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변훈련, 울면 그날은 종료입니다

버티게 하는 대신 안전하게 따라오게 하는 법

by ItMiRi

날이 따뜻함에서 더움으로 넘어갈 즈음이면,

우리 반에는 매년 같은 의식이 열린다.


아이들 성장의 계절이 오면,

기저귀도 함께 계절을 갈아입는다.


“기저귀 안녕!”


어떤 날은 ‘기저귀 파티’라는 이름을 붙여

더 웃으며 시작한다.

스티커판을 꺼내고, 칭찬 도장을 준비한다.

무엇보다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교실 공기처럼 깔아 둔다.


이 의식은 아이들만을 위한 게 아니다.

교사인 나에게도 다짐이다.


이제부터 더 많이 기다리고,

더 많이 관찰하고,

더 많이 닦아주고,

더 많이 웃어주겠다는.


그런데 배변훈련은 선언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선언은 문을 여는 말일 뿐이고,

진짜 시작은 아주 작은 단계에서부터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기저귀를 떼고 팬티를 입히지 않는다.

먼저 아기 변기에 앉아보며 변기와 친해지는 시간을 만든다.

‘사용’보다 먼저 ‘안전’을 배우는 시간이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개인차가 또렷해진다.


변기와 금방 친구가 되는 아이가 있고,

변기만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로 물러나는 아이가 있다.


어떤 아이는

‘쉬’는 금방 감각을 잡는데

‘응가’는 끝까지 기저귀를 찾는다.


낮에는 잘하는데

밤기저귀는 쉽게 못 놓는 친구도 있다.


반대로 어느 날 갑자기 한 번에 다 떼어버리는 아이도 있다.


같은 교실,

같은 변기,

같은 교사 앞에서도

아이들은 각자 다른 속도로 자란다.


그런데 가끔은, ‘개인차’라는 말로 덮으면 안 되는 울음이 있다.


변기만 보면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가 있었다.

변기 앞에만 가면 얼굴이 굳고,

몸이 뒤로 젖혀지며 울음이 폭발했다.


단순히 낯설어서 우는 정도가 아니었다.

울음이 너무 커서,

오히려 조용하게 느껴졌다.


마치 마음 어딘가에 저장된 한 장면이

그 자리에서 다시 재생되는 것처럼.


나는 그 울음이 ‘고집’이 아니라 ‘기억’ 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원 지도길,

어머니 손에 아이 손을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교사의 말은 늘 조심스럽다.

하지만 조심스러움 속에서도

확인해야 할 것들은 있다.


“어머니, 혹시 집에서 변기 연습할 때…

아이가 무서워했던 일이 있었을까요?

어린이집에서는 변기만 보이면

너무 크게 울어요.”


어머니는 잠깐 눈을 피하더니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은 가볍지 않았다.


“제가 욕심이 좀 났나 봐요. 고집 피우는 것 같아서…

한 시간 동안 아기변기에 앉혀뒀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가 혼자 그 작은 변기 위에서

버텼을 시간을 떠올렸다.


배변훈련은 연습이지만,

아이에게는 몸의 감각을 배우는 시간이다.

동시에 마음의 경계를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경계를 ‘버티게 하는 방식’으로 넘게 하면,

아이는 변기를 ‘연습하는 자리’가 아니라

‘갇히는 자리’로 기억할 수 있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기준부터 세웠다.

감정이 아니라 아이를 기준으로.


“어머니, 그 방법은 조금 위험해요.

배변은 훈련한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니라,

아이 몸이 준비돼야 가능한 거예요.

오래 앉혀두면 아이 입장에서는

그게 ‘연습’이 아니라 ‘벌’로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러면 변기가 무서운 장소로 각인될 수 있고요.”


그리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관계를 깨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집에서는 절대 오래 앉혀두지 않으셨으면 해요.

울거나 몸이 굳으면 그날은

그 자리에서 끝내주셔야 해요.

이건 ‘버티게 하면 이기는’ 문제가 아니라,

‘안전하다고 느끼면 따라오는’ 문제예요.”


단호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단호함 다음에는,

오늘 집에서 바로 할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


“목표를 ‘성공’으로 잡지 마시고,

‘좋은 기억 만들기’로 바꿔주세요.

변기 앞에 3초 서보기만 해도 성공이에요.

옷 벗지 않고 10초 앉아보기만 해도 충분하고요.

성공을 못 해도

‘그래도 시도했네’ 하고 끝내주셔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울면 그날은 종료.

그게 원칙이에요.”


그날 이후 교실에서도 목표를 다시 썼다.


‘변기를 사용하게 하기’가 아니라

‘변기 앞에서 안전해지기’.


변기 옆에 서서 숨을 고를 수 있으면 칭찬했고,

뚜껑을 열어볼 수 있으면 박수를 쳤다.


앉았다가 바로 일어나도 “잘했어”라고 말했다.

아이에게는 그 한 번의 “괜찮아”가

다음 발걸음을 만든다.


배변훈련에서 어른들이 자주 착각하는 게 있다.

말을 잘하는 아이는 더 빨리할 거라는 착각.

하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경우도 많다.

말을 잘하고 표현이

뚜렷한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나 기저귀 좋아.”

“난 아직 싫어.”


귀엽지만 단단한 말이다.

그 단단함 앞에서 어른이 힘으로 밀어붙이면,

배변훈련은 곧 힘겨루기가 된다.


그래서 나는 선택지를 작게 만든다.


오늘은 변기 앞까지만.

오늘은 구경만.

오늘은 앉아만 보기.

아이가 ‘안전’이라고 느끼는 범위 안에서만

다음을 제안한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할 때까지.


매년 배변훈련을 겪으며 나는 다시 배운다.

아이마다 속도가 다르고,

무서움의 모양도 다르고,

용기의 크기도 다르다는 걸.


그리고 어떤 날은 기저귀를 못 떼는 아이보다,

조급해지는 어른의 마음을 먼저

다독여야 할 때도 있다는 걸.


기저귀에게 “안녕”을 외쳤던 그날처럼,

언젠가 아이는 자기 방식으로 또 하나의

작별을 해낼 것이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나는 교실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기다려주고,

닦아주고,

웃어주고,

다시 손을 내미는 일.


배변훈련은 아이가 자라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어른이 어른다워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의 몸이 자라는 만큼,

어른의 마음도 함께 자라야 한다는 걸

그 울음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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