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바꿔 놓은 책임의 얼굴
사원일 때와 보육교사일 때의 가장 큰 차이는
월급도, 업무량도 아니었다.
내가 느끼기엔 오직 하나, 책임의 무게였다.
보육교사로 일할 때 나는 아파도 교실에서 아팠다.
열이 펄펄 끓어도 집에 누워 쉴 수 없었고,
아이들과 ‘병원놀이’를 한다는 핑계로
매트에 누워 잠시 숨을 고르면서도
시선은 늘 아이들 쪽을 향해 있었다.
그때 나는 환자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담임이었고,
아이들의 하루를 붙들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없으면 우리 반은 쉽게 흔들렸다.
대체 선생님이 와도 아이들은 불안해했고,
다른 반 선생님들은 자기 반을 돌보느라
우리 반까지 품을 여유가 없었다.
원장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셔도
아이들의 눈빛은 금세 달라졌다.
마치 어미를 잃은 아기새처럼,
누군가에게 매달릴 곳을 찾는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프지 않으려고 애썼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스스로를 조심시켰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긴장하는 삶이었다.
내 하루가 무너지면
아이들의 하루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사무직으로 일할 때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회사에 말하고 연차를 쓸 수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충분히 출근할 수 있는 날에도
쉬고 싶어서 쉬었다.
지각도 잦았고,
그래서 “근태가 좋지 않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하루 빠진다고 해서
누군가의 하루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업무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었고,
회사라는 구조는
나 하나 없어도 돌아갔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그때 비로소
‘아파도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보육교사였던 나는
늘 누군가의 하루를 책임지고 있었고,
사무직이 된 나는
비로소 내 하루를 돌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차이가,
나를 가장 크게 바꿔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