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 선생님의 퇴사를 바라보며
어느 날은 평온했고,
어느 날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계절이 바뀌면 어김없이 수족구가 돌았고,
장염 소식이 반을 스쳐 지나갔다.
하루가 온전히 고요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세 살 반 아이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고, 울고, 다시 웃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이불속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그 낮잠 시간만큼은
교실도, 우리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지만 익숙한 하루들을
같이 건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짝꿍 선생님은 ‘가게’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와 함께 식당을 해볼까 한다고,
엄마가 남겨두고 간 재산을 그냥 두기엔 아깝다고,
자기 손맛은 꽤 괜찮다며 웃었다.
처음엔 농담처럼 들렸다.
보육교사라면 한 번쯤은
“나 이 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되묻는 순간이 있으니까.
그 말이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되었다.
어느 날 낮잠 시간,
잠깐 외출을 하겠다던 선생님은
계약을 하고 돌아왔다.
처음에는 병행이라고 했다.
언니가 운영을 맡고
본인은 서브를 하며 어린이집 일을 계속하겠다고.
힘들겠지만 잘되면 좋겠다고,
그래도 우리 반은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진심으로 응원했다.
하지만 며칠 뒤,
그 표정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언니와 함께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본인 반을 끝까지 맡고 싶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혀 달라는 요구,
아이보다 어른 눈치를 더 봐야 하는 순간들,
쌓여가는 행정 업무와 기록들,
그리고 점점 줄어드는 체력과 마음.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고 했다.
퇴사라는 단어는
늘 그렇게 조용히 나온다.
큰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조금씩 쌓인 것들이
어느 날 임계점을 넘는 식으로.
누군가의 미래를
내가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이 일이 누군가의 평생 직업이 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그에 비해 돌려주는 건
마음뿐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서운했다.
같이 버틴 시간은
계약서보다 조금 더 단단하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반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여러 번 경험한 투담임 체계 중
처음으로 많이 배우고,
많이 의지했던 사람이었다.
가끔은 언니 같았고,
가끔은 엄마 같았다.
다른 반 선생님들 앞에서
조용히 내 편이 되어주던 사람.
내가 흔들릴 때
“괜찮아요”라고 말해주던 사람.
이 사람이라면 몇 년은 함께 갈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람을 떠나게 만든다.
아이들은 여전히 웃고,
내일도 같은 자리에서 장난을 치겠지만
그 자리에 서 있는 어른은
조금씩 바뀐다.
좋은 선생님이 오래 남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우리는 또 새로운 짝을 맞춘다.
마지막 날이 오면
우리는 웃으며 인사하겠지.
“가게 꼭 놀러 갈게요.”
“연락해요.”
그러면서도
낮잠 시간이 오면
그 빈자리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그래도 바란다.
그 가게가 잘되기를.
그 선택이 후회가 아니기를.
그리고 언젠가
보육교사라는 일이
‘잠시 머무는 자리’가 아니라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같이 버틴 시간만큼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