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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여울 Jun 03. 2024

넘어진 김에 쉬어가는 중입니다

프롤로그 

나는 소위 말하는 '알파걸'이었다. 

호주에서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을 하면서 임상에서 인정 받는 것은 물론

호주의 한 간호대의 강사 자리에 합격하여 호주 현지 학생들에게 강의를 시작했다.

연봉 1억이 넘는 제법 안정적인 수입과 내 명의로 된 집을 가진 삶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호주 워홀에서 나름 성공한 이민자의 표본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갓생"을 살고있다고 표현했다.

호주 이민자 생활이 길어진 나는, 아직도 갓생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월화수 대학교에서 9시간씩 강의를 나가고, 목금토일은 병원에서 12시간씩 일을 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꾸준히 PT를 받았으며, 생존을 위한 영어 공부를 지속했으니 

아마 갓생을 살고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와중에 한편으로는 아픈 무릎이 걱정이 되었었다. 

아직 30대인 내가 관절염같은 질환일리는 없다고 생각하며 초음파, MRI 등의 검사를 하고

호주의 매우 느린 공공 의료 시스템을 기다려가며 밝혀낸 원인은 "Wear and tear 로 인한 연골 손상"이었다. Wear and tear라니. 

한국어로는 "닳았다"라는 것인데, 아직 연골이 닳기에는 이른 나이가 아닌가. 


다행히도 산재로 처리가 되었지만, 이 산채 처리로 인해서 나는 매달 매니저와 병원 내 산재팀과의 미팅에 시달려야했다. 매니저와 산재팀은 내게 "휴식"을 권유했지만, 나에게 있어 휴식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는 것과 같았다. 나는 병원에서나, 대학교에서나 해야할 일이 많았고, 아직 가야할 먼 길이 남아있었다. 

휴식을 권유하는 매니저와 휴식을 거부하는 나와의 미팅은 매번 불편하게 끝이 났는데, 

"We am trying to support you.(우리는 널 도와주려고 하는거야)" 라는 매니저에게 

"If you want to support me, just leave me alone and let me work (너희가 날 돕고싶다면, 그냥 일하게 냅둬)" 를 고집하는 나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을터였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는 내가 롤모델로 삼고있는 선배가 있는데, 어느 날 그 선배가 말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번 기회에 조금 쉬는건 어때요?" 


선배의 조언에 감사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아직 넘어진건 아니야. 


통증이 지속되었지만, 일주일에 한번 정도 물리치료를 하러 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나는 주 7일 일을 하는 워커홀릭이었고, 내 커리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병원도, 학교도 어떤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1년 뒤, 부상에 대한 방어기제로 다른 쪽 무릎과 허리까지 아파오기 시작했을때, 나는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나는 넘어졌구나. 


의사에게 소견서를 받아서 병원에 4주의 병가를 제출했다. 

다음 학기 강의 스케쥴이 이미 나온 학교에, 죄송하지만 다음 학기에는 강의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4주의 휴식이 확정되자, 나는 기쁘기 보다는 불안으로 속이 뒤틀렸다. 

휴식으로서 잃게 될 것들이 두려웠지만, 이번에는 선배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넘어지면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려가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넘어진 김에 쉬어가려고한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여러가지 일로 하고 있던 모든 일을 쉬게 되었습니다.. 

아직 마음이 불안하지만, 천천히 '쉼'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서 풀어보고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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