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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Jan 03. 2020

독일도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이 있다.전쟁같은 신년불꽃

연말연초 불꽃놀이(Silvester)

“거긴 미세 먼지가 없어서 좋겠다” 


내가 독일에 온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물론 평소 독일의 공기는 맑다. 그런데 1년 중 독일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한 날이 있다. 날씨 어플역시 어김없이 미세오염도 "나쁨"으로 표시가 된다. 

그날은 다름 아닌 12월 31일과 1월 1일이다. 

독일에서는 신년 이브를 질베스터(Silvester)라고 부르는데 교황 Silverster 1세를 기리는 날로 공식적인 공휴일이다.                      



독일에서 질베스터는 곧 불꽃놀이 데이를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죽의 소음과 연기로 악귀를 물리친다는 오래된 전통에서 비롯됐는데, 보통 12월 31일 오후부터 사람들은 폭죽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이는 1월 1일 새벽까지 지속된다. 베를린, 쾰른 등 대도시 광장에서 펼쳐지는 성대한 불꽃놀이 외에도 개개인들이 거리로 나와서 폭죽을 터트리기 때문에 그야말로 도시 전체에 불꽃이 터진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처음 독일에 왔을 때 축구경기를 할 때와 폭죽을 터트릴 때는 거리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당부를 듣기도 했다. 행여나 불꽃을 터트리는 광란 속에 인종 차별주의자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독일에서 보낸 첫해에는 난생처음 보는 이 광경이 독특했고 재미도 있었다. 일단 마트 만가도 사람들이 마치 오늘이 끝날 것처럼 폭죽을 산다. 


그리고 31일 오후부터 불꽃이 마치 돌림노래처럼 터지기 시작한다. 

거창한 불꽃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가족끼리 나와서 소소하게 불꽃을 터트리는 모습이 잔망스러웠다. 아빠가 불꽃에 불을 피우고 아이는 좋아서 환호성을 지르고 엄마는 웃으며 이를 바라본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하지만 흥미는 잠시였고 소음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불꽃을 터트리는 소리가 거의 전쟁 통에 가까웠다. 흡사 총소리와 유사하다. 게다가 하루 온종일을 지나 새벽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두 번째 해에는 “오늘도 잠은 다 잤군” 투덜거리며 밤새 뒤척거렸다. 세 번째 맞이하는 올해 역시 스트레스를 받기는 매한가지였다. 친정집에서 엄마와 조용히 제야의 종소리를 보고 잠들던 그 평화가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거리 전체가 연기로 자욱하다. 거의 화염 방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음은 새벽 3시 정도까지 이어지다 잦아드는데 다음날 아침거리는 난장판이다. 폭죽에 깨진 맥주병에 정신이 사납다. 내가 아는 독일인이라면 응당 깨끗이 치우고  가는 것이 맞겠으나, 적확히 예상은 빗나갔다. 때때로 이런 시민의식을 모습을 보면 우리는 한국에서 독일에 대해 너무 좋은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날 밤 화려하게 밤을 수놓다 다음날 아침이면 한낱 쓰레기로 전락한 불꽃을 보고 있자니 씁쓸해졌다. 불꽃이 남기는 건 허무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독일 내에선 불꽃놀이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심각한 공기오염을 초래한다는 문제가 있으며 불꽃으로 인한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하며, 광음으로 인해 놀란 동물들이 날뛰는 바람에 다치거나 죽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렇다 보니 유럽에서 가장 크게 불꽃놀이를 펼치는 독일에서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경을 중시하는 독일의 상황을 봐서 불꽃놀이 금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불꽃은 황홀하다. 또한 허망하다.
불꽃이 터트리는 짧은 순간의 찬란함은
올해의 마지막 순간을 붙들고 싶은 마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알게 된다.
황홀함은 짧다는 것을. 


그래서 새로운 해가 오는 것은 반가우면서도 두려운 혹은 허망한 일이 됐다. 1월 1일 새해, 곳곳에 버려진 불꽃 쓰레기는 마치 황홀함 뒤에 찾아오는 허무처럼 보였다. 


<불꽃놀이>/야마시타 키요시

일평생 불꽃만 그렸던 화가 야마시타 키요시(Yamashita Kiyoshi), 그는 하늘 위로 사라지는 불꽃을 색색의 사인펜으로 무수한 점을 찍는 점묘법으로 화폭에 남겼다. 짧은 순간을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는 화법으로 표현했다는 역설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다. 평생 방랑하며 불꽃을 그렸던 ‘길 위의 화가’로부터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나를 투영해본다. 16여 년 간 전국을 방랑했던 야마시타 키요시가 돌아올 수 없는 방랑을 떠나며 남긴 말은


“올해 불꽃놀이는 어디로 갈까?”


올해도 황홀함과 허무함 그 사이 어딘가를 열심히 누벼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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