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어린이집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넘어야 했던 문턱 사이에서.

by ItMiRi

다시 어린이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움은 늘 마음 한쪽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떤 날엔 갑자기 전부가 되어버렸다.

정말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마음만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내가 어린이집을 떠났던 방식 때문이었다.

아이들과 한 해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채,

중간에 퇴사했다는 사실.


그 한 줄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나를 설명해 버렸다.


내가 어떤 교사였는지,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봤는지보다

‘끝까지 못 버틴 사람’이라는 표지가 더 빨리 읽혔다.


원장님들에게 내 사정은 종종 중요하지 않았다.

‘왜’보다 ‘결과’가 먼저였다.

어디를 가든 중도퇴사에 대해 물어보았고,

나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을 매번 새로 포장했다.


본래의 이유를 꺼내지 못할 때는

그래도 나를 망치지 않을 만한,

가장 그럴듯한 문장을 골라 붙였다.

말로 상처를 덮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은 면접장을 나서는 순간마다 힘을 잃었다.

원장님들은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


기회는 종종 ‘그럴 만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린이집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위치는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려웠고,

버스는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규모가 꽤 큰 곳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 이력서를 보고도

중도퇴사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채

나를 불러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추운 날씨는 그날의 결심 앞에서 사소해졌다.

버스 창문에 성에가 얇게 낀 날이었다.

나는 환승을 거듭하며 면접장으로 향했다.


몸은 계속 차가워졌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따뜻해졌다.

‘혹시… 이번엔.’

면접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대화는 생각보다 자연스러웠고,

웃음도 몇 번이나 오갔다.

“어? ㅇㅇ어린이집이네? 나 여기 원장님이랑 잘 아는데.”

어쩌다 그런 말이 나왔고,

원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원장님은 내가 마음에 든다며 오티 날짜를 알려주셨다.

그리고는 층층마다 함께 다니며 선생님들께 나를 소개했다.

“새로운 선생님이세요.”


나는 그 말이 가슴에 닿는 느낌을 오래 기억한다.

‘새로운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오래 잃어버렸던 이름을 다시 돌려주는 것처럼 들렸다.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아주 짧은 미래를 마음속에 그렸다.


아이들 이름이 적힌 사물함, 낮잠 이불의 먼지 냄새,

하원 시간의 분주함,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내 하루들.

기분이 좋았다.

너무 행복했다.


내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어린이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그렇게 믿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상하게도 덜 추웠다.


하지만 다음 날 오전,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한 줄이 모든 것을 멈춰 세웠다.


‘채용취소’


기쁨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제의 웃음이 너무 선명해서 더 어지러웠다.


교사들과 인사까지 나눴는데, 갑자기 채용취소라니.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답답했다.

설명할 수 없는 탈락은 사람을 가장 조용하게 무너뜨린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채용 전에 원장님들끼리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보육교사의 근태나 평판을 확인하는 일이 흔하다고.


아마도 전에 다니던 곳과 연락이 닿았고,

그 과정에서 내 이야기가 흘러들어 갔던 것 같다.


나는 그날 이후로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의 경력은,

그 사람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말해버린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말들은

당사자보다 더 멀리, 더 빠르게 퍼져

마치 진실처럼 자리를 잡아버린다는 것을.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크다.


하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문턱이 있다는 것도

나는 이제 안다.


그때부터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중도퇴사’는 단순한 경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낙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낙인은 종이 위에 찍히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 사이의 짧은 통화,

낮은 목소리, ‘확인차’라는 말속에 조용히 남는다.


나는 면접장에서 내 이야기를 설명했고,

그날의 공기는 분명 따뜻했는데

다음 날 아침 한 줄의 문자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 변화에는 설명이 없었다.


그래서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보다,

내가 알 수 없는 말이 더 빨리 결정권을 쥔다는 사실을.


억울했다.

끝까지 다 말하지 못했던 사정들이

내 부주의나 책임감 부족으로 번역되어 돌아다닐까 봐 두려웠다.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쉽게 규정해 버리는 세계가 미웠다.


그 세계에서는 ‘사람’보다 ‘기록’이 먼저였다.

그리고 나는 배웠다.


간절함이 어떤 문턱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는 것을.

그 문턱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성실함이나 마음가짐을 증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종류의 문턱.

한 번의 중도퇴사가 ‘다음’이라는 단어를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걸

그날의 문자 한 줄이 너무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린이집에서의 하루는 내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다시 배우는 일,

작은 손을 잡고 하루를 건너는 일,


누군가의 성장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일.


나는 그 일을 그리워했고,

아직도 그리워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건 ‘그리움’만이 아니라는 걸.

내가 나를 설명하는 말이

누군가가 나를 규정하는 말보다 늦지 않도록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시간을 다시 쌓아야 한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내 경력의 중간을 보고 멈춰 서기 전에

내가 그 중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중도퇴사가 ‘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 잠시 찍혔다가 지나간 그림자 같은 장면이었다고.

그게 낙인이 아니라,

내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증거라고.


작가의 이전글사무실에선 하루가 사라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