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불편한 편의점' 감상문을 쓸 때 자꾸 이 책이 생각났다. 아마 불편한 편의점이 코로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균 (Germ)과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가장 흥미롭게 설명해 준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책은 리뷰할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책이 교양서적보다는 학술적 서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플랫폼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한 논평, 논의한 것을 검색하였다. 보통 자신의 직업이나 관심 영역에 집중하여 논의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이 나에게 준 인사이트 (insight)가 무엇인지 중심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20년 만에 완독 한 책 (ft. 최고의 수면제)
개인적으로 이 책을 완독 하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보게 된 것은 남편이 1998년에 퓰리처 상을 받은 책이라며 읽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는 이 책을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읽는데, 거의 1.5페이지 정도 읽고는 잠이 들었다. 잠자는 데는 최고의 책이라고 하였다. 어쨌든 그는 1년 반 만에 책을 마쳤다. 그런데 나는 20년이 걸렸다. 나도 남편의 추천에 이 책을 읽어 보았는데 영 진도가 안 나갔다. 정말 수면제로 딱이었다. 문제는 다음날 전날 읽은 것을 이어서 읽으려면 앞에 읽은 내용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늘 그 자리였다. 그러다 몇 년 전에 유료 독서 클럽에서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책 읽기 특집'을 하는데, 이 책이 포함되어 있어서 신청하여 한 달 만에 읽어 버렸다. 결국 나는 이 책을 읽는데 20년이 걸린 셈이다. 읽고 나니 아주 속 시원했다. 그. 런. 데. 이게 뭐라고! 상 주는 것도 아닌데 돈까지 써가며 이 책을 읽었을꼬? 결국 책과 자존심 싸움을 벌인 꼴이 되었다.
개요: 각대륙마다 다른 문명의 발달의 속도 차이는 왜?
이 책은 "왜 각 대륙들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생겨 유럽의 문명이 지배하게 되었는가?" 하는 뉴기니아 친구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가설은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래의 그림은 저자의 논지를 보여주는 자료인데, 하나의 문명이 발생하였을 때 유라시아는 동서로 길게 뻗어서 기후나 토양이 비슷하여 문명이 옆으로 퍼져나가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예. 새로운 농작물). 하지만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져 있어 새로운 농작물이 한 곳에서 발생해서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는데 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유럽은 여러 민족이 오밀조밀 몰려 살고 경쟁도 심했던 곳이라 역설적으로 문명의 확산 및 발전 속도가 빨랐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정한 민족이 이렇게 선사시대로부터 환경적으로 유리한 지역에서 살게 된 것은우연이라는 것이다. 민족별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닌 것이다. 이 우연이 오늘날 문명의 우열을 결정 지웠다는 것이다. 만약에 남북아메리카 또는 아프리카 원주민과 유라시아의 민족들이 서로 거주지역이 바뀌었다면 오늘날은 인류의 문명은 반대의 모양새가 되었을 것으로 단정한다.
사실 그의 논지는 이처럼 간단하다. 이 책이 방대해진 것은 저자가 그것을 증명하고자, 시간적으로 만 삼천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 (문자, 농작물, 가축, 무기)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면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간적으로 각 대륙의 문명의 발전사를 학자다운 집요함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왜 제목이 총. 균. 쇠인가?
이 책의 제목이 매우 특이하다. 저자는 사냥에서 농업으로 전환에 일찍 성공한 국가들이 결국은 인류의 문명의 지배자로 되었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들은 총 균 쇠로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를 열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총과 쇠는 알겠는데 균은 왜?.
3장에서 매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해준다. 에스파냐 (스페인)의 피사로 원정대가 잉카제국을 일방적으로 멸망시킬 때 주된 도구는 총보다는 균이었다고 한다. 전염병의 대부분의 균은 동물로부터 온다. 홍역, 결핵, 천연두는 소로부터 백일해는 돼지로부터, 페스트는 쥐로부터 오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사람들이 처음 동물들과 접촉을 할 때 이 균으로 인해 병을 얻게 되고, 전염이 되고, 지나고 나면 그 균에 대한 항체가 생긴다.
유럽사람들은 말을 일찍부터 가축화해서 말로부터 오는 균에 항체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남미의 잉카인들은 이때 유럽사람들에 의해 말을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잉카인들의 사망자의 대다수가 총에 맞아서보다는 '말'로부터 균에 의한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균이 상당히 다른 민족보다 우위를 취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라고 할 수 있다. 농업화 과정에서 인간들은 가축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동물들의 균으로 인한 전염병을 다른 지역보다 먼저 경험하였다. 그래서 농업화가 먼저 된 지역들은 다른 지역보다 우위를 접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균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 다양하게 보여준다. 한 예로 사람의 혈액형은 원래 O형 하나뿐이었는데 동물로부터 오는 균에 감염되고 항체가 행기는 과정에서 분열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이 과정을 경험했고 하고 있다. 균 하나로 인해 인간의 신체에 변화가 오기도 하고 나아가 소통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에 전환이 오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감명의 포인트는 저자.
