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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 May 17. 2023

Pachinko(파친코)

이 책은 2017년에 나와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22년 Apple 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기로 결정되면서 더욱 대중에게 인지도가 올라간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딱 한 문장으로 소개하라면 '1900년대 초 일본으로 이민 간 한국 가족의 서사이다'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이민진 작가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이고 한 때는 변호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작품의 주된 이슈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의식과 사회적 문제들이다.  첫 번 장편으로는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 (Free Food For Millionaires, 2007년)인데 이 또한 한국계 미국인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리고 파친코는 두 번째 작품이 된다. 그녀의 작품들은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받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의 주인공은 선자이다. 그녀는 1910년대 중반에 훈이와 양진의 딸로 부산 영도에서 태어났다. 하숙을 치는 엄마 (그녀 13세 때 아버지 훈이가 돌아가신다)를 부지런하게 도우며 나름 평온하게 지낸다. 그런데 16세 때, 고한수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임신을 하였는데 그는 유부남에 아이까지 있는 남자였다. 선자는 그의 숨겨진 여인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그냥 혼자서 아이를 낳기로 한다. 그때 그 집에 머물고 있던 선교사 백이삭은 만성적으로 결핵을 앓고 있었다. 그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선자와 결혼하여 그 아이가 떳떳하게 세상에 나오게 할 수 있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삭과 선자는 결혼을 하고 이삭의 형 요셉이 있는 일본 오사카로 온다. 당시 일본의 한국인들은 빈민가에서 살고 있었으며 사회적으로 무시당하였다. 선자와 이삭 또한 그런 환경에서 일본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선자와 이삭은 두 아이의, 노아와 모세, 부모가 되었으며 이삭은 교회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당시 전쟁중인  일본은 기독교를 불법화하였고 이삭은 감옥에 구금된다. 몸이 약한 그는 결국 죽게 되고,  선자는 전쟁의 막바지에서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에서 한수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존하게 된다.


중반부는 전쟁 후 노아와 모세의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오사카로 돌아왔다.  공부를 잘하는 노아는 형설지공으로 와세다 대학에 들어가고 한수는 노아의 교육비 및 생활비를 제공한다. 노아는 한수를 단순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한국인 기업가 (동시에 야쿠자)로 알고 있다가 나중에 그가 자신의 생부임을 알고는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과 연을 끊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편  모세는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파친코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선자로부터 물려받은 성실함과 정직함으로 그는 점점 회사에서 신뢰를 받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여러 개의 파친고 매장을 책임지게 되고 상당한 부를 쌓아 올린다. 오랜 세월의 기다림 끝에 선자는 노아를 만나게 되나 노아는 그날로 자살을 한다. 그 후론 선자는 모든 것을 달관한 사람처럼 살아가게 된다.


노아와 모세의 다음세대의 이야기가 후반부에 전개된다. 모세의 아들인 솔로몬은  일본에서 국제학교에 다니고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영국계 은행의 일본 지사로 오게 된다. 그러나 서양인 상사의 모함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으며 결국은 아버지의 파친코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왜 제목이 파친코일까 ?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일본에서 파친코의 대부로 불리는 마루한의  한국인 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또는 일본에서 파친코장의 90% 이상이 한국인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재일교포의 상징으로 파친코란 단어를 사용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등장인물인 노아와 모세가 파친코에서 일을 하지만, 이런 맥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저자의 인터뷰를 보고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 내 한국인 교포들의 역사가 잘 나타나 있다. 일제강점기 좀 더 산업화된 일본에 가서 돈을 더 벌겠다는 희망으로 가서는 고생을 하고 전쟁을 같이 치르었다. 해방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기대했지만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는 고향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인들과 같이 살지만 일본인으로 살지는 못한다.  저자는 예상을 할 수도 없고 컨트롤할 수 없는 파친코 게임의 속성이 마치 전쟁과 갈등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선택지가 별로 없었던 재일동포의 삶과 닮아서라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박경리 작가의 '토지' 나 에미탠의 'The Joy Luck Club' ,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마커스 주삭 'The Book Thief'도 생각이 났다.  굳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부모님들의 라이프 스토리 또한 이런 서사가 있다. 전쟁과 제국주의 시대. 참 폭력적이고 잔인한 세월이었다. 그러한 시절에는  일반인들의 삶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자신이 속해있던 집단의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말려 들어가 버린다. 이 소설은 재일교포의 삶을 통해 그 잔인했던 세월 속에서 그들이 취했던 다양한 생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양극단의 한수와 이삭 그리고 그 사이의 선자와 노아


이 소설에서 현실적이며 힘이 있는 야쿠자의 보스 한수가 있다. 그리고 그 반대 극단에 이상적이며 선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삭이 위치한다. 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선자와 노아이다. 선자는 한수가 유부남임을 알고 편안히 한수뒤에 숨겨진 여인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박차고  나온다. 고생 가득한 길이지만 그녀는 기꺼이 그것을 마주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길을 이삭이 이끌어준다. 하지만 뒤에서 한수가 그녀를 지키고 있다. 덕분에 그 힘든 전쟁의 시간도 무사히 보냈다. 선자의 머리는 이삭을 향하고 발은 한수를 향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험악한 환경하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기도 하거니와, 선자는 나름 현실인식과 곤란한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추진력이 있는 성격이다. 그래서 현실에 충실하다. 하지만 선자를 현실에 매몰하지 않고 추하지 않게 자존감을 지니게 해주는 것은 이삭의 존재이다.


