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뼈 때리는 이 대사보다 영화 속 마지막 장면, 유지태의 표정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드넓은 들판에 홀로 서서 슬며시 짓는 미소. 모든 것을 초탈한 듯, 알 듯 말 듯 한 웃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너 없이 못살겠다고 울부짖을 때는 언제고, 궁극의 평화를 찾은 듯 열반에 이른 도인에 가까운 모습이 얄미웠다. 시종일관 이영애가 미웠는데 막판 뒤집기 하듯 돌연 그녀가 불쌍해졌다. 결국 이 사랑의 승자는 이영애가 아닌 유지태다. 그토록 항변했던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주인공인 너, ‘사람이 변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미소였다. 사랑 앞에 번민했던 그 청년도 지금은 알지 않을까.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것임을.
늘 무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사람 혹은 사람의 손길이 닿는 유형의 것이 변할 뿐.
따라가는 것이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변화는 노화만큼이나 당연한 것이겠으나, 그 속도가 나날이 초고속을 달리다보니 이제는 도무지 따라가지를 못하겠다.
얼마 전 한국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녀는 내 귀국에 대한 반가움과 동시에 한국에서의 적응을 걱정했다.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너 한국 오면 놀랄거야. 다 없어졌어. 진짜 다. 갑자기 뭔 메가박스가 2곳이나 생겼고, 대로변은 싸그리 빌딩이야. 코로나라는데 호텔 장사는 더 잘된다네? 도로를 빌딩이 점령했어. 건물은 많은데 갈 데가 없다야.”
20대의 그녀와 나는 어지간히 붙어 다녔다. 홍대에서도 걸어서 15분이면 닿는 거리에 살았던 우리는 매일 동네 구석구석을 종횡무진하며 새로운 문화를 탐닉했고, 밤이면 카페와 술집을 드나들며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 가끔은 낮술을 환영했던 ‘월향’에서 막걸리를 홀짝였다. 술은 거의 입에 대지도 못하면서 그냥 그 분위기에 취하는 것이 좋았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시시콜콜한 농담들을 주고받았고, 멋있는 척 하고 싶어서 카뮈니, 짐 자무시니, 조지아 오키프니 그런 예술가들을 자주 안주 삼았던 것도 같다. 합정역에서 상수역, 와우산로에서 다시 홍대역으로 내려오는 골목길 곳곳에 우리의 젊음이 있었다. 산울림 소극장, 이리카페, 36.5도 여름, 병아리콩, 커피 프린스 1호점, 쿠바왕, 삭 떡볶이….
이들 중 어떤 곳은 사라졌고 어떤 곳은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단다. 물론 내가 홍대에 살 때도 비싼 임대료로 인해 가게 교체가 잦았다. 단골집을 만들기가 무색 할 만큼.
예술가들은 홍대에서 상수로 망원으로 떠밀려갔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났고,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는 홍대의 소상공인들에게 강력한 태풍이었을테다. 결국 대기업 자본이 고유의 문화를 잠식해버렸다. 빌딩으로 가득한 강남보다 비교적 낮은 건물들이 개성을 드러내며 오밀조밀 모여 있는 홍대가 좋았다. 지금의 홍대는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약간은 슬펐다. 이러다 서울 전역이 빌딩 숲이 되는 건 아닌지.
급변하는 세태가 아릿하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 것이다. 가요무대를 틀어놓고 한물간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시던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됐으니까. 언젠가부터 나 역시 과거를 더듬는 소위 말하는 옛날 사람이 됐다. 젊은 시절 듣던 노래, 영화, 음식, 가게들이 주는 익숙한 편안함이 좋은 나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서도 꼭 이렇게까지 달라져야 하는 것일까.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에 대해 자꾸만 의문이 든다. 우리는 언제까지 사라짐 앞에 탄식만 해야 할까.
귀국 전 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그의 말에 나는 '산책'이라고 말했다. 그날은 마치 마지막 선물이라는 듯 아주 오랜만에 해가 반짝였다. 우리는 그 빛을 나침반 삼아 5년여의 시공간을 더듬었다. 매일 조깅하던 공원을 가로질러 제일 먼저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집을 찾았다. 빨간색 간판의 빵집과 100년된 초록색 아치형태의 문을 간직한 모퉁이 2층집. 더이상 우리 집을 우리 집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생경했다. 열리지도 않는 문을 괜히 덜컹 덜컹 흔들어 보았다. 왜인지 내 마음도 덩달아 덜컹 덜컹 움직였다. 꾹 닫힌 문은 이제 다른 문을 열어야 할 차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덜컹덜컹- 여전히 귓전에 열리지 않는 문소리가 들린다. 미련인지 아쉬움인지 이미 찾아온 그리움인지 모를 묘한 감정을 부여잡고 터벅터벅 동네 길을 걸었다.
