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것 저곳

[안압지] 그리고 [동궁과 월지]

by 강하


직장에 다닐 때 회사 연수소가 경주 보문단지에 있었기에 강의를 자주 다녀 경주가 낯선 곳이 아니었는데, 35년 만에 찾은 경주는 모든 게 생소하게 느껴진다.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경주 유적에 대한 기억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필두로 첨성대 황룡사 천마총 금관총 석빙고 포석정 안압지 정도인데, 경주 방문 동선을 구상하면서 가장 의아했던 곳이 안압지였다. 경주 유적지 지도 어디에도 안압지는 보이지 않는다.

'내 기억이 잘못됐나‥ 없어졌나‥' 궁금했다.

반면에, 내 학창시절 기억에는 없는 [동궁과 월지]라는 곳이 야경 명소로 자주 소개되는데, 그 두 곳이 같은 곳이라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무지 혹은 무식한 건지, 무심했던 건지‥)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인 동궁과 월지는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시 연회를 베푼 장소였는데, 신라가 멸망 후 기러기(雁)와 오리(鴨)가 서식하여 안압지(雁鴨池)로 불렀으나,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月池 ; 달이 비치는 연못)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된 이후 고증을 거쳐 2011년에 비로소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니, 내가 몰랐던 게 변명이 된다.

이 월지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 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안에 3개의 섬과 12개 봉우리의 산을 만들어 꽃과 나무를 심고 짐승을 기를 정도 규모를 연못이라 칭한 스케일도 놀랍고, 불도저나 포크레인도 없던 시절 그 정도 대형 토목공사를 어찌 했는지도 경이롭지만, 가장 이해되지 않는 건 월지에 물을 채운 방법이다.

이 초대형 연못을 만들어 놓고 비 올 때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텐데, 도대체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물을 끌어와 채웠을까..

동서를 막론하고 옛 사람들이 이룬 행적에는 지금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스테리한 게 너무 많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