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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 May 29. 2023

Educated (배움의 발견)


이 책의 저자인 Tara Westover(테라 웨스트오버)는 역사학자이며 작가이다. 고등학교까지 공식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고, 독학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브리검 영 대학: Brigham Young University) 영국 케임브리지의 ( cambridge의 Trinity) 대학에서 사학 영역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이 책은 저자가  공교육을 거부하는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서 교육을 받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적은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남들은 너무 당연한 교육의 과정이 이 젊은 여성에게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 책은 2018년에 발간되었다. 그리고 많은 수상을 한 작품이고 사회 유명인사들이 많이 추천한 (특히 미셀 오바마) 책이기도 하다. 유튜브를 검색하게 되면 저자가 여기저기서 인터뷰한 클립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오프라 쇼', '엘렌 (Ellen) 쇼'를 비롯하여 미국 공중파 뉴스시간에도 나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과 담을 쌓은 부모님의 세계 속에 매몰되어 있다가 교육을 통해 나를 찾는 여정


Tara의 부모님은 몰몬교 근본주의 자로서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몰몬 교도 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들은 사회가 이루어 놓은 문명과 시스템에 대하여 모두 부정한다.   아이다호(Idaho) 주의 깊은 산속에서 고철을 수집하며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 교육 및 의료(병원) 시스템, 행정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깊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 7남매를 모두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가족의 몸이 아파도/교통사고가 나도/ 화상을 입어도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심지어 자녀 중 몇 명은 출생 신고도 하지 않았다. 가정 분만으로 출산을 하다 보니 의료기록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나중에 Tara는 행정기관에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기도 했다.


Tara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세계가 전부라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학에 들어간 셋째 오빠 Tyler가  더 큰 세상이 있음을 알려주고 대학에 진학하길 권함에 따라 아버지 몰래 독학하여 몰몬교에서 운영하는 Brigham Young University (브리검 대학)  입학한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식 교육을 받게 된  저자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간을 가진다. 홀로코스트(The Holocaust)가 무언지 몰라서 주변 학생과 교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본인도 또한 어리둥절하였던 일화는 그 혼란스러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혼란은 육체적 고통 및 두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지난 시절 자신과 부모님(특히 아버지)의 왜곡된 종교적 신념 때문에 자신과 가족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왔는지 알게 되고 동시에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신의 세계관을 지배해 왔던 가족들이었기에 그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한다.


그녀는 이전의 자신과 교육을 받은 이후로 새로워진 자신이  공존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인식하고 영국으로 건너 가 자유로운 분위기의 케임브리지에서 역사를 공부하여 석사를 받는다. 하버드에서 잠시 visiting fellow로 있다가 다시 케임브리지에 가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아버지로 받은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아를 확립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가족과는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결별을 하게 된다


배움,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는 도구


이 책은 교육보다는 성적과 그 효용성에 몰입되어 있던 한국의 교육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배움의 본질을 생각해 보게 한 책이다.  배움은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이다. 어떤 사물의 이치를 알아가기도 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알아가기도 하고,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대하여 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우선되어야 할 배움은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내가 끌리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내 주변의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어떠한 시각으로 해석하기를 원하는지 등등.  그럼으로써 내가 독립된 하나의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건에 대하여 해석하고 판단을 내리는 존재라는 것, 내 가치를 바탕으로 내리는 결정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배움의 가치를 Tara가 아버지의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신의 세계와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배움을 통해 자신에, 인간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남의 시각 (아버지의 시각)이 아닌 자신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키우고, 나아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의지를 얻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는 고통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지식의 사회적 속성


이 책을 읽다 보니  아버지의 행동을 통해 역설적으로 지식/배움의 사회적 파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식은 사회적 파워의 원천이 된다.  역사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소수의 사람들이 지식으로 사회적인  파워를 지니게 되었던 사회에서 점점 일반인들이 지식에의 접근 가능성을 넓혀 가는 쪽으로 흘러갔다고 할 수 있다. 루터가 종교개혁 시작하면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서 일반사람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라틴어를 공부한 신부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형성된 종교관의 모순들이 인식되기 시작하는 것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아버지는 자신이 만든 종교관 안에서 스스로 신의 뜻을 집행하는 사제라 주장하는 모습이다. 어떠한 외부의 지식이 들어오는 날 그가 만든 세상을 파괴될 수 있다. 당연히 교육도, 의료 시설도 철저히 거부한다. 이러한 문명이라는 것이 결국 지식의 응집이니까.  철저히 자신의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배움에 접근할 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낮추어야 한다.


배움에의 접근 가능성이 높은 사회

 

나는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들의 어머님들이 생각났다. 사실, 나와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이면서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정식교육을 받지 못하셨던 어머님들을 보는 것이 그다지 희귀한 일이 아니다. 호남평야의 만석 부자셨던 나의 외할아버지나, 홍천의 박판사댁의 후예였던 시어머니의 아버님은 당신들의 딸들을 학교에 보낸다는 것을 생각도 못 하셨다. 나의 양쪽 어머니들은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면서, 또는 오빠들이 글을 읽는 것을 보면서 어깨너머로 글자를 익혔다. 그래서 우리 시어머님은 문자를 보내실 때 띄어쓰기를 안 하신다. 문법에 대한 인식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숫자나 구구단도 남자 형제들이 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서 익히셨다고 한다.  교육에의 접근 가능성이 0%에 가까운 사회적 환경으로 인함이다. 그분들이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분명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셨을 분들이다.


한편 내 친구는 집이 가난해서 중학교를 진학 못하고 서울에 있는 양장점 보조원으로 갔다. 그 후 그녀는 공장으로 옮겨서 야간으로 중 고등학교 마치고 대학도 진학하여서 지금은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내 어머님들과 달리 그녀는 교육에의 접근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 사회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Tara는 사실 그 접근성이 100%인 사회에 속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만든 사회는 0%였다. 다행히  한 오빠의 이끌어 줌으로 인해 그녀는 그 0% 사회의 울타리를 넘어왔다. 덕분에 다른  Tara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울타리를 넘기가 참 쉽지 않다. 누군가가 앞서서 이끌어주지 않으면. 38선도 아닌데.


경고: 감동은 크지만 읽기에는 쉽지 않은 책


이 책은 다 읽고 나면 매우 감동이 크지만 읽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책을 덮고 심호흡을 하였던 부분들이 많다. 먼저, 어릴적 아버지와 함께 살던 이야기가 나올 때는 가슴이 답답하여 책을 덮은 적이 많았다. 그의 맹목적인 신앙/고집으로 인하여 가족들이 교통사고를 당해도 병원도 못 가고,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전혀 고려를 하지 않는 주거환경 및 작업환경에 대한 이야기에 가슴이 답답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치면서 부모님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아를 확립하면서도 부모와의 관계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으로 인하여  갈등하는 부분들도 소화시키기 힘들었다.


마침내, 그녀가 하버드에서 연구할 때 부모님이 오셔서 그녀의 신앙을 확인하고자 할 때, 부모님을 실망시키기 싫은 마음에 갈등하다 자신은 부모님의 신앙에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할 때 내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부분을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읽으면서 쉰 한숨의 크기만큼의 큰 감동을 준다.  우리가 공부라는 단어를 통해 그냥 일상재처럼 소비해 버린 배움의 순간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를 깨닫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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