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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Nov 20. 2019

당신의 이웃은 안녕하십니까?

독일에는 "이웃의 날"이 있다.

“1009호 세대주 되시죠?”

서울에 살 때 이웃사촌에게 내 이름은 1009호였다.


“이웃사촌: 정이 들어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이 가까운 이웃”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는 가까운 이웃이란 이 친근한 뜻을 가진 이웃사촌의 진가를 느껴 본적이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없었다. 어린 시절 친하게 지냈던 사촌도 어른이 되고 나서는 각자 살기 바빠서 직장 동료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기에, ‘사촌 형제나 다를 바 없는’ 이란 비교가 맞는 것인지도 갸우뚱하게 된다.


서로의 이름도 몰랐고 그렇다고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인사 없이 대면대면했었다. 어쩌다 쓰레기 분리수거와 같은 아파트 시설 관련 일이 있을 때 “몇 호 시죠? 이번에 반상회 모임이 있는데요.” 하면서 말을 주고받은 게 전부다. 사실 층간소음 문제만 없어도 매우 고마운 일이었다. 그것이 나의 서울살이, 이웃사촌 관계의 전부였다.


독일어로 이웃사촌은 "Nachbar(Nähe wohnende Person  가까이 사는 사람)"이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한국이 훨씬 더 친밀한 관계로 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독일에서의 이웃이 오히려 한국의 이웃사촌 개념에 가까워 보인다.


일단 기본적으로 독일 사람들은 만나면 무조건 인사를 한다. “할로(Hallo)”.  바로 맞은편 호수에 살아도 어쩌다 한 번 가벼운 목례로 인사하거나 인사를 거의 하지 않았던 한국에서의 이웃관계와 비교했을 때, 이마저도 내게는 진일보 적이었으며, 곰살 맞게 느껴졌다.


나는 이곳에 산지 얼마 되지 않아 이웃들의 이름도 알게 됐다. 호수가 적힌 한국과 달리 독일의 집들은 우편함과 벨에 이름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름이 적혀 있기 때문에 몇 층에 살고 있는지 헷갈린다는 단점이 있다.) 또 독일 사회는 박사를 무척 우대하고 존경하는 분위기여서 만약 박사학위가 있다면 대문 이름에도 “Dr”가 표기되어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할 때도 박사 란이 따로 있다.


독일에서의 이웃에 대해 다시 진일보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딸기 도둑 사건으로 인해 이웃과 안면을 트게 됐고 “이웃의 날” 초대를 받게 되면서였다.  


“Tag der Nachbarn”


독일 ‘이웃의 날’은 공식적으로 쉬는 날은 아니다. 날짜는 매년 바뀌지만 보통 5월 말에  열린다. 이웃의 날 재단 및 각종 기업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며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일정을 알 수 있고 참여가 가능하다.


건물에 사는 한 사람이 호스트가 되어서 등록을 하고 파티 일정 및 장소를 올린다. 대게 장소는 건물 뜰 (Hof)에서 열린다. 그럼 다른 세대주들이 참가 의사를 밝히고, 함께 모여 파티를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이웃이 모여서 다양하게 짤 수 있다. 가볍게 각자 음식을 가져와서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보통 건물 문이나 게시판란에 이렇게 공고를 써서 붙인다.

새로운 이웃을 알게 되고 친해지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건물 시설이나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할 수 있으며, 서로 의견을 모아 기부를 하기도 한다. 기부는 돈이 될 수도 있지만 음식 등 다양하다. 여담이지만 독일에서는 기부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한국처럼 연말이면 날개 없는 천사가 기부했다는 류의 기사는 다뤄지지도 않는다. 그만큼 누군가를 돕는 일은 흔한 일상 같은 일이다.


한시적인 이웃의 날 뿐만 아니라 특히 세대주 연령대가 비슷한 건물은 프라우(Frau) 모임을 갖는다. 프라우는 여성이란 뜻으로, 여성들의 모임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만남의 장을 갖는다. 수다도 떨고,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주거나 각종 어려운 일들을 의논하곤 한다. 특히 이 모임은 공동 육아에 빛을 발한다. 급하게 무슨 일이 생기면 유치원 픽업을 부탁할 수도 있고, 아이들 역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 한 가지 재밌었던 점은 이런 모임에는 일종의 방판도 이루어지는데, 과거 한국의 쥬단학 아줌마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까. 한국에서는 많이 사라진 풍경이긴 하지만, 독일에서는 방문 판매가 합법이기 때문에 아직도 판매원이 집을 찾아와서 물건을 파는 경우가 있다. 대게 여자들의 모임에는 방문판매원이 화장품이나 각종 가정용품들을 판매한다.


이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대체적으로 21세기의 한국 국민들이 열광했던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것 같았다. 이런 정기적인 모임 외에도 여행을 갈 때 이웃집에 화분이나 반려동물, 열쇠를 맡기고 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화분을 맡기는 문화는 참 독일 사람답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워낙 정원 가꾸기를 좋아해서 화분 맡기는 것은 흔한 일이며 심지어 이와 관련한 내용이 독일어 회화 카테고리도 나올 정도이다.


“Schaden•freude”


물론 독일에서의 이웃관계가 다 좋지만은 않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 독일어에도 “Schaden•freude (Schaden(손해, 상처, 고통)+freude(기쁨)”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란 뜻의 단어가 있다. 이 단어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 그들 역시 이웃의 기쁨을 절대적으로 축하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심술 맞고 나쁜 이웃의 사례도 보았다. 내 지인은 유독 너희 집에서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매번 면박을 주었고, 어떤 친구는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는데도 옆집 할머니가 수시로 찾아와서 너희 집 시끄럽다고 불만을 호소하는 등 어디를 가나 이웃 간의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웃의 날, 여자들의 모임 등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 존재하며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각박한 이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풍요롭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뿔뿔이 떨어져 사는 한국의 친구들이 곧잘 이야기했다.

“동네 친구가 고프다”.


나 역시 서울에 살 때 그랬다. 퇴근 후 기분이 좀 꿀꿀해서 친구와 맥주 한 캔 하고 싶은 날이 있었다. 그런데 불러 낼 사람이 없었다. 적적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잠을 청하고 다음 날 출근을 하곤 했다.


나와 내 친구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분명 우리 모두에게도 이웃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다만 그 마음을 이어주는 계기가 부족한 것이 소원한 이웃관계의 원인이라면 원인이 아닐까.



"···이웃사촌이라고 급할 때는 떨어져 사는 딸보다는
한 지붕 밑에 사는 그 사람들이 더 의지가 되실 거 아녀요? ···"
『살아있는 날의 시작』/박완서



한 지붕 밑에 사는 그 사람들, 서로 의지해 주는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21세기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의 의미 자체가 퇴색되었다. 솔직히 나 역시 오히려 한 지붕보다는 랜선으로 연결된  SNS 이웃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반대로 그만큼 힘든 것을 말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내 이웃이 상처 받고 외롭고 고통받는 이야기를 들어만 주었어도 이따금씩 뉴스에서 들려오는 극단적인 선택이나 고독사 같은 안타까운 참극을 조금은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사람은 관계를 통해서 인간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관계 속에서의 나는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고 믿는 편이다.

여름엔 어떤 꽃이 피는지, 그 꽃을 어떻게 가꾸어야 환하게 만개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사람 사는 냄새를 느꼈다. 아날로그 방식뿐만 아니라 정서까지 고스란히 품고 더불어 살아가는 독일 사람들은 우리가 잊어버렸으나 우리에게 여전히 존재하는 믿음을 일깨워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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