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도넛의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이유

결혼의 이유 그리고 삶의 수많은 이유

by 여행생활자KAI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는 이유가 있고,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가 있고, 모든 별들이 자기의 궤도를 지키는 이유가 있고 도넛의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도넛의 한 가운데 동그랗게 구멍이 나 있는 이유는 빠른 시간 안에 고르게 잘 튀겨지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가운데를 비워야 맛있는 도넛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둥글게 비워진 자리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도넛처럼 동그랗게 비워진 자리에서, 결혼의 이유를 찾고 싶어서였다. 여백의 공간에서 모든 것을 재정립하기 위함이었다. 결혼을 한 뒤 결혼의 이유를 찾아 나선 내가 미련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나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솔직히 이런 구차한 변명보다는 일단 잠시 비켜서있고 싶었다는 게 맞겠다. 어마어마하게 바뀌게 될 삶의 변화를 최대한 미루려는 심산이었다.


친절한 사람들, 평화로운 분위기, 고즈넉한 료칸, 그런 편안함 속에서 내가 결혼을 하게 된 이유를 짚어 보게 됐다. ‘결혼의 이유’는 아직도 명확히 잘 모르겠다. 굳이 한 가지를 꼽자면 그와는 ‘대화’가 잘 통했다는 것.


“나는 이 사람과 늙어서도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보았고 답은 “그렇다” 였다.


지금도 그와 난 밤새도록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대화’는 하나의 이유이지만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 근간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인생을 함께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채우는 ‘대화’의 역할은 부부관계에서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친다. 세월이 켜켜이 쌓일수록 대화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됐다. ‘대화’라는 단 하나의 장점이 나머지 숱한 단점들을 보완해 줄 때도 있다.


내게 대화가 통하는 동성 친구는 미나였는데, 비슷한 이성 친구를 한 명 찾았다고 생각하니 결혼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 진 듯도 했다. 나는 참 운 좋게도 평생 함께할 친구를 두 명이나 만난 것이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결혼에 거창한 이유가 있을까.. 이거 하나면 됐지 뭐.. 싶었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별 거 아닌 일에 함께 깔깔 웃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 나는 결혼을 했던 것이었다.


20180717_191304.jpg 다른 섬에 살던 그와 나는 공통의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벽한 결혼의 이유를 찾은 것은 아니다. 결혼이란 평생 공부는 지금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영원히 확실한 정답을 못 찾을 수도 있다. 결혼뿐이랴..


“삶이란 모든 이유를 하나씩 알아가는 여정”이다.


애써 빨리 정답을 찾아내려 급급해 할 필요도 없다. 굳이 다 몰라도 되는 것들도 많다. 다만 정답을 알고 싶은데 도무지 모르겠어서 머릿속에 맴맴 소리만 맴돈다면, 훌쩍 떠나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곳이 어디든 내 마음이 동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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