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과 코펜하겐
잔인하리만큼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실패한 남자가 있었다. 사랑하는 왕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 형제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정체성을 고민하는 <미운오리새끼>, 크리스마스이브 날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며 성냥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했던 외로운 <성냥팔이 소녀>.. 그가 써 내려간 많은 동화는 상상이 아닌 힘든 나날이 투영된 자신의 삶 그 자체였다.
덴마크하면 동시에 떠오르는 위대한 동화작가 안데르센.
그의 유년시절은 슬펐다. 아버지는 전쟁참전 후유증으로, 구걸로 전전긍긍하던 어머니는 정신질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안데르센의 문학적 소질을 눈여겨 본 한 귀족에 의해 장학생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백조의 재능으로 오리의 현실을 극복했지만, 귀족 출신이 아니었기에 문단에서는 이단아였다. 이에 안데르센은 <벌거숭이 임금님>에 나오는 우둔한 신하들을 통해, 자신을 무시했던 가식적인 사람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사교적이지 못한 탓에 사랑한 번 못 해본 안데르센이 이성에 눈 뜬 것은 마흔에 이르러서였다. 성악가 예니린드를 흠모했지만 그녀는 안데르센을 친구로만 생각했다. 결국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리면서 안데르센의 짝사랑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는 사랑에 실패한 자신을 인어공주를 통해 위로했다. 인어공주는 끝내 이루지 못한 안데르센의 욕망이었다. 이후 안데르센은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은 채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이런 이야기 때문일까. 코펜하겐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어공주는 세계 각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이지만 화려하기보다는 쓸쓸했다. 덴마크 여행에서 인어공주 동상은 안 보자니 서운하고 보고나면 허무한 장소다. 우두커니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인어공주는 한 남자의 인생으로 보자면 턱없이 결핍된 삶을 살았던 그의 자화상을 보는 것도 같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안데르센의 외로웠던 삶이 보상될 수 있을까.
사랑의 실패 후 고집스럽게도 혼자의 삶을 살았던 것을 보면 안데르센은 절대적으로 첫사랑을 믿었거나 혹은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새로운 사랑을 회피했던 것 같다.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는 쪽과 사랑이 올 때 마다 의심 없이 믿는 쪽. 무엇이 옳을까. 생을 통틀어 사랑은 몇 번이나 우리를 찾아올까. 하나의 사랑이 다가왔다 멀어져갈 때면 깨닫게 된다. 시작하는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고, 끝나는 모든 사랑은 마지막 사랑이라는 것을.. 보통의 우리는 다시는 믿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도 다시 한 번 사랑을 믿어본다. 변할 것임을 알면서도 속아준다. 사랑 끝에 찾아올 쓰디쓴 고통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달디단 열매를 모른 척 하면 후회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름다운 꽃’
스탕달은 <연애론>에서 사랑은 ‘아름다운 꽃’이라고 했다. 단 낭떠러지 끝까지 가서 따야하는 ‘용기’가 전제조건이다.
변할 것을 알면서도 속아주는 용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햇살과 폭풍을 동반한 그 이중적인 터널 속으로 당당히 걸어들어 갈 용기.. 그 용기의 끝엔 달콤한 구속과 야릇한 기대감을 동반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안데르센에게도 아주 작은 용기가 존재했더라면 삶이 덜 외롭지 않았을까. 얄궂은 사랑의 변덕을 알면서도 한 번쯤 다시 속아주었더라면 조금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반대로 그는 너무 순수한 영혼을 가져서 사랑의 100% 순도를 믿었고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극한의 순수함은 때로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