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여서 좋은 점은 딱 한 가지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를 소개하면 “어머 방송작가세요?” 라는 말과 함께 내비쳐지는 약간의 부러움과 신기함이 섞인 시선. 아마도 이것은 미디어에 소개되는 방송작가에 대한 포장 때문일 것이다. 고수익, 자유롭고 창조적인 성향, 연예인 친구, 한 마디로 잘나가는 ‘도시여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듯 실상의 모습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짧은 고수익의 기간,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단어 뒤에 숨은 고용의 불안함, 창조에 가려진 개편 스트레스, 까다로운 연예인 비위맞추느라 버린 지 오래된 자존심 등이 이 직종의 실체다. 그렇다고 내 직업 선택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다. 이 모든 단점을 덮어버리는 한 가지는 내가 써내려간 글에 누군가는 울고 웃을 수 있음이 감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엇으로도 대신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 고용 불안인데 비단 나뿐만 아니라 고성장의 시대가 끝난 이래로 누구나 느끼는 불안함일 것이다.
“과연 이 직업을 얼마나
오래할 수 있을까?”
선배들을 볼 때면 생각했다. 저 선배는 지금 몇 살인데 이런 프로그램을 하고 있구나..그들의 궤적을 보며 내 행보를 가늠해보곤 했다. 물론 나이 들어서까지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과거에 내로라하는 대작을 했던 분들이다. 시청률 표 하나에 내팽겨 치는 방송계는 치열한 정글이다. 나에게 과연 그만한 능력이 있을까를 몇 번이나 곱씹어 보며 10년 넘게 이 일을 지속해왔다. 아니 버텨왔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10년의 세월만큼 방송계도 많이 변했다. 최첨단 고속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방송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가장 빨리 부응해야 하는 매체다. 종편, 1인 방송 등 다양한 방송 채널이 생기면서 압박감은 더 커졌다. 예전에는 10년은 해야 장수프로그램 소리를 들었지만 요즘은 1년만 가도 효자 프로그램이다. 몇 달을 공들여 론칭한 프로그램이 단 4회에 종영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나는 늘 프로그램을 두 개 이상 했다. 투잡을 해야만 행여나 한 프로그램이 끝나도 불안함 속에 허우적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두 개 이상을 쥐고 있어야 안심이 됐다.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일을 많이 함으로써 얻는 수입의 안정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해서 한 프로그램에 너무 집중하다보면 종영 시 후유증이 크다. 그 허전함 때문에 이별 후 다른 사람을 찾듯 다른 프로그램에 열정을 퍼붓곤 했지만, 때때로 그 적적함과 허무함이 오래 남아서 힘이 들 때도 있었다. 최선을 다해 쏟아 부은 내 마음이 가련해 질 때가 있다. 진한 사랑의 잔상이 괴로우리만큼 오래 기억되듯 말이다.
“최선을 다하되 100%는 주지 않을 것”.
일도 사랑도, 나는 이 원칙을 고수해왔다. 설사 많이 줄지언정 적어도 나를 사랑할 여지만큼은 남기고 주었다.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는 세상 쿨한 척 하면서 심히 안정을 지향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평소의 신념과 달리 살다보면 모든 걸 걸고 싶어질 때가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열정을 쏟아 붓고 싶은 일이 불현듯 다가온다. 갑자기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어떤 사람이 내 인생이 되듯이 말이다.
방송작가 10년 차에 그런 기회가 왔다. ‘기획’이란 것을 처음 해보게 됐다.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것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기획하고 만들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 느끼는 쾌감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짜릿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 하나에 걸었던 시간이 1년 남짓. 다행히 반응은 좋았고 신선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시즌2까지 가진 못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시청률 대비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 종영 이유였다. 자본 앞에서 일개 작가가 대항할 방법은 없다. 많은 프로그램이 돈으로 생기고 돈으로 없어진다. 투자대비 회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사라진다. 그렇게 쓸쓸히 퇴장해야만했던 프로그램은 일일이 손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래서 고작 숫자 몇 개 적힌 시청률 표라는 것이 무섭다.
허탈했다. 10년 넘게 몸담았으면 익숙할 법도 한데, 충격이 컸다. 너무 사랑하는 실수를 범했다. 허무함도 허무함이지만 근본적으로 방송가의 생리에 신물이 났다. 프로그램의 진가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2, 3회 시청률만 보고 폐지를 결정하는 경박함, 사람 귀한 줄 모르고 이 사람 저 사람 멋대로 부리는 횡포, 만들고 사라지고 또 다시 만들고 사라지는 패턴에 현기증이 났다. 자극적인 신박함이 아닌 오랫동안 천천히 전함으로써 사랑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 따위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하는 것일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회의감이 차곡차곡 쌓여 머릿속에서 폭발해 버렸다.
그렇다고 아예 방송작가를 그만 둘 것도 아니었다. 우리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부사 뒤에 붙여지는 수많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시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휴지기’가 필요했다. 머릿속에 담긴 찌꺼기들을 비워내야만 했다.
감정의 찌꺼기를 버리는 휴지통으로 비행기를 선택했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 라면 어디든 좋을 것 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