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선 하루가 남았다
회사생활은 무난했다.
여름엔 성수기였다.
정신없이 돌았다.
그러다 보면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겨울엔 영업전화를 돌렸다. 군것질도 했다.
그렇게 또 해가 바뀌었다.
무난하다는 말은 편한 말인데,
가끔은 무섭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느낌이라서.
특히 사무직을 할 때의 나는
아침부터 마음이 먼저 무너졌다.
출근하려고 문을 여는 순간, 생각은 늘 같았다.
퇴근하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자고 싶다.
그냥… 다시 옷 갈아입고 쉬고 싶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루를 끝내고 싶어지는 마음.
그게 내 일상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꾸 ‘예전의 출근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곳에선 문을 여는 순간, 마음이 반대로 움직였으니까.
어린이집에서는
‘출근하기 싫다’라기보다
오늘이 궁금했다.
오늘은 어떤 수업을 할까.
오늘은 어떤 일이 있을까.
오늘은 누가 또 말썽을 부릴까.
그 질문들이 발걸음을 앞으로 끌었다.
피곤해도 웃음이 먼저 났다.
아이들보다 먼저 도착해 교실을 정리하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작은 발소리가 복도를 달려오면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교실 문을 바라보았다.
"어머, 오늘은 번개맨이 왔네!!”
“어머, 오늘은 엘사가 왔네!”
별거 아닌 인사인데도
그 한마디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루가 ‘시작’이 아니라 ‘열림’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처럼 살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하루는 달력 같았다.
한 장 넘기면 끝.
그리고 또 다음 장.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또 새해가 왔다.
분명 나는 매일 출근을 했는데,
기억에 남는 날은 많지 않았다.
반면 어린이집에서의 하루는 표정 같았다.
어떤 날은 환했고,
어떤 날은 울고,
어떤 날은 웃다가 끝났다.
아침마다 다른 옷을 입고 들어오던 아이들.
그걸 보자마자 “어머!” 하고 먼저 웃어버리던 나.
그 순간들은 이상하게 선명했다.
하루가 ‘지나간다’가 아니라 ‘쌓인다’는 느낌.
그래서 가끔 생각했다.
내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따로 있다는 걸.
물론 어린이집이 늘 쉬웠던 건 아니다.
시끄럽고 정신없었다.
예상 못 한 일이 매일 터졌다.
집에 가면 목이 쉬어 있던 날도 많았다.
그런데 그 피곤함은 이상하게도
속이 비지 않았다.
살아 있는 피곤함이었다.
회사에서의 피곤함은 달랐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닳았다.
퇴근하고 쉬어도 회복이 안 됐다.
주말이 와도 월요일이 같이 따라왔다.
그래서 교실에서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아이들보다 먼저 출근해 교실을 정리하던 아침.
문이 열리고 작은 발소리가 들리던 순간.
내 표정이 저절로 밝아지던 그때.
아마 나는 그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일 나답게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그냥 예전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할 때 숨이 쉬어지는지.
하루가 달력처럼 사라지는 곳이 아니라,
하루가 표정처럼 남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물론 겁도 났다.
다시 시작하는 일은 늘 용기가 필요하니까.
“지금 안정적인데 왜 굳이?”
그 말이 들릴 것도 같았다.
현실적인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어린이집을 떠올리면 마음이 단단해졌다.
아침 인사 한마디로 분위기가 바뀌는 곳.
아이들의 하루가 내 한마디에 달라질 수도 있는 곳.
그게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번에는 도망이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구인 공고를 저장해 두고, 필요한 조건을 정리했다.
예전 경력을 다시 꺼내 문장으로 적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더 배우고 싶은 것을 나눠 적었다.
아직은 확실한 게 많지 않다.
그래도 하나는 분명하다.
하루를 ‘버티는’ 쪽이 아니라,
하루가 ‘남는’ 쪽으로 가고 싶다는 것.
언젠가 다시,
아침 문을 여는 순간부터
“어머!” 하고 웃을 수 있기를.
천천히라도,
나는 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