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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통과하는 일

by 안철준

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실패의 경험을 책으로 내는 일이란

창업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성공보단 실패할 확률이 더 높죠. 일부 소수만이 성공하고, 대부분 실패한다고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게 창업의 현실이죠.

하지만, 아니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이들의 목소리에만 귀기울이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노하우를 자신에게 적용해서 나도 그들처럼 성공하고 싶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성공에 대한 이야기들은 세상에 넘쳐 납니다.

그렇지만 실패를 다룬 이야기들은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 실패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이가 있습니다. 퍼블리라는 회사를 창업한 박소령 대표인데요.

퍼블리는 가치있는 콘텐츠를 멤버십을 통해 유료로 결재하도록 하는 콘텐츠 플랫폼을 시도했던 회사였고, 나름의 큰 성공을 거둔 스타트 기업이었습니다.

시리즈 B 펀드 레이징을 통해 큰 자금을 확보하여 사업을 확장했지만, 새로 시작한 커리어 사업이 실패하면서 결국 2024년도에 퍼블리는 매각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박소령은 사업에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낱낱히 기록으로 남기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겪은 실패의 과정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온 책이 바로 <실패를 통과하는 일> 입니다.

실패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치부와 아픔을 드러내야 한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험난하고 고난했던 과정을 스스로 대면한다는 것이 여러모로 버겁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소령은 실패의 자기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따박따박 적어내려 갑니다.

흔치 않은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부분에 감정 이입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창업의 험난한 과정을 겪여야 했고, 그 힘겨움을 누구보다 뼈져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성장과 몰락의 과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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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이제 정리해야 겠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은 박소령 대표가 회사를 정리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2023년 그러니까 회사 청산 마지막 1년 전부터 시작합니다.

퍼블리는 결국 시리즈 B 펀드 레이징에 성공해서 큰 자금을 확보하게 되는데요. 그게 2021년의 일입니다.

박소령 대표는 기존의 콘텐츠 회사에서 커리어 서비스 회사로 전환하기로 큰 결정을 하게 됩니다. 커리어 분야가 훨씬 더 큰 마켓 사이즈를 가진 영역이었고, 비즈니스 밸류도 더 높은 도메인이었기 때문이었죠.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더 큰 물에서 제대로 사업을 펼쳐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막대한 자금과 리소스를 투자했지만, 커리어 사업부문에서는 좀처럼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죠. 시간은 흐르고 돈을 말라가는데, 여태 명확한 타깃고객도 찾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시리즈 B의 저주에 갇힌 겁니다.

그 당시의 힘겨움을 견뎌내기 위해 <듄>의 유명한 기도문을 자주 생각하며 읊었다고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움은 정신을 죽이며, 소멸을 불러오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서 흘려보내리. 두려움이 지나가면 마음의 눈으로 그 길을 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없이 나만 남으리


박소령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2015년 나는 미디어 / 콘텐츠가 너무 좋았고, 콘텐츠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창업을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의 나는 엉뚱하게도 채용 사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어쩌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 도데체 어디에서부터 잘못 꼬인 걸까?


충분한 자금이 모여서 뭐든 해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높아졌을 때, 정작 첫 시작의 초심을 잃어버리고 만 것을 한참이 흐른 다음에야 깨달은 거죠.

위하이어라는 HR 서비스를 접으면서 팀원들과 리뷰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때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많은 의견들이 쏟아 졌고, 결국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이 아니라 고객을 ‘계몽’하기 위한 제품을 만들었구나 하는 후회와 반성을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고객보다 우리가 더 잘 안다 고 생각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의 시작이었죠.

아무리 노력해도 사업은 더 나아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신념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자괴감 속에서 결국 회사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겠다고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결국 창업도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

책은 총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업의 10년 과정 속에서 중요한 고비들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각 챕터의 구조도 독특한데, 챕터의 시작은 당시의 상황들을 가급적 있는 그대로 시간 순으로 정리를 해나갑니다. 그리고는 그 때 상황들을 돌이켜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후회, 그리고 깨달았던 지점들을 풀어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과 깨닮음이 각 챕터의 주제에 맞춰 정리되어 있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솔직하게 정리한 각 챕터의 처음 부분들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창업의 시작과 성장, 실패과 견뎌냄의 과정들을 가감없이 드러나 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솔직해진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참 힘겹습니다. 어쩔 수 없이 레이오프를 해야하는 과정도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결국 끝을 향해 가는 그 과정도 지난하고 고통스럽구요. 그 힘겨운 시간을 어찌 견뎌 내었다 싶어 짠합니다.

결국 박소령 대표는 회사를 매각하고,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10년이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10년 동안 박소령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에필로그에서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더 큰 시장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더 높은 기업가치를 노릴 수 있다는 이유로 일하는 것은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잠깐은 할 수 있어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내 인생의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다른 이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된다… 이 책의 메시지를 하나로 응축한다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깨닫게 된 10년의 여정’ 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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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

저 역시 그렇습니다.

7년의 시간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결국 내 핏에 맞는 업은 무엇인가를 찾는 과정이었다는 생각이죠.

아무 것도 모르고 덜컥 창업을 했던 시작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비즈니스의 소통과 연결이 온라인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무모하게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몇 년을 헤매며 내게 창업은 맞지 않아라고 포기하려는 순간 한번의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그건 코로나 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세미나나 컨퍼런스가 불가능해 졌고, 온라인 세미나라는 서비스가 엄청난 각광을 받으며 성장했죠. 그렇게 그 기회를 잘 잡아, 사업의 몰고가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사업은 성장했습니다. 직원도 늘었고, 사업장과 스튜디오도 확장해서 압구정으로 이전도 했습니다. 사업 파트너들도 많이 있었고 일은 끊이지 않았죠.

하지만 어느 순간 코로나가 끝났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니 언제 그랬나 싶게 온라인 세미나의 수요가 거의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웨비나 서비스 운영에만 모든 역량을 쌓아왔던 터라 외주 온라인 세미나 문의가 없어지자 회사의 매출은 순식간에 떨어졌습니다. 아무리 영업을 해도, 사라진 시장의 수요를 다시 만들어 낼 수는 없었죠.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며, 결국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주 문의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 브랜딩만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잇츠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리고도 사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없는 브랜드를 알아달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나는 먹고 살 수 있을까? 이 일은 내가 좋아하고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인가? 늦은 나이에 시작했고,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이 일은 나에게 맞는 일인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 했습니다.

이후의 3년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박소령 대표의 에필로그와 같은 생각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과정이 바로 창업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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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수 있다면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는 참 좋은 책입니다. 성공이 아닌 실패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 누구의 성공과 실패가 아닌,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다는 점에서. 그 힘겨운 과정이 결국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는 여정이었음을 깨닫는 마무리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녀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실패를 통과하는 그 과정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것이고, 지금의 고통을 이겨내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정은 끝나지 않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결코 실패는 실패가 아닌 겁니다.



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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