익숙한 그 길을 걸으며 나는 뜻밖의 새로운 점을 발견했다. 2017년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의 풍경은 ‘최첨단 시대에 말이 되냐’ 의문이 들만큼 소스라칠 정도로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보니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이 단 한 채도 없다. 굳이 다른 그림을 찾는다면 우리 집 건물 1층 파켓숍이 카페로 바뀌었다는 점 정도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을 판매하는 꽃집, 아이들의 성지인 문구점, 아기자기한 책들과 장난감으로 가득한 작은 서점, 장미 아이스크림이 맛있는 프렌치 카페, 매일 아침 갓 구운 빵 냄새를 폴폴 풍기는 베이커리, 각종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비오숍까지. 이 모든 것들이 처음 독일에 발을 내 딛었을 때와 똑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심지어 일하는 사람들마저 같다. 우리 동네는 나 몰래 ‘불변의 열매’라도 먹는 것일까.
달리 보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동반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전히 독일은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곳도, 와이파이가 안 되는 곳도 많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이 정도면 우리 동네의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이 설명되지 않을까 한다. 때때로 불편하고 게다가 불친절한 서비스를 직면할 때 지리멸렬한 독일을 욕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가 발전이 없다고. 모든 게 다 촌스럽다고. 어쩌면 이렇게 변하지 않느냐고. 아마 백년 후에도 형편없이 똑같을 것이라며 으르렁 으르렁 이를 갈았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변화를 거부한 것은 아니다. 조금씩 인터넷이 빨라지고 있고. 카드결제가 가능한 가게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그들은 간격을 두고 각자의 호흡에 맞춰 천천히 변한다. 세상과 변화의 속도를 꼭 같이 할 필요는 없다는 듯 유유자적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 갈 뿐이다. 빠름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대꾸하며. 바뀌지 않음이 곧 도태를 의미하는 매정한 사회에서, 변치 않음의 미덕도 있음을 입증해 주는 곳.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다. 떠날 때가 되고 보니 비로소 이 변치 않음이, 이 느림이 고맙게 느껴졌다. 무뚝뚝한 서비스마저 살가울 만큼. 하루가 멀다 하고 가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불가변의 장소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묘한 안도감과 위로를 준다. 10년 후에, 20년 후에 다시 찾아 와도 내가 살았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반겨줄 것 같은 믿음. 그 신의가 이곳을 떠나려는 자를 따뜻하게 배웅한다. 잘 가라고. 나는 여기 변치 않고 있을테니, 가끔 쉼표가 필요할 때 언제든 오라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또 보자고….
차마 라이프치히가 ‘제 2의 고향’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오히려 눈물 콧물 범벅 애증의 도시에 가깝다. 누군가는 해외 생활의 마무리를 아쉬워할 수도 있겠으나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전혀 아쉬움이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 감정은 ‘시원섭섭함’에 가깝다. ‘시원섭섭함’과 ‘아쉬움’이 똑같은 말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에게 만큼은 분명 다른 뜻이라고 못 박고 싶다. ‘아쉬움’은 미련을 동반한다. 좀 더 살고 싶은 여지가 맴맴 돌고 있는 것이다. 시원섭섭의 ‘섭섭’은 가차 없이 떠나되 이곳을 떠올렸을 때 아련한 그리움이 남을 것이라는 의미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이방인일지 모르겠지만 독일에서 이방인의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쉽지 않다. 시원섭섭할 뿐이다. 그리고 그리워 할 뿐이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김호연의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었다. 홍대가 그리워 선택한 책이었는데, "여기서 평생 살 자신은 없지만 도시에서 이곳을 그리워 할 날은 평생이란 생각이 든다." 이 글귀로 인해 뜻밖에도 독일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보게됐다.
아마 한 사랑을 끝낸 풋내기 청년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는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수는 없지만 평생 그리워 할 것이다. 그토록 얄미웠던 남자의 미묘한 미소는 바로 그 의미였다. 더 이상 그가 얄밉지 않다. 열심히 사랑했고 열심히 아파해봤기에 깨끗이 마음을 비울 수 있었던 것 뿐이다. 살면서 한 번 씩 그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것이다. 다만 그것 뿐. 그걸로 충분할 뿐.
나는 독일을 치열하리만치 사랑했고 때때로 아파했다. 모든 것이 지나간 지금에서야 애증이 아닌 애정으로 이 도시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쉼없이 흐르는 시간은 말없는 교훈을 준다. 가변과 불가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불가변의 힘을 믿어보게 만든 도시. 변혁의 파도 속에서 나약한 내가 휘청거릴 때 이 불변의 장소가 지닌 아름다움이 나를 지탱해 줄 것이다. 그 힘으로 다음 사랑은 더 잘해 볼 참이다. 안녕, 내가 사랑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