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쌩텍쥐페리
누구나 하나쯤은 나만의 여행 수집품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각국의 언어로 된 <어린왕자>를 모으는 취미가 있다. 매번 읽을 때 마다 다른 감정을 던져주는 이 책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160여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가든 웬만한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국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을지언정, 다른 글자들이 적힌 같은 제목의 책들이 나란히 꽂혀있는 책장을 손으로 스르륵- 스치듯 만지다보면 마치 어린왕자가 여행한 별들을 순회한다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이루어져있지만 담고 있는 의미는 똑같다는 통일성이 아름답게 느껴짐과 동시에 심심할 때 한 번씩 의식처럼 하는 이 행위가 기분을 썩 좋게 만들었다.
처음 어린왕자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첫사랑에 몹시 심취해 있었던 나는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알려주는 관계의 미학에 매혹됐다. 여우는 풋내기 사랑꾼이었던 나의 연애 코치였다.
“‘길들인다는 게 뭐지?”
“넌 나에게 아직은 수없이 많은 다른 어린아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넌 네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길들임’이란 것,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나 역시 누군가의 길들임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처음 사랑에 눈 뜬 여고생에게 일생일대의 발견이었다. 나는 그를 길들이고 싶었고 동시에 그에게 길들여지고 싶어 안달했다. 청춘의 열기란 늘 빠르게 달아오르는 법이었다. 전혀 다른 별에 있던 너와 내가 만나 새로운 별을 빚어내는 것에는 ‘길들임’이 오작교 역할을 했다.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했듯 우리는 점진적으로 서로에게 길들여졌다. 매주 서로 만나는 날짜를 기다렸고, 평범했던 공원의 벤치가 성지로 변했으며, 그 아이가 좋아하는 음악, 책, 영화를 나 역시 사랑하게 되었다. 내게 길들여짐은 구속이 아닌 구애의 다른 이름이었다.
사랑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러했다. 어떤 하나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고 시간을 공유하다보면 어느 순간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났다.
처음부터 특별한 것은 없었다.
특별함은 책임과 노력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것 있었다.
물론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왕자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장미와 똑같은 장미가 지구라는 별에 수천송이 넘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낙심했다. 하지만 여우를 통해 곧 길들여지지 않은 수천송이의 장미와 자신과 일대일의 관계맺음을 한 까다로운 장미는 같지만 다른 것임을 알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특별함’의 진짜 의미였다. 누군가에게는 한낮 장미에 불과하지만 나에게는 세상에 하나 뿐인 장미라는 것은 ‘길들임’의 정수이자 미학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인생에도 ‘장미’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 사랑스러운 아내 콘수엘로였다. 그녀는 남미 출신의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으로, 사교계의 꽃이었다. 때로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그를 사랑했던 유일한 여인이었다. 생텍쥐페리 역시 독립적인 성격이었고 비행기 조종사란 직업적 특성상 두 사람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괴롭혔지만 변함없이 사랑했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았다. 불행히도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를 발표한 다음 해, 야간비행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영원히 함께했다.
“내 집은 창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이가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하늘을 집 안에 들여다 놓기 위해서.. ”
아내 콘수엘로가 말했듯, 창문을 열어두는 한 사랑은 결코 닫히지 않을 것이다. 시인 마르틴 부버도 시를 읊었다. “네가 너로 있고, 내가 나로 있던 사막에서 너는 내게로 와 우린 만나고 우린 사랑하고 또 헤어졌지. 하지만 너의 너 됨과 나의 나 됨이 없는 저별에서 한 번도 헤어진 적이 없는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난다.”(마르틴 부버/ <만남, 어린왕자에게>)
어른이 된 후 <어린왕자>에 대한 나의 관심사는 유년시절 집중한 ‘관계’에서 이탈해 ‘불시착’에 착륙했다.
30대 중반에 본의 아니게 독일에 살게 된 상황이 불시착과 맞닿아 있어서 일수도 있고, 인생 자체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나야말로 이 지구에 불시착한 외로운 외계인이 아닐까 라는 회의감을 갖게 되는 나이가 되어서이기도 했다. 어릴 때는 사랑이 고달팠는데 어른이 되니 인생이 고달팠다. 허기와 채움의 반복이 인생이란 궤도의 주기였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허무한 삶을 살다가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 그는 무턱대고 양을 그려달라는 이상한 아이를 만난다. 장미를 돌보다 지쳐서 여행길에 오른 이 아이는 이미 여행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경험했다.
명령만 내리는 임금이 있는 별, 허영심으로 가득 찬 사람이 사는 별, 술주정뱅이가 사는 별, 오직 셈만 하는 사업가의 별, 반복적으로 가로등만 켰다 끄는 가로등지기의 별, 자료만 토대로 책을 쓰는 지리학자의 별을 거처 일곱 번째 별, 지구의 사막에 도착했다. 지구는 어린왕자가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들의 집합체였다. 누군가는 상인처럼 덧셈만 하느라 정신이 없고, 왕처럼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 했으며 술에서 위안을 얻고 그게 부끄러워 다시 술을 마셨다. 이런 복잡한 현실에서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자신이 어릴 적 꿈을 품은 아이였단 사실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조종사역시 사막에 불시착하기 전엔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다. 그는 여섯 살 때 주변의 만류로 화가라는 꿈을 접어야했다. 어른들은 그림일랑 집어치우고 수학, 지리, 역사에 취미를 붙이라고 했다. 양을 그려달라고 조르는 어린왕자는 한때 그가 잃어버린 꿈을 흔들어 깨우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은 자명하다. 절대적으로 고독한 시간의 자오선에 불쑥 나타난 어린왕자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고 있는 한 아이를 대변한다.
실제로 어린왕자는 생텍쥐페리의 마음속에 늘 살고 있었다. 1942년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그는 냅킨에 장난삼아 그림을 그렸다. 때 마침 출판업자 커티스 히치콕이 이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써볼 것을 제안 했고,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된 책이 <어린왕자>다. 히치콕이 무엇을 그린 것이냐 물었을 때 생텍쥐페리는 "별 것 아니야. 그냥 마음에 지니고 다니는 어린 녀석이야" 라고 대꾸 한다.
44살의 어른에게 권하는 불시착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집필한 나이는 44세였다.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린왕자는 해가 지는 것을 44번이나 바라보며 외로워했다. 그에게 44년의 인생은 오로지 쓸쓸함의 행로였을까.. 노을을 보며 곧 찾아올 밤을 떠올렸을까. 아니면 한 번 더 붉게 타오를 인생 2막을 떠올렸을까. 중요한 것은 낮과 밤 그 사이의 해질녘에서 한 번쯤은 불시착을 시도해 봄직하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보통 <어린왕자>는 어린이가 읽는 동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텍쥐페리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라고 했다. <어린왕자>는 한때 어린이였던 혹은 여전히 마음에 어린이를 품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불리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린왕자는 치열하게 살아온 44살의 어른에게 불시착을 권한다. 인생의 정점에서 맞이하는 불시착은 삶을 되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나아가게 할 것이다. 굳이 어린왕자를 통해 내면의 순수를 찾아보라고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의도한 불시착이건 그렇지 않은 불시착이건 어린왕자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불시착이 주는 불안함을 덮어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막보다 삭막한 현실을 걷고 있는 어른에게도,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청춘에게도, 마음의 허기를 달고 사는 당신에게도, 어린왕자는 존재한다.
그러니 지구라는 별에서 당신이 혼자라고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K-36nJoAbjo&t=44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