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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준 Dec 09. 2018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기술 [북촌리뷰 #3]

<파산 수업>의 정재엽 작가로부터 듣는 절망 탈출기

우리는 안다. 절망과 패배감이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지금도 우리는 (아니 당신이 아닌, 나는) 이런 패배감과 열심히 싸워 내고 있는 중이다.


북촌티비 에서 정재엽 작가를 만났다. 그는 자칭 금수저다. 부족할 것 없는 집안에서 서포트받으며 가업 기업을 물려받고 탄탄대로의 길을 걸을 터였다. 그러다 느닷없이 2013년 회사는 부도를 맞는다. 이 사건 이후로 모든 것들은 변했고 그는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파산 수업>은 그 절망의 터널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또 어떻게 상처투성이 삶을 겨우겨우 끌고 나갈 수 있었는지 그래서 결국 기나긴 고통의 시절을 끝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그 자신의 기록이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것은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기술을 바로 책을 통해 찾았다는 점이다.


<파산 수업>  - 정재엽


부도로 인해 민형사 사건 33건을 당하게 되면, 거의 매일 법원을 들락날락하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채권자들의 고함과 위협은 일상적인 삶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고통의 시절, 집을 나서며 그는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한 권 집어 든다. 몇 가지 이유에서다. 법원에서든 채권자와의 미팅에서든 기다림은 하염없이 길어질 때가 많고 초조하고 불안한 그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방편이었기도 했다. 책을 읽어가면서 그 책 속의 주인공들과 작가의 목소리가 바로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었고, 때로는 동질감으로 흐느꼈고, 혹은 고난을 이겨나갈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3년 회사는 부도를 맞았다. 꽤나 기반을 다졌던 탄탄한 의료 중소기업이었으나, 부도는 한순간에 회사의 모든 것을 앗아 가버렸다. 정재엽 작가는 말한다.


"자본주의에서 부도는 사형을 당하는 것과 같아요. 자신의 존재감이란 아예 없어져 버리는 것이고, 마치 벌레가 되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죠. 그냥 벌레처럼 손바닥으로 탁 쳐서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는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벌레로 변한 자신을 발견한다. 정재엽 작가는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며 자신이 그레고르가 된 듯한 생각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벌레 같은 존재.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람처럼 취급받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고 했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는 결국 죽지만, 정작가는 살아남았다.



<변신> - 카프카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의 창시자로 유명한 신경심리학자이다. 우리에겐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로 유명한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 끝끝내 살아남았는데, 아무리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은 살아야 하는 의미를 발견해 내는 것이라 했다. 매일매일 찾아가야 하는 법원과 채무자들과의 만남이 정재엽 작가에겐 아우슈비츠가 되었다. 하지만 엄밀히 생각하면 아우슈비츠처럼 생사의 갈림길에서의 고통과 비교했을 때 부도의 상황은 상대적(?)으로 조금은 견딜 수 있는 상황처럼 보였다고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모든 책은 간접 경험이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마음에 따라서 그런 간접 경험이 직접적인 경험 못지않은 위로와 방향을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


45분의 웹세미나를 마치며, 정재엽 작가가 던지는 마지막 말은 이렇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 어둠 속으로 무조건 더 들어가세요. 어둠의 심연 속으로 더 들어가면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바람과 별과 하늘의 나침반이 당신을 옳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업이란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버겁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절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감은 갈수록 떨어지고 패배자가 된 듯한 기분은 하루 종일 가슴을 옥죄어 온다. 주머니 사정은 나날이 헐거워져 가고 어쩌면 모든 노력이 물꺼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무섭다.

이럴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물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날 죽이지 못한다."


오늘의 리뷰는 자뭇 심각해졌다. 상황이 상황이고, 주제가 주제인 만큼. 하지만, 고난에 빠져 있는 그대에겐 더할나위 없는 위로의 메시지가 되길 바래본다.

아마 다음 글은 훨씬 더 경쾌할 것이다.

그리고 정재엽 작가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사람이다. 사실이다.



늘 그렇듯, 시간이 없는 분들은 짧은 웹세미나 영상을 보시길 권해 드린다. 아래 링크이다.


https://chontv.com/book/58

https://youtu.be/ECnSorghm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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