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현장에서 버티는 사람의 기록
나 혼자서 두 반을 맡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짝꿍 선생님의 자리는 생각보다
빨리 채워졌다.
원장님 말씀으로는
연세는 조금 있지만
‘원장 경력’까지 있는 분이라고 했다.
어쩌면 전보다
배울 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그래,
지금 내가 누구를 가려가며
짝꿍을 고를 처지는 아니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본 선생님의 인상은
어딘가 둔해 보였다.
말이 느린 건지,
상황 판단이 느린 건지,
아니면 내가 조급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은 낯선지
자꾸만 내 옆으로 모여들었다.
몇 달 동안
같이 울고 웃고 부딪히며 지낸 시간 때문인지
새로운 담임보다
익숙한 나를 찾았다.
안 그래도 정신없던 교실은
더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한쪽에서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쪽에서는 설명을 하고,
틈틈이 “이건 이렇게 하시면 돼요.”를 반복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실수는 계속됐다.
출석 체크를 놓치고,
알림장을 빼먹고,
아이 이름을 헷갈렸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원장 자리도 했던 사람인데.’
‘적응 기간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다시 알려주고,
다시 설명하고,
다시 상기시켰다.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다리는 사람은 늘
밑에 있는 사람이었다.
경력은 위에 있고,
책임은 아래에 남는 구조.
보육 현장에서
‘경력’이 곧 ‘현장 감각’을 의미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그때 조금 알 것 같았다.
나는 점점
짝꿍이 아니라
보조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들 사이를 오가며
두 사람 몫의 긴장을 붙잡고 있는 느낌.
그 선생님의 가장 큰 문제는
다섯 명을 맡고 있으면서도
늘 한 아이에게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유난히 예민하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괜히 문제 생기지 않게
더 신경 쓰고 싶은 마음,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아이만을 품에 안고
다른 아이들에게 등을 보이는 장면이
매일 반복됐다.
그럴수록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
옆 반 아이들까지 더해
아홉 명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몇 번을 말했다.
“한 아이만 보시면 안 돼요.”
“전체를 같이 보셔야 해요.”
그 말이 잔소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날도
나는 여기저기서 터지는 상황을
몸으로 막고 있었다.
물고,
밀고,
때리고.
양쪽에서 동시에 몸싸움이 붙었다.
순간
내 몸보다 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야!”
교사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말.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이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위기는 모면했다.
하지만
그 순간 멈춘 건 아이들뿐이었다.
나는 멈추지 못했다.
심장이 세게 뛰고,
손이 떨렸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아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이 구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상황.
나는 결국
아이들에게 화를 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날 퇴근 무렵,
나는 원장실 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노크를 할까 말까.
괜히 예민한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내가 부족한 건 아닐까.
“원장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두 반을 사실상 혼자 보는 시간들이 많다는 것,
특정 아이에게만 집중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
오늘은 내가 감정 조절을 못 했다는 것까지.
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어떨까요?”
“그래도 원장까지 하셨던 분이니 금방 자리 잡으실 거예요.”
낯설지 않은 답이었다.
보육 현장에서는 늘 ‘조금만 더’가 붙는다.
조금만 더 이해하고,
조금만 더 참아보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는 것.
그 ‘조금’이
누구의 몫인지는 묻지 않은 채로.
사실 내가 바랐던 건 해결책이 아니라
“힘들었겠어요.”
그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말했다.
“저 선생님이 계속 저렇게 하시면…
저는 더 못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선생님이 그만두지 않으면
제가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그건 누군가를 밀어내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붙잡기 위한 말이었다.
더 버티면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될 것 같았고,
이 일을 미워하게 될 것 같았다.
그건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결국 그 선생님은 떠났다.
“제가 더 잘해보겠습니다.”
그 말은 너무 늦게 나왔다.
이미 여러 번 말했고,
기다렸고,
설명했다.
‘잘해보겠다’는 다짐은
함께 버티고 있을 때 나왔어야 했다.
누군가의 자리가 정리되는 순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안도감과 미안함이
같이 밀려왔다.
아이들은 그대로였다.
어른 한 사람이 바뀌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블록을 쌓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이름을 부르고,
다시 무릎을 굽히고,
다시 눈을 맞췄다.
“선생님 봐봐.”
그 한마디에
나는 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이곳에서는 떠나는 사람보다
남아 있는 사람이 더 많이 변한다는 걸.
버티는 법을 배우고,
말을 삼키는 법을 배우고,
그래도 아이 앞에서는 웃는 법을 배운다.
나는 아직 그 일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