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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Nov 17. 2019

왜 한국여자만 “애교”를 부립니까?

독일어 사전에는 '애교'가 없다


내가 ‘애교’라는 단어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것은 스위스 사촌들을 만났을 때였다. 스위스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그녀들은 종종 유튜브를 통해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경험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애교’에 관한 것이었다.

남녀가 약간의 연기를 곁들여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유튜브였는데, 한국에서는  여자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남자에게 애교를 부리면 비싼 가방을 사준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애교’를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녀들의 질문은 첫째, 나도 남편에게 애교를 취하는지, 둘째, 한국 남자들은 여자가 애교를 부리면 진짜 명품 가방을 사주냐는 것이었다. 나는 뭐라고 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일단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내 주변에는 연애할 때 명품가방을 선물로 받아 본 사람이 없다. 나 역시 애교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내 생각에 애교는 관계를 친밀하게 만들어 주는 윤활유 역할을 분명 하지만 때로는 약간 어린아이의 어리광, 혹은 철없음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가방을 사 주는 것은 일반적이지는 않고 약간은 과장된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또 다른 독일 친구로부터 ‘애교’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애교’에 관한 칼럼을 읽었는데 너무나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로 왜 한국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애교'를 부리냐고 물었다. 대체 애교가 어떤 것이냐며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애교는 내려놓은 지 오래된 나로선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서양인의 시선에서는 애교는 독특한 관계학의 주제다.

유튜브에 이어 칼럼으로까지 소개한 것도 그 증거가 될 수 있겠다.


 ‘애교’라는 말을 대신할 단어가 독일어에도 영어에도 없다.


언어는 한 사회의 의식을 반영한다고 했을 때 대체할 단어가 없다는 것은 당연 생경한 문화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튜브에서와 마찬가지로 칼럼은 대체할 단어가 없으므로 고유명사 그대로 ‘Aegyo’로 표기를 했다. 이 사람은 한국 여성의 애교를 경험해 본 것 일까. 애교에 대한 설명이 절묘했다. 여자가 애교를 부릴 때 몇 가지 제스처를 취하는데 부드럽고 약간 높은 콧소리, 맞장구쳐 주는 웃음, 팔짱 끼기, 상대가 말할 때 박수 쳐주기, 상체를 약간 흔들기 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애교의 어원을 유년시절에서 찾았다. 어렸을 때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애교를 부린다. 아이들은 춤을 추고, 노래하고, 키스하고, 포옹하고, 손으로 하트 사인을 만드는 등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것이 애교의 시작이다.

그런 아이가 성장해서 청소년이 되면, 소년은 대부분 애교가 사라지지만 소녀에게는 그대로 이어진다. 소녀들은 그러한 행동이 남자들보다는 자신들에게 더 기대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체득한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말이다. 이 소녀들은 애교를 가진 여성으로 성장한다.(물론 전부 다 그렇지는 않지만.) 한국 남자들은 애교로 가득 찬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명품 가방을 사준다는 유튜브 영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젊은 여자가 가족이 아닌 남자를 오빠"(Bruder가 아닌 Oppa로 표기했다.)"라고 불렀다면 그것은 연인이 되고 싶다는 의미임을 덧붙였다. 결론지어 한국 사회에서 애교는 어머니의 모성과 같은 관계에서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마무리가 된다.


한국인인 내가 봐도 흥미로운 해석이었다. 생각해보면 한국 가정에서는 근엄한 아빠와 자상한 엄마, 연애에서는 애교 많은 여자와 성실한 남자.. 와 같은 역할 구분이 아주 오래전부터 고정관념처럼 박혀있다. 애교는 여자에게 마땅히 갖추어야 할 역할의 어떤 정점에 있는 수단이다.


많은 한국 남자들은 애교를 좋아한다. 이상형을 꼽는 질문에는 ‘애교 있는 여자’가 상위권에 있다.


한때 ‘귀요미송’이란 것이 유행했었고, 예능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에서 혜리는 애교로 히트를 쳤다. 훈련 마지막 날 군대 교관이 “울음 그칩니다!”라고 다그치자 혜리는 “이이잉~” 하며 울먹였고 그녀의 애교는 그날로 "앙탈애교'로 불려지며 대박이 났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눈 밑 ‘애교살’ 시술 역시 애교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관심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어떤 사회학자는 우리 사회의 애교 열풍에 대해 심리적으로 위축된 남성들이 바라는 이상형이 애교 있는 여성으로 굳어진 것”이이며 젊고 어린것에 대한 열망이 지나치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애교는 사전적 의미로 ‘귀엽게 보이는 적극적인 태도’를 말한다. 칼럼에서도 짚었듯 동물 사회학적인 해석도 있다. 애교적 행위는 ‘어린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어른 생명체’의 부성애와 모성애를 적절하게 자극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어른스럽다”는 칭찬이지만 “귀엽다”라는 표현은 상황에 따라서 해석이 나눠지는 칭찬으로 들릴 수 있다. 무엇보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애교는 남녀를 구분하는 유교사상의  되 물림이기도 하다. 애교 많은 여성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애교 많은 남성은 약간 애매모호하다. 어쩌다보니 나는 애교 많은 남자와 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애교 혹은 교태를 부리는 행동과 말투는 다른 민족(?) 대비 무뚝뚝한 독일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행위로 비쳤을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보다는 남녀평등 인식이 빨리 자리 잡힌 그들의 시선에서는 여자에게만 요구되는 이 문화가 어색하기도 했을 것이다.

 

“왜 여자는 애교를 부려?”

“사랑받기 위해서 혹은 표현하기 위해서”

“그런데 왜 여자만 사랑받기 위해서 애교를 부려?”


이 질문에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전히 남녀차별이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애교는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여성들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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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교는 분명 사이를 돈독하게,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한국 고유의 관계 기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이 유독 여성에게만 자주 요구된다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가 아닐까.


왜 여자들만 남자에게 애교를 부려야 할까?

사랑받기 위한 도구가 여자는 애교, 남자는 명품가방이라는 명제가 부여된다는 것은 사랑 자체를 믿어보고 싶은 이들에게는 슬픈 방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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