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뇌는 어떻게 나를 쪼잔한 인간으로 만드는가?

by 안철준

안녕하세요, 촌장입니다.


어느덧 새해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나고도 2월의 중순입니다. 그래서 이때쯤이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됩니다. 나의 새해 다짐들은 잘 지켜지고 있나?

처음의 거창했던 계획들이 하나둘 흐지부지되면서, “역시 나는 의지가 부족해”, “나는 왜 이럴까?”라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저만 그런가요?

오늘 수요레터에서는 뇌과학자 크리스 나이바우어(Chris Niebauer) 박사의 <뇌는 어떻게 나를 조정하는가>라는 책을 리뷰해 볼까 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괴롭히며 ‘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실체가 실은 좌뇌가 만들어낸 ‘정교한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자아의 허상’에 대한 논의인데요. 조금 도발적이긴 하죠?

이 자체의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지만, AI 시대에 인간만의 장점과 차별화는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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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뇌가 나를 속인다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자책과 판단으로 고통받고는 하죠.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부족해” 같은 목소리들이 우리 주위를 떠나지 않고 괴롭힙니다.

새해의 다짐들이 어느샌가 사라진 지금,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에 시무룩해지는 이유도 다 이런 내면의 목소리 때문입니다. 이 속삭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불행의 시작입니다.

이런 목소리는 좌뇌 때문에 만들어집니다.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자아를 인식한다는 것이고, 이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좌뇌의 역할입니다.

뇌과학에서는 좌뇌의 이런 기능을 ‘해석 장치(The Interpreter)’라고 부르는데요. 좌뇌는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세상은 왜 이렇게 흘러가고 나는 왜 이런 사람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설득해 가는 과정이 좌뇌가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좌뇌의 목표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에 있을 뿐, 그것이 반드시 ‘진실’일 필요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 중의 하나가 1960년대, 마이클 가자니가 Michael Gazzaniga 박사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심각한 간질 증상 때문에 좌뇌와 우뇌의 연결을 차단하는 수술을 진행한 환자로부터 좌뇌와 우뇌의 기능들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분리 뇌 환자의 좌뇌(우측 눈)에는 닭발 사진을 우뇌(좌측 눈)에는 눈 쌓인 풍경을 각각 보여주었죠. 이어서 다른 몇 장의 그림을 보여준 뒤, 가장 연관성 있는 것을 고르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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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좌뇌와 우뇌는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했습니다. 좌뇌에 의해 조정되는 오른손에는 닭 그림을 골랐고, 우뇌에 의해 움직이는 왼손으로는 눈 치우는 삽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분리 뇌 환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왼손으로 눈 치우는 삽을 선택했지요?


우뇌가 왜 삽을 고르게 했는지를 물어본 겁니다. 앞서 살펴봤지만, 말하는 능력은 좌뇌에 속한 기능입니다. 우뇌와 분리된 좌뇌는 우뇌가 인지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사실대로 내가 왜 왼손으로 삽을 선택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얘기해야 했지만, 실제 좌뇌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분리 뇌 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닭발은 닭과 관련이 있고요, 그럼 당연히 닭장 청소할 삽이 있어야 하잖아요.


우뇌가 인지한 눈 풍경은 좌뇌는 모릅니다. 우뇌가 시켜서 왼손으로 삽을 선택한 이유를 닭장 청소할 삽이 필요하다고 짐짓 둘러대고 설명하려 합니다.

환자는 아주 확신에 차서 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조금의 인식조차 없었다고 하죠.

좌뇌에게는 진실이나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럴듯한 설명과 확신만 있으면 좌뇌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뿌듯해하죠.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상황 아닌가요? AI의 대답 속에서 할루시네이션이 바로 이런 상황처럼 저는 느껴집니다. 논리적이고 빈틈없어 보이는 AI이지만, 잘못을 마치 사실인 양 뻔뻔하게 말하는 것은 좌뇌가 하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려면 좌뇌와 우뇌가 필요하고, 그 사이에 긴밀한 연결이 필요하듯이, 어쩌면 AI에게도 우뇌와 같은 기능이 필요해 보입니다.

