든다. 영웅적인 면모가 돋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일상에서 마스크는 익명성 때문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물건이기도 하다. 더욱이 테러를 경험한 유럽에서는 마스크를 쓰면 테러리스트를 떠올리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으로 오인하기 십상이다.
반면 한국은 사정이 좀 다르다. 황사 때문에 일찌감치 외출 시 마스크를 쓰는 게 익숙해지기도 했거니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사회에서 노 메이크업 일 경우 얼굴을 가려주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푹 눌러쓴 모자에 마스크를 쓴 연예인들의 파파라치 사진들이 노출되면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았을 정도다.
코로나 초기, 당연히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했던 한국과 달리 독일에서는 효과를 두고 찬반 논란이 분분했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일반인이 마스크를 쓰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가졌다. 독일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 역시 여론이 나뉘었다. 글쎄. 나는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라 마스크가 코로나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에 초반부터 열심히 썼다. 더 솔직히 말하면 만약 여기서 코로나에 걸린다? 이 혼란 속에서 과연 외국인인 내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무조건 살아남아야 한다며 결의를 다졌고 마스크는 나를 지켜주는 거의 유일무이한 수단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코로나 공포보다 더 참기 힘들었던 것은 마스크에 대한 서양인의 시선이었다. 어떤 이는 마스크를 쓴 나를 보면 인상을 찌푸렸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한 할머니는 눈이 거의 뒤집힐 정도로 놀래시더니 가던 방향을 바꿔 저 멀리 돌아가셨다. 마치 내가 심각한 바이러스 보균자가 된 것 같아 비참했다. 모국 에 살았다면 절대 겪지 않았을 수모니까.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재고해 봐야 할 일이 아닌지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다. 아니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대체 저 동양인 뭐지?’ 하는 무시 혹은 경멸 섞인 그 눈빛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내가 너희에게 강요하지 않듯, 너희도 나에게 강요하지마.’ 속으로는 수천 번 외쳤지만 단 한 번도 대놓고 말하지 못했다. 이 사회에서 외국인인 내가 개인적인 신념의 이유로 마스크를 안 쓰겠다고 하는 자국민을 뭐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하늘 아래 우린 모두 같은 ‘인간’이지만, 국경이 있는 한 외국인과 자국민의 처지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달랐다.
점점 코로나 상황이 악화일로를 겪으면서, 마스크 미착용 시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정부의 지침이 내려지자 그때서야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인은 벌금, 규칙에 굉장히 민감하다. 마스크가 없는데 어떻게 쓰냐, 인권침해다, 그 난리를 치던 사람들도 다들 어디서 구했는지 일제히 마스크를 썼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고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마스크를 외치는 시위는 계속됐다. 옆집에 사는 인심 좋은 S아저씨마저 아이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학교에 갈 때 마스크를 쓰게 하는 것은 엄연히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는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서양인은 인권을 목숨만큼 소중히 여긴다. 나도 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지만 인권도 일단 살아 있어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고 싶었으나, 그와 나의 사고 차이는 한국과 독일만큼이나 먼 대척점에 있었다. ‘인간의 기본 권리를 앗아갔다, 나에게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가 있다.’ 이 무기 앞에서는 그 어떤 논리도 방패가 될 수 없었다.
지리멸렬한 코로나 상황이 이어졌고, 나는 하나의 자구책으로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열었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몇 명만 가르쳐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점차 커져서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을 비롯한 스위스, 스페인, 벨기에 등 여러 나라에 살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게 됐다. 예상하지 못한 다채로운 만남은 다시 한 번 마스크로 불거진 ‘인권’에 대해 떠올려 보는 계기가 됐다.
가령 ‘10대, 핸드폰 시간제한이 필요한가’, ‘청소년은 유튜버로 활동해도 되는가’와 같은 주제로 토론을 할 때 유럽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인권, 자유권, 평등권을 자연스럽게 운운한다. 반대로 한국에 사는 아이들은 내가 짚어주면 논거에 적용은 하되 먼저 인권 혹은 철학적 담론을 끄집어내는 건 어려워했다. 한국 학교에서도 기본권을 가르치지만 접근하는 방법이 달라서일까. 속속들이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서구에서는 인권을 말 그대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가르치지만 동양에서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도리’로 접근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독립적인 한 개인의 인권이 최우선이기에 마스크를 쓰는 게 싫으면 안 쓰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반면 동양에서는 나의 고유한 권리보다 다 같이 사는 사회가 중요하기에 대의를 위해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반론한다. 이렇게 사고방식이 다르다보니 서양인에게 동양인은 인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자, 동양인에게 서양인은 자유를 명목으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자로 규정되어 버린다. 일개 소시민인 나는 뭐가 맞는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일단은 다 같이 힘을 모아 어떻게든 빨리 코로나를 이겨내길 바랄 뿐이었다.