노아의 마음은 온전히 이삭에 가 있지만 이삭은 너무 일찍 죽었다. 그러나 그렇게 노아가 가고 싶어 했던 와세다 대학을 갈 수 있게 해 준 것은 한수이다. 하지만 노아에게 한수는 야쿠자의 보스일 뿐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신의 생부이다.  노아는 학교를 그만두고 선자와 절연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한수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이삭과의 관계가 없어진다는 두려움이 크지 않았을까? 노아는 학교를 그만두고 혼자서 낯선 도시에서 그 특유의 성실성으로 카지노의 지배인이 되어 성실히 일하여 결혼도 하고 자신의 가족을 꾸리고 평안하게 산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졌지만) 노아는 주기적으로 이삭의 무덤에 찾아간다.  한수를 부정함으로써 이삭과의 끈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엄마 선자가  (한수의 도움으로) 찾아온 다음날 노아는 자살을 한다. 한수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이삭과의 관계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현실은 거리감을 두고 충돌하지 않아야 하는 그 어떤 공간일 뿐이다. 현실에 대한 애정이 없다. 이 현실은 자신의 이상적인 세계를 건드리면 안 된다.


다면적인 인물들, 평면적인 인물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좀 집중력이 떨어졌다. 전체적으로 이민 2대, 3대로 내려가면서 등장인물들이 점점 평면적으로 바뀐다는 느낌이다. 그들의 행동과 결정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고 할까?


1세대의 캐릭터들은 다면적이다. 한수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기도 하고, 아주 잔인하고 냉혹한 깡패의 두목, 그리고 정세의 흐름에  안목 높은 사업가였다. 선자 또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상황에 따라 변신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삭은 단면적인 모습이 있다. 매우 신앙적으로 철저한 순수한 모습 외에 자신의 선택에 대해 회의하는 모습들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선택(선자와의 결혼)은 그 당시 남자들에 비해 상당히 진보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한 점을 여기서는 신앙이란 단어로  다 커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여성을 동등하게 다루었는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은 결혼식을 진행한 목사의 행동과 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의무감/신앙만으로 선자와 살지는 않는다. 둘은 서로 사랑을 한다. 이삭은 자신의 믿는 바를 어린아이처럼 아무런 의심 없이 행하는 사람이다. 선자가 고생하겠구나 하고 짐작이 갔다. 하지만  이삭의 옆에 있는 선자의 모습은 그냥 상상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래서 이삭은 오래 살 수가 없었나 보다. 아무래도 긴 세월 동안 그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전쟁이 끝나고 격동적인 외부 상황이 정적으로 되면서 등장인물들이 가졌던 역동성을 잃는다. 2세대 노아나 모세 모두 성실하다. 카지노에서 일을 하면서 야쿠자나 어떤 불법의 세력과도 엮이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그냥 성실한 공무원을 보는 느낌이다. 그들의 성실성은 마치 산수 계산처럼 정확하게 경제적인 부유함으로 돌아왔다.  


대학생 노아와 40대 노아는 사는 모습은 바뀌었지만 그 내면은 그대로이다. 일반적으로, 20대를 거쳐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40대가 되고 그때는 상당히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많이 달라져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노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3세대 솔로몬 또한 평면적이다. 그냥 부잣집에서 편하게 자란 도련님의 모습이다. 그의 사랑도 그렇고 그의 사회생활도 그렇다. 주체적이지 못하다. 마지막 그의 결심도 결국은 아버지에게 기대는 것 같다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에게 카지노가 어떠한 존재인지 알 수 있는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14세가 되는 생일날 지문날인을 해야 하는, 귀화하지 않은 한국인에 대한 정책에 대한 불쾌감조차 당사자인 솔로몬이 아닌, 모세와 일본인인 모세의 여자친구를 통해  전달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외국인 학교를 다니고 있고 곧 있으면 럭셔리한 생일파티가 열릴 예정이고 관심이 거기에 가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작가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좀 더 캐릭터의 행동과 언어를 통해 형상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의 이런 편협한 감상에도 불구하고, 현재 젊은 세대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20세기 전반의 암울했던, 전쟁과 제국주의의 역사 속에서 생존하고자 몸부림쳤던 선조들의 모습을 엿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으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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