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몸짓이 내게 가르쳐 준 보육의 태도
그 아이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그 등을 보며, 무엇을 멈춰야 할지 고민했다.
행동일까, 아니면 나의 판단일까.
처음에는 그저 피곤해서 잠이 든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의 발끝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작은 몸은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그리고 동시에 당황했다.
교실 한가운데에서 마주한 그 장면은,
나를 시험하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이럴 때,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옆반에는 유난히 아가 같은 친구가 있었다.
적응 기간부터 겉옷이나 인형을 꼭 쥐고 다녔고,
인형을 어린이집에 두고 오자고 하자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겉옷을
애착 인형처럼 들고 다니던 아이였다.
막내라 사랑을 듬뿍 받아서일까.
작은 일에도 쉽게 칭얼거렸고,
어리광도 잦았다.
시간이 지나며 아이는 점점 적응하는 듯 보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고,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안기며 애정을 표현했다.
‘이제 잘 지내는구나.’
마음을 놓았던 그때, 아이는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친구들에게 밟힐까 걱정되어 휴식 공간으로 옮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놀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뒤면 또다시 엎드려 있었다.
나는 아이를 제지하는 대신 관찰하기로 했다.
영아에게 몸은 탐색의 대상이다.
특히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안정감을 찾고 싶을 때,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어쩌면 아이에게 그 시간은 혼자 숨을
고르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급하게 “안 돼”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더 자주 눈을 맞추고, 놀이로 초대했다.
신체 활동을 늘리고,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었다.
하지만 행동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담임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선생님, ㅇㅇ이요…
요즘 자꾸 엎드려 있길래 제가 관찰을 했는데요.”
짝꿍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집에서도 이런 모습이 잦아졌대요.
어머니가 놀라 몇 번 혼을 냈더니,
이제는 숨어서 하려고 한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내려앉았다.
멈춘 것이 아니라, 숨은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른 채,
그저 ‘들키면 안 되는 일’로 배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우리는 혼자 고민하지 않았다.
담임교사와 나는 아이의 하루를 함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언제 그런 행동이 나타나는지,
어떤 상황에서 줄어드는지 기록하며 살폈다.
등원 직후 충분히 안아 주는 시간을 만들었고,
자유놀이 시간에는 의도적으로 또래 속으로 연결했다.
원장님과도 상의해 보호자 상담 방향을 정리했다.
‘문제 행동’이 아니라 발달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기 위안 행동임을 안내하고,
혼내기보다 자연스럽게 전환해 줄 것을 부탁드렸다.
교사들 모두가 같은 태도로 아이를 대하기로 약속했다.
우리는 아이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아이를 이해하려 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는 여전히 가끔 엎드려 있었지만,
예전처럼 숨지는 않았다.
대신 교사를 더 자주 찾았고,
친구들과 웃으며 뛰어노는 시간이 늘어났다.
놀이에 몰입해 이마에 땀이 맺힐 만큼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교사의 전문성은 행동을 빠르게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함께 읽어내는 힘이라는 것을.
보육 현장은 매일 선택의 순간이다.
문제로 규정할 것인가,
이해로 다가갈 것인가.
그날 나는 ‘통제’ 대신 ‘이해’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이를 조금 덜 숨게 만들었다.
아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행동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아이가 왜 그런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는지
함께 지켜 주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 아이에게 배웠다.
그리고 그날,
조금 더 교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