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교사로서 내가 다시 배운 책임
그 작고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자주 표적이 되곤 했다.
작은 체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지나치게 순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은 그를 밀치고, 장난감을 빼앗았다.
그래도 그 아이는 늘 웃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유난히 과격한 한 아이는
그 작은 아이를 좀처럼 가만두지 않았다.
사소한 갈등에도 입이 먼저 나갔고,
순식간에 여린 팔과 어깨에 잇자국을 남겼다.
둘을 떨어뜨려 놓아도
어느새 다시 곁으로 다가가
끝내 상처를 남기고야 마는 일이 반복됐다.
아이의 어머니는 늘 조용했다.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죠.”
상처를 보면서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다독이듯 이해해 주었다.
사과를 하면서도 죄송했고,
상처 난 부위를 어루만지면서도 미안했다.
나는 매번 아이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짝꿍 교사가 병가를 내고,
대체교사가 급히 투입된 날.
나는 잠시 원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낮잠 시간,
하필이면 그 두 아이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잘 자.”
인사를 건네던 순간,
작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의 잇자국은 유난히 깊었다.
멍크림을 발라도 붉은 자국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일찍 아이를 데리러 왔다.
굳은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돌아섰다.
몇 분 뒤,
전화가 울렸다.
“선생님, 제가 집에 와서 우리 아이 팔을 보았는데요…”
말끝에 한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사과할 준비를 했다.
죄송하다고, 더 주의하겠다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
그때였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핸드폰 좀 줘봐.”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이 정도면 방치 아닙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왜 매번 상처가 남습니까.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CCTV 좀 보여주시죠.”
‘방치’와 ‘방관’이라는 단어가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
정말 나는
아이를 지키고 있었던 걸까.
다음 날,
아이의 부모님뿐 아니라 조부모님까지 함께 오셨다.
CCTV 속의 나는 분주했다.
하루 종일 두 아이를 떼어놓으려 애쓰고 있었다.
자리를 바꾸고, 사이를 가르고,
시선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결근한 동료의 몫까지 메우느라
유난히 지쳐 보였다.
나는 처음으로
‘교실 안의 나’를
밖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을 다 본 뒤,
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이 신경 많이 써주시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 몸에 자꾸 상처가 나니 화가 나더군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동안 나는
두 아이를 떨어뜨려 놓으면 최선을 다한 거라 생각했다.
주의를 주고 관찰을 강화하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화면 속 나는
애쓰고는 있었지만
완벽하게 막아내지는 못한 사람이었다.
눈물이 났다.
노력을 알아봐 준다는 안도감과
그럼에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신경 써주십시오.”
그 말은 질책이 아니라
부탁이었다.
면담이 끝난 뒤,
나는 낮잠 자고 있는 아이들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현관문이 다시 열렸다.
아버지였다.
손에는 작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어제는 제가 화가 나서 말을 세게 했습니다.
선생님도 마음고생 많으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교실로 돌아와 봉지를 열어보니
비타 음료 두 병이 들어 있었다.
작고 소박한 두 병의 음료가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달라지기로 했다.
‘떼어 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인정했다.
문제가 커지지 않게 관리하는 교사가 아니라,
아이 한 명 한 명의 관계를 끝까지 책임지는 교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끼리 그럴 수 있다”는 말 뒤에 숨지 않겠다고.
순한 아이에게 먼저 이해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더 분명하게 지도하겠다고.
그날 현관에서 건네받은
비타 음료 두 병은
내게 오래 남는 약이 되었다.
아이를 지키는 일은
미안함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날 비로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