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를 정한 뒤, 한 달 가량 여행을 간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유부녀가 됐음을 실감했다. 정확히는 유부녀와 싱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차이를 알게 됐다.
결혼하기 전, 내가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보통 돌아오는 반응은 “와 좋겠다, 잘 갔다 와, 누구랑 가는데?” 등의 통상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완전히 달랐다.
“남편 혼자 두고? 너 진짜 대단하다. 남편 밥은? 시댁에는 얘기했어?”
굉장히 놀랍다는 표정은 보너스라면 보너스다.
결혼한 여자는 친구와 둘이 여행을 가면 안 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나는 남편 밥 차려주는 사람도 아니다. 저들이 왜 내 남편 식사를 걱정하지? 오히려 건강히 잘 다녀오라며 날 생각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상한 사회적 통념과 마주한 순간(심지어 21세기에),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라는 자문도 잠시 했지만 반발심이 더 컸다.
“결혼한 여자는 집을 떠나면 안 되는 것인가?”
남편은 물론 내가 없는 상황을 걱정했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가지 말라고 반대하지도 않았다. 아마 그는 아내의 빈자리가 힘들 다기 보다 불편했을 것이다. 밥, 청소, 빨래와 같은 일련의 가사 노동을 오롯이 자신이 해야 하므로.. 결혼 후 나에 대한 의존도가 부쩍 높아진 남편을 보며 한편으로 답답하고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아무리 가사 양립을 외쳐도 어쩔 수 없이 여자인 내가 해야 하는 영역이 컸다.
“왜 결혼하면 남자는 배우자가 아닌 아이로 돌아갈까?”
이것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해묵은 숙제와 같은 것이었다.
“배고파! 밥 줘”, “내 양말 어디 있어?”, “며느리 아가 언제 내려 올거니?”
결혼 후 나에겐 ‘작가’라는 명칭 외 ‘아내’, ‘며느리’라는 수식어가 생겼다. 이는 나에 대한 타인의 요구가 늘었음을 의미했다. 일터가 아닌 가정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결혼이란 것은 각자 살던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사는 것 그 이상을 요구했다.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수많은 요구들에 부응하는 것은 예상보다 꽤 버거운 일이었다.
나는 타인의 부탁이 단 하나도 없는 공간으로 이동하고 싶었다. 오로지 나의 요구에만 응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면에 귀기울이다보면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기고 이는 다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선순환이 생성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번 여행은 나의 결혼에 자유를 부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아내에게도 자유는 필요하다.
물론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통해 상대의 소중함을 느끼게도 된다.
때로 사랑의 존재는 부재를 통해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