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를 업으로 하다 보니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프로그램에 따라 만나는 사람들의 직업군도 각양각색이다. 주부, 학생, 농부, 변호사, 의사, 정치인, 기타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의외로 나는 낯가림이 있다. 그러니까 뭐랄까. 적당히 만나서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직업적 특성상 이골이 날 만큼 잘 할 자신이 있지만, 그 이상 발전 하는 것이 힘들다. 누구에게 나를 소개하고 내 이야기를 하고, 친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왠지 나를 PR하는 일 같아서 불편하다. 예를 들면 소개팅이 그랬다. 무슨 면접 보는 것 마냥, 내가 살아온 30여년의 시간을 단 한 두시간만에 상대에게 설명하고 어필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처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예외가 있다. 다름 아닌 여행지다.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 물론 통성명 정도는 하지만 세세히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여행자들끼리 친해지는 데엔 세 가지 질문이면 충분하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오늘은 어디를 여행하셨어요?”
“내일은 어디를 여행하실 건가요?”
어떤 화젯거리를 꺼내야 할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 이야기만으로도 밤을 새도 모자라니까.
터키, 그리스, 불가리아까지 모든 여행지에서 혼자 여행 온 한국 여자들을 참 많이 만났다. 대부분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우리 또래였다. 그녀들은 직장을 그만두었거나, 잠시 휴직중이거나, 좀 더 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통된 주제는 연애와 결혼,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밥벌이’에 대한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사리 취업을 했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게 되는 나이, 현재 만나는 사람이 나의 평생 동반자가 될 사람인지 아닌지를 물어보게 되는 나이,
“30대”.
그녀들은 평생 묻고 또 물어야 할지도 모를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먼 여행을 떠나왔다고 했고, 물론 나 역시 그러했다.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확실히 기억에 남는 건 그 시간이 참 따뜻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여행을 한다고 해서 해결책을 찾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길 위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았다는 사실이다.
‘나 혼자 길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나 혼자 힘든 것은 아닌 라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위로는
다름 아닌
‘공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