자유를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는 논리는 백신을 맞지 않을 권리로 퍼졌다. 독일은 백신을 개발한 나라지만 접종률은 이웃나라에 비해 낮았다. 코로나는 증감을 반복할 뿐 소멸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백신을 맞았고, 변함없이 독야청정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 이상 그들이 마스크를 안 쓴다고 걱정 하지 않았고 그들도 마스크 쓴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마스크는 독일에 사는 동안 가장 적나라하게 동서양의 인식 차이를 보여준 사물이었다.
되돌아보면 마스크로 인해 차이가 불거졌을 뿐, 모든 것들이 달라도 너무도 달랐다. 사소하게는 ‘감’이란 모름지기 깎아먹는 과일인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은 껍질째 먹었다. 질기지 않을까? 나는 딱 한 번 먹어보고 뱉었다. 감과 달리 사과는 우리도 껍질째 먹지만 이번엔 깎는 방식이 달랐다. 그들은 나의 사과 돌려 깎기 신공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어찌나 신기해하던지 갑자기 마술사가 된 기분이었다. 삶은 달걀은 더욱 놀라웠다. 그냥 한 번에 팍-껍질을 다 까서 한 입에 쏙-넣는게 제 맛이라고 여겼건만 독일식은 뜻밖이었다. 계란 껍데기 윗부분만 나이프로 절단해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마치 요거트를 떠먹듯 살살 파서 조금씩 오물오물 먹는 게 정석이다. 성격 급한 나는 저거 감질 맛나서 언제 다 먹나 싶었지만 로마에 왔으니 로마의 법을 따르자는 심정으로 조급함을 억누르며 조신하게 계란을 떠먹었? 파 먹었?다.
서로 다른 점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일평생 다른 교육과 환경, 가치관 속에 살아온 그들과 나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음을 안다. 다만 그럴 수도 있겠거니, 서로를 헤아려 주었으면 싶다. 어쨌든 편견과 차별은 상처를 남기니까. (지금도 마스크를 쓴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응시하던 체크무늬 망토를 두른 할머니를 잊을 수 없다.) 다름을 인정하기, 좀 더 확장하자면 ‘외국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로부터 무덤덤해지기’는 해외살이에서 멘탈이 탈탈 털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지지대였다.
그 시절 영화 <마스크>가 유난히 재미있었던 것은 내재된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는 주인공으로부터 느낀 대리만족이 아니었을까 한다. 마스크만 쓰면 내성적인 사람도 한 순간에 로맨티스트로, 개그맨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설정은 억압을 터트려주는 묘한 희열이 있었다. 학업 스트레스가 엄청났던 10대의 나는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부터 벗어나 주인공의 일탈을 열렬히 응원했다.
독일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을 욕했지만(물론 속으로) 한편으론 10대 때 동경했던 짐 캐리처럼 이방인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새로운 문화와 풍경을 열심히 즐겼던 것도 같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입고 싶은 대로 옷을 입고 대충 너저분하게 머리를 질끈 묶고 볼 일을 보러 나갔다. 페디큐어를 안 하면 발가벗은 느낌이라며 발마저 그렇게 장식을 해대던 도시여자는 맨 발톱에 민낯으로 외출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 됐다. 툭하면 여행을 떠나던 나를 현실감 떨어지는 인간으로 평가했던 불편한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열심히 돌아다니기도 했다.
때로 이질적인 문화는 차가운 칼로 폐부를 찌르듯 가슴을 후벼 팠지만, 시시때때로 조우하는 이국적인 풍경은 심장병이 걱정될 정도로 자주 심쿵하게 만들었다. 마스크로 인한 스트레스는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 처질만큼 엄청났지만, 이방인이라는 마스크를 쓰고 내 마음대로 살아본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함이 있었다. 그러니까 총합으로 보자면 결코 나쁘지 않았다.
절망한 날보다는 설레던 날이 더 많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