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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준 Feb 05. 2021

<사는게 뭐라고-사노 요코>

시크한 할머니의 에세이

사노 요코 (1938 ~ 2010)는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다.


살아가는데 어쩌면 많은 것이 필요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삶의 행복을 위한답시고 그렇게 아둥바둥 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시크한 독거 작가 할머니의 에세이집인 <사는게 뭐라고>를 읽으며 때론 키득대며, 속으로 뭉클하고, 가끔 짠했다. 사람들과 또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며, 그치만 또 그게 자신이라고 못내 인정하면서 외롭지만 떳떳하게 죽음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니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할머닌 미장원에 갔다.

"나는 암 환자예요. 머리카락이 자꾸 빠져서요. 면도기로 밀어줄래요?" 라고 했더니 소심한 남자 미용사는 긴장으로 얼굴이 굳어졌다. "징그러우면 안 해줘도 괜찮아요." "아니요, 아닙니다." 미용사는 꺼림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구라도 암에 걸릴 수 있는데.  
눈 깜짝 할 사이에 민둥산이 되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태어나서 이만큼 잘 어울리는 헤어스카일은 없었다는 것. 왠지 모르게 '이게 바로 나'라는 순수한 느낌이 들었다. 95


사노 요코, 작가의 태도는 이러하다. 삶에 대한 애착이 이렇게 가볍다. 남들 신경쓰지 않고 살아간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찾아가 이렇게 대화한다.


내가 큰 소리로 웃자 엄마도 소래 내어 웃었다.

"엄마, 인기 많았어?"

"그럭저럭." 정말일까?

"나 예뻐?"

"넌 그걸로 충분해요."

또다시 웃음이 터져버렸다.

엄마도 따라 웃었다.

갑자기 엄마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여름은, 발견되길 기다릴 뿐이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엄마, 나 이제 지쳤어. 엄마도 아흔 해 살면서 지쳤지? 천국에 가고 싶어. 같이 갈까? 어디 있는 걸까, 천국은."

"어머,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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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두 명의 할머니. 엄마 할머니, 딸 할머니. 고통 속에서도 한번의 위트로 삶과 죽음을 관조할 수 있는 수준은 대체 어떤 경지일까? 나이들어 죽음에 이르러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암이 이제 전이되었다. 그래서 의사의 표정은 어둡다. 하지만 주저하는 의사 앞에 환자는 당당하다. 자신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구차한 연명 대신 깔끔한 마무리를 원했다. 그리고 그토록 하고 싶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워 버린다.


"몇 년이나 남았나요?" "호스피스에 들어가면 2년 정도일까요." "죽을 때까지 돈은 얼마나 드나요?" "1천만 엔." "알았어요. 항암제는 주시지 말고요, 목숨을 늘리지도 말아주세요. 되도록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중략)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재규어 대리점에 가서, 매장에 있던 잉글리시 그린의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주세요." 나는 국수주의자라서 지금껏 오기로라도 절대 외제 차를 타지 않았다. (중략) 마지막으로 타는 차가 재규어라니 나는 운이 좋다. 242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여전히 수수께기다. 죽음도 매한가지다.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구차하지 말자. 쿨하게 떠나자. 

하지만 이 쿨하고 시크한 할머니조차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고민과 아픔은 이것이었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 왜 이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187



아무튼 그녀는 떠났다.

아쉬워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하지 않으니 떠남은 이리도 가볍다.

잠시 삶에 소풍을 왔다 간다.

깃털처럼, 재규어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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