나에게 이 책의 감동 포인트는 저자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진화 생리학자이며 인류학자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현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교수이다. 이 책을 보면 지리학자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유명한 저서로 '제3의 침팬지 (The Third Chimpanzee)' '섹스의 진화 (Why is Sex Fun) ' '문명의 붕괴 (Collapse)' 등을 든다. 1991년에 '제3의 침팬지 (The Third Chimpanzee)로 상을 여러 번 수상하면서 깊이 있고 박식한 제레미 다이몬드만의 매력으로 넓은 독자층을 형성하였다. 1998년에 '총. 균. 쇠"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인지도가 대중적으로 올라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제일 먼저 나를 잡아 끈 것은 저자의 방대하고 깊은 지식이다. 처음에 이 책이 좀 장황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저자가 설정한 가설을 증명하는 과정이 철저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지원해 주는 역사적 사실/유물을 제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증거가 믿을 만한 것이라는 것을 또 증명한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과거의 사실을 고증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기도 한다. 또한 한 유물을 고증하는 방식에 대해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기에 주요 방식을 설명하고 자신이 선택한 방식이 왜 가장 적합한지 설명한다. 그래서 처음에 좀 지루한 면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이러한 태도에 익숙해지면서 그가 설정한 가설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증명하려는 그의 집요하고 열성적인 태도가 감동스러웠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신뢰가 갔다. 그리고 그의 연속되는 자신의 논지에 대한 증명, 그리고 그 증명에 대한 증명의 과정으로 인해 인류의 도도한 역사적 흐름 속에 내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현재 우리 삶에 있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을 오랜 세월을 두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실험하고 경험하면서 오늘 우리의 일상의 환경이 조성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에 대해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들이 제시된다. 예를 들면 오늘날 우리 식생활의 기본이 되는 가축이나 곡물들도 예전에는 야생이었으나 인간들이 끊임없이 가축화하고 농업화하려는 실험과 경험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얼룩말을 가축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였으나 왜 실패하였는지 등등 읽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현재도 우리는 그렇게 주어진 것을 우리에게 최적화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문명이라 쓰고 기술이라 읽는다
내가 하던 일이 경영정보시스템 분야였던지라, 나는 개인적으로 이책의문명이라는 단어가 Technology (기술)이라는 단어와 동일어로 해석되었다. 구석기시대에는 불의 사용은 오늘날 디지털 기술에 버금가지 않았을까? 야생식물과 동물들을 농업화, 가축화에 성공한 기술 또한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꾼 대단한 기술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문명이라고 통칭하였고 나는 이를 기술이라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문명/기술이 발전하는 데 있어서는 시작보다는 확산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요지이다. 앞의 그림에서 보이듯이 유라시아가 새로운 기술의 확산에 유리하기 때문에 오늘날 앞서가는 문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확산이라는 개념은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지리적 확산에 중점을 두었지만산업별 확산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융합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금속활자의 경우 고려가 먼저 개발하였지만, 조선시대 후기까지 이는 그냥 폐쇄된 기술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기술은 인쇄술로 확장 발전을 하였다. 인쇄술은 활자기술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기술(종이, 잉크, 인쇄기)등이 융합된 것이다. 인쇄술의 발달은 사람들이 책에 좀 더 싸게,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고 결국은 지식의 확산이 이전에 비해 훨씬 쉬어지고 빨라졌다.
예전에 정통부나 산자부 프로젝트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적이 가끔 있었다. 그때 발표하는 업체 중에 흔히 '세계최초의 기술' 또는 '한국 최초의 기술'을 자신들의 가치로 들고 나오는 업체들이 있다. 이런 경우 나는 '당신의 기술이 사용자들에게 주는 가치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로 인해 사용자들의 행동양식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 것인가'를 늘 질문하였다. 이 책이 나에게 준 insight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정부 보조금 타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그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주로 교과서적인 답변을 하였다. 가끔 이제 막 창업한 사람들에게 부질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어 이 질문을 계속했었다.
저자의 논지의 중심이 되는 지리적 요인이 사실상 디지털 시대에 적용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저자가 제시하는 단어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전체적으로 인류의 역사에 대해 통찰할 수 있고, 인간이 문명을 만들기 시작한 그 시초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전과 발전의 연장 선상에 내가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돈을 내면서까지 책을 읽어도 (나처럼 ㅜㅜ)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