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대신 어른들과 일하게 된 날들

나는 ㅇㅇ반 대신 사무실에 앉게 되었다

by ItMiRi

나는 꿈을 버린 것이 아니라,

꿈이 나를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하는 자리에서 내려왔을 뿐이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유치원 선생님’**의 꿈은

현실에 맞닿아 보니

아이들과의 행복한 하루만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나는 그렇게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괜찮은 자리’들을

모두 뿌리치며

오직 그 직업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왔다.


그래서일까.


보육교사를 그만두고 나니

막상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의 나는

꽤 엉성하게 살아냈다.

친구를 따라 보험설계사도 해 보고,

와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보고,


그러다 결국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사무직으로 흘러들어 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떤 일이든 하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 맞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만으로 선택한 일이었다.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도

어쩌면 운명보다는 우연에 가까웠다.


내가 도망치듯 떠나온 어린이집에서

함께 일했고, 함께 그만두었던 친구가

내가 방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회사에 공고가 났다며

이력서를 한 번 넣어보라고 연락을 해왔다.


그렇게 덜컥 면접이 잡혔다.

아무 준비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본 면접이었지만,

너무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면접을 보고

바로 채용통보를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조금 아이러니했다.

그 회사는 원래

친구 사이로 입사해 함께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아예 채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서로 친구라는 걸 숨긴 채 입사를 했다.


내가 다니게 된 회사는

방범창, 차양, 폴딩도어 같은 것을 제작하는

작은 중소기업이었다.


여름에는 성수기라 정신없이 바쁘고,

겨울에는 조금 한가해지는

그런 회사였다.


어린이집에서의 하루는

늘 시끄럽고, 늘 예측 불가능했지만

아이들의 웃음이 모든 걸 덮어주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하루는 전혀 달랐다.

전화기 소리, 거래처의 요구,

납기와 견적, 그리고 사람들의 감정까지.


여기에는 아이들 대신

어른들의 기분과 이해관계가 가득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이가 아닌 어른들과 일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처음엔 그게 너무 낯설었다.

누군가는 이유 없이 짜증을 냈고,

누군가는 자신의 실수를 아무렇지 않게 내게 떠넘겼다.


아이들 앞에서는 늘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던 내가,

어른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지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졌다.

누군가에게 맞춰주기만 하던 내가

“그건 제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눈치를 보며 삼키던 말을

천천히 꺼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누군가의 세상을 지켜주는 법을 배웠고,

이 회사에서는

내 세상을 지키는 법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꿈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이 선택이

사실은

나를 조금 더 나답게 만드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어릴 적 꿈이 뭐였어?”라는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조금 덜 흔들린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엉성한 우회로가

완전히 틀린 길은 아니었음을

조용히 인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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