자 아무튼, 우리가 평소 느끼는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야.”,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게 분명해.”라는 생각들은 사실은 좌뇌가 앞뒤 맥락을 맞추기 위해 써 내려간 ‘소설’일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세상은 이렇게 규정되어 있어. 옳고 그르고, 잘되고 잘못되었다는 생각들은 이렇게 좌뇌에 의해서 고정되고 확신이 되어 갑니다. 바로 이렇게 자아가 형성되어 갑니다.



좌뇌는 분류한다


좌뇌의 기능을 하나 더 살펴볼까요?

좌뇌는 세상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모든 것에 이름표를 붙이는 걸 좋아합니다. 이를 ‘범주화’라고 합니다.

이것과 저것이 같거나 다르다는 느낌. 분류와 범주화를 통해 세상을 더 명확히 구분해 낼 수도 있지만, 이런 범주는 사실 개념에 불과한 측면도 있습니다.

진짜 현실을 설명하기보다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가상의 컨셉인거죠. 그래서 언어와 개념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편리한 ‘지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지도(언어와 관념)’를 진짜 ‘영토(실제 현실)’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착각이 생기고 혼선이 만들어집니다. ‘ 우리가 만든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관념의 틀에 갇히면, 우리는 생생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필터로만 세상을 보게 됩니다.

스트룹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빨간 이라는 글자를 빨간색으로 쓰면, 우리의 인식은 빨간색을 아주 명료하게 인식합니다.

그런데 파란이란 글자를 노란색으로 쓰게 되면 순간 우리는 멈칫하게 됩니다.

진짜와 개념 사이에서 혼란이 일어나는 거죠. 지도와 영토는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은 것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이게 다 좌뇌 때문입니다.



삼각형은 없다


자아란 명사라기 보다는 동사에 가깝다.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만 존재한다.”<뇌는 어떻게 나를 조정하는가> 중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자기라는 인식, 즉 자아란 신기루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요? 아래의 그림을 한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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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가운에 역삼각형이 보이실 겁니다. 하지만 사실 그곳에는 삼각형이 없습니다. 주변의 패턴이 만들어낸 착시일 뿐이죠. 하지만 우리는 삼각형이 존재한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이 보이지 않는 삼각형이 우리의 자아와 같은 개념은 아닐까요? 생각, 기억, 감각이라는 주변 정보들이 만들어낸 패턴일 뿐,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

자아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자아란 개념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시간과 더불어 흘러가는 자신이라는 개념과 더 가까운 게 아닐까요?

사실 자아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범주화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편이라면 더더욱이 그렇죠.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좌뇌가 자아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것이 나 자체라고 믿을 때 발생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생사의 숱한 고통이 생깁니다. 그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주장하듯 현재의 자신과 앞으로 되고자 하는 미래의 나를 구분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자아를 밀어붙입니다. 그 과정에서 힘겨움과 고통이 시작되는 거죠.


다시 한번 상기하자면, 여기서 고통의 정의는 우리가 더 나은 내가 되고자 그렇지 않은 나를 배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슬픔, 실망, 고뇌라는 감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좌뇌는 단지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좌뇌와 완전히 동일시하여 그것이 나 자체라고 믿을 때, 고통은 압도적이다.
<뇌는 어떻게 나를 조정하는가> 중에서


그래서 내 생각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죠. 삼각형은 어디로 갔나요? 단지 주변의 상황이 바뀌었을 뿐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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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뇌의 발견


폭주하는 좌뇌를 진정시킬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요? 저자는 우뇌에서 방법을 찾습니다.

