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하나를 들기까지
그날의 소풍은 유난히 길고 버거운 하루였다.
당시 ‘즐거운반’은 네 살 아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기라고 부르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통제가 쉬운 나이도 아니었다.
실내와 달리 바깥활동은 위험 요소가 훨씬 많아
교사는 늘 한 발짝 앞서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아이들은 자유로웠고,
통솔은 그만큼 어려웠다.
그 와중에
함께 담임을 맡은 교사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나는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점심을 먹으려던 참에
한 아이가 도시락을 거의 먹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속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끓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내 도움으로 아이는 식사를 마쳤고,
나는 너무 지쳐
내 도시락에 손을 뻗을 힘조차 사라져 있었다.
점심식사 자리를 찾을때,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도
안전한 자리를 골라 돗자리를 폈었다.
잠깐이라도 숨을 돌리기 위해
아이들을 놀게 두고
나도 김밥 하나를 집어 들려던 순간이었다.
그때 원장님이 우리 반을 지나가며 말했다.
“이 반은 왜 이렇게 통솔이 안 돼?”
아이들을 등진 채
원감과 나란히 앉아 김밥을 먹고 있던
그 교사의 모습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듯 보였고,
머리는 먼지와 흙으로 헝클어진 채
이제야 김밥 하나를 쥔 나는
그 한마디로
‘통솔이 안 되는 교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왜 이렇게 통솔이 안 될까요.”
그 말을 들으셨는지
원장님은 잠시 멈춰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전에도 썼듯이
나를 처음 뽑아주었던 사람은
푸근한 할머니 같은 원감님이었다.
그 자리가 어느 순간
차가운 커리어우먼 이미지의 원장님으로 바뀌었고,
그 사람이 바로 그날의 원장님이었다.
첫인상은 세련되고 쿨했다.
말투도 태도도
요즘식 리더의 모습처럼 보였다.
“선생님들 응원해요.”
“필요한 건 뭐든 지원할게요.”
겉으로는 늘 그런 말을 건넸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이
점점 선명해졌다.
차량 운행 시간,
원장님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나와 함께 하원 지도를 하던 순간들.
그 시간은 종종
누군가를 평가하는 시간으로 바뀌곤 했다.
“저 선생님은 그래서 안 되고,”
“이 선생님은 저래서 문제고.”
그 말을 듣고 있는 동안
내 마음은 점점 불편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나 역시 저렇게 이야기되고 있겠구나.’
그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원장님의 말보다
말이 나오게 되는 순간의 표정과
그 자리에 흐르는 공기를
더 보게 되었다.
응원과 지원이라는 말 뒤에
사람을 쉽게 평가하는 태도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무심코 던져진 그 한마디가
나의 일 년을 그렇게 힘들게 만들 줄은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