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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효율의 가치

by 안철준


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힘들 때마다 들춰보는 책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입니다.

다들 알다시피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이고, 한국을 포함해서 전세계적으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달리기 매니아로도 유명합니다.

달리기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입니다. 요즘 너무 바빠서 책 읽을 여유도 없이 일 속에 파뭍혀 있었는데,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7년 전의 포스팅을 제게 리마인드 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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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답답할 때, 하루키가 속삭였다.

“계속 달려. 무의미해 보이는 발버둥처럼 느껴지더라도 그건 결코 공허하지 않은 법이야. 그렇게 보잘 것 없는 것들이 니 속에 하나씩 쌓여가며 가치있는 것이 되어가는 거라고. 그러니, 힘들더라도 그냥 달려.”

#무라카미하루키 #달리기를말할때내가하고싶은이야기 #위로

페이스북 포스팅 (2018년 5월27일)





그 때가 40대 후반의 나이에 늦은 창업을 하고 나서 겨우 1년 정도가 흐른 시점이었습니다.

돈은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고, 사업에 대한 미래는 불투명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가족의 격려가 없었다면 진작에 무너졌을 상황이었을 때,

문득 다시 손에 들었던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책이었습니다.

두서 없어 여기 저기 펼쳐 읽다가 바로 저 문장을 만났죠.


"효능이 있던 없던, 멋이 있던 없던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게 가치가 있고,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것들인가에 대한 허무함과 좌절감으로 힘겨워하고 있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제가 속삭여 줬습니다.

원래 그런 거야. 진짜 가치 있는 것들은 지금 보이지 않아. 공허하고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런 행위들이 쌓여서 진짜 가치있고 소중한 것들이 만들어 지는 법이야 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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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세상을 바꿔 놓고 있습니다.

비효율의 영역들을 최고의 효율로 변모시키는 데 AI 만큼 잘해내는 기술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이 효율을 외치며 변화를 추진할 때, 효율이 나쁜 행위에 대한 찬사가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의 성장은 힘겨움과 실패, 그리고 고통 속에서 이뤄져 왔습니다.

아주 작은 성취조차도 허투로 이뤄지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모든 과정들은 한번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사소하고 의미없어 보이고 힘들고 어렵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해내는 그 어떤 비효율적인 무한한 반복을 통해서만이

이뤄지는 작은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AI 시대에서 조차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지극히 효율이 나쁜 행위들을 입니다.

이런 공허한 행위들을 결코 어리석거나 무의미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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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효율이 나쁜 행위 중 대표적인 것이 달리기 입니다.

하지만, 달린다는 그 무의미하고 반복적이고 지겨운 행위들을 통해 작가로의 열정과 근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음을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즘 러닝을 많이 못하고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이죠.

6월22일에 용인 단축 마라톤에 신청해 놓고도 어떻게 태평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운동화의 끈을 조여매야 할 것 같네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고 페이스북이 저를 앞으로 떠밉니다.

달리라고, 그 무의미한 행위를 다시 시작하라고 말이죠.


그래도 그동안 달리면서 이거 하나만은 지킨 것을 자랑하고는 싶습니다.

이 책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얘기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의 문장이자,

저 역시 아직까지는 지켜내고 있는 문장입니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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