좌뇌가 언어라면 우뇌는 공간을 인지합니다. 우뇌는 행동과 움직임을 관할합니다. 손을 움직이고 걷고 달리고 물건을 집고, 요리를 하고, 책장을 넘기는 행위는 모두 우뇌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이런 행동과 움직임을 했는지를 인지하고 있나요? 어떤 생각의 과정이 있었나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우리에겐 어떤 오해가 생깁니다. 생각의 과정이 필요한 언어 중추의 좌뇌가 더욱 중요하고, 우뇌는 그냥 아무런 의식도 필요없는 기능으로 치부해 버리는 거죠.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억할 점은 이 두 가지 행위가 고도로 복잡하고도 의식적이라는 것이다. 비록 좌뇌가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에 이런 활동은 아주 사소한 일로 취급받는다
<뇌는 어떻게 나를 조정하는가> 중에서


숨 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명상입니다. 명상을 통해 우리는 생각을 멈추고 차분히 자신을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가상의 자아가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거죠.

그래서 저자는 명상과 수련을 좌뇌에 지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라고 주장하고 있죠.

좌뇌가 쉴 새 없이 말할 때, 우뇌는 침묵하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합니다. 우뇌는 언어가 없어서 명확히 규정짓고 똑똑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우뇌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전체를 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유명한 나이키의 문구는 우뇌의 가치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을 멈추고 이유를 묻지 않고 그냥 하는 것 ‘Just Do It. 쓸데없는 잡생각에 우울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지금 당장 하는 그 행위를 통해 자아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건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박사가 주장했던 무언가에 깊이 빠져드는 몰입(Flow)의 순간에 활성화되는 지점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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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의 길


그렇다면 우리의 실천 전략은 무엇일까요?

그냥 기존처럼 좌뇌의 강함 드라이빙에 자신을 맡겨 전진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더 큰 성취와 발전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좌뇌의 힘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우뇌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소위 구도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죠.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도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볼 수 있겠죠.

좌뇌를 없애야 할까요? 아닙니다. 좌뇌 없이는 사회생활도, 계획도, 생존도 불가능합니다. 좌뇌는 생존을 위한 훌륭한 ‘도구’이지만, 우리의 삶을 휘두르는 ‘주인’이 되어서는 곤란하죠.

자아를 죽이려 애쓰는 대신, 그것이 그저 ‘이야기’임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사실 알아차림 만으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잘되는 타인과 비교되는 자신이 비참해질 때, 그래 이건 좌뇌의 목소리일 뿐이야라고 알아채는 겁니다. 누군가 자신을 비방할 때 화가 욱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좌뇌의 생각 때문이지 라고 인지하는 겁니다. 그러면 금세 현재의 자신으로 돌아올 길을 찾아냅니다.


전략 1: 생각과 거리두기 (관찰자 시점) 생각을 멈추려 하지 마세요. 대신 떠오르는 생각을 하늘의 구름처럼 바라보세요. “나는 화가 난다”가 아니라 “내 안에 화라는 감정이 지나가고 있구나”라고 인식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전략 2: 여백에 머무르기 좌뇌는 ‘사물’에 집중하지만,우뇌는 ‘공간’을 봅니다. 가끔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물건 사이의 빈 공간을 의식해 보세요. 의식을 공간으로 옮기면 마음의 속도가 느려지고 평온이 찾아옵니다.



우리의 삶을 좌뇌 주도에서 중도의 길로 전환하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좌뇌의 해석 장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럼 당신은 전보다 덜 심각해질 것이고, 마음의 고통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뇌는 어떻게 나를 조정하는가> 중에서


좌뇌가 되뇌는 이야기에 너무 깊이 빠져들지 말고,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즐기는 자신의 관객이 되어 보면 어떨까요? 이 책의 영어 원제가 사실은 전체적인 주제를 더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자아가 없으면, 문제도 없습니다(No Self, No Problem)



오늘 수요일은 조금 더 가벼워지시길 바래봅니다.


촌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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