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으로 시작한 봄
새 학기가 시작될 때면
어김없이 설렘이 함께 찾아온다.
이번에는 어떤 친구들과 만나게 될까,
어떤 이야기들로 1년을 채우게 될까.
해마다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이 질문 앞에서의 설렘만큼은 늘 새롭다.
이번 해, 나는 ‘즐거운 반’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투담임 체제로 한 해를 보내게 되었다.
함께하게 된 선생님은
몇 년째 ‘즐거운 반’을 맡아오던 분이었다.
내가 처음 이 어린이집에 왔을 때
가장 먼저, 가장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던 사람.
퇴근 후에는 가끔 술 한잔을 기울이며
교실 밖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선생님이다.
‘즐거운 반’ 앞을 지날 때마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문을 열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
그 반에는 언제나 온기가 가득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함께할 1년은
아이들과의 시간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갈 하루하루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같은 반 아이들,
그리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료와 함께하는 시간.
그 기대감이 겹겹이 쌓여
이번 새 학기의 설렘은
평소보다 다섯 배쯤은 더 커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설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새로 배정받은 ‘즐거운 반’에는
몸이 불편한 아이가 있었다.
어렸을 때 겪은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몸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이전에 ‘즐거운 반’을 다녔던 아이의 동생이었다.
어머님과 담임 선생님의 유대가 깊어
가능하다면 같은 선생님이 계속 담임을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바람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게 해서 그 선생님이 아이의 담임이 되었고,
나는 그 곁에서 함께 아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아이를 맡기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전하듯
항상 정성스럽게 직접 만든 간식을 보내주셨다.
말 대신 마음을 건네는 것처럼,
그 간식들에는 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처음부터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아이의 담임이 아니었기에
늘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아이는 아침마다 교실 한쪽에 앉아 있었고,
인사를 건네면
작은 목소리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움직임에는 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였다.
신발을 벗는 일도,
가방을 열고 자리를 정리하는 일도
다른 아이들보다 천천히 이어졌다.
교실의 하루는 늘 빠르게 흘러갔다.
놀이가 시작되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걸음이 교실을 채웠고,
아이는 종종 그 풍경에서
조금 비켜선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도와야 할 순간과
기다려야 할 순간 사이에서
쉽게 판단하지 못한 채 서 있는 일이 많았다.
담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던 순간들.
그럼에도 자꾸만 아이에게 시선이 머물렀던 건
그 아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의 하루가
유난히 조심스러워 보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돌보는 일보다
다른 곳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원장님 앞에서는 늘 바빴고,
함께 만든 활동 결과물도
어느새 혼자 준비한 것처럼 설명되곤 했다.
학부모님들 앞에서는
아이들을 유난히 살뜰히 안아주고 웃어 보였지만,
평소 활동 시간에는
사진 몇 장을 찍은 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길어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말없이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소풍을 갔다.
아이들은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먹고 있었고,
그 아이는 여전히
혼자서는 식사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숟가락을 제대로 쥐지 못해
음식을 앞에 두고 한참을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담임 선생님의 시선은
원감님의 아이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 아이가
밥을 거의 먹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돗자리 위에서
아이보다 더 오래
그 장면을 삼키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