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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 Sep 17. 2023

책 리뷰: 시선으로부터

저자: 정세랑, 2020

한 달 동안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 가면 한국 소설책을 사 오고 싶었다. 그런데 유튜브가 독심술이 있는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을 설문한 결과에 대해 안내하는 비디오 클립을 추천해 주었다.  Best Five로 총 7편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 내가 아는 것은 박경리의 토지와 양귀자의 모순이 있었고 나머지는 모르는 소설 들이었다. 그중에 나의 시선을 가장 끌어당기는 소설이 바로 이 '시선으로부터'였다. 


제목을 보고, 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어떤 여자의 내적 성장기인가 짐작했는데, 읽어보니 주인공이 이름이 심시선이었다. 일단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런데 실제로 이 책의 주인공 심시선이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보내는 편협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살려고 했던 사람이다. 제목부터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작가의 유머를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여성 중심의 가계도 

소설을 펼치면 맨 첫 장에 심시선의 가계도로부터 시작한다. 심시선은 두 번 결혼을 하였고 첫 번째 결혼에서 세명의 자녀와 4명의 손주를 두었으며, 두 번째 결혼에서는 남편의 전처소생 1명 그리고 손주 2명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소설의 등장인물이 많으니 참고하라는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작가가 굳이 소설의 첫 장을 심시선 중심의 가계도로 시작하는 것에 대하여 심시선이라는 인물이 보통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궁금증을 자아낸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런데 소설 시작부터 심시선은 죽고 없다.  이 소설의 내용은 심시선의  10주기가 되는 해 큰딸이 하와이에서 그녀의 제사를 딱 한번 지내기로 제안하고  20여 명의 시선의 자식과 사위,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이 하와이로 간다. 그리고 자신이 시선에게 바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제사상에 올려놓기 위해 각자 자신들의 문제와 시선과의 추억을 연결시켜 찾아오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의 이러한  구성이 매우 흥미롭다. 소설의 각장은 처음에 예전 시선이 한 인터뷰, 강연록, 기고글, 대담글, 등을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시선을 알아가게 된다 시선은 한국전쟁 때 살기 위해 하와이로 이민을 갔고 우연히 독일인 화기 마티아스를 만나 그와 함께 독일로 가서 그의 문화생인 듯 연인인 듯 아닌 듯 살게 된다. 그러면서 마티아스의 가학성과 집착성을 알게 되고, 그녀는 그로부터 떠나려 하나 그의 자살로 그녀는 독일 국민이 사랑하는 화가를 망친 요부가 되어 버린다. 친구의 도움으로 그녀는 간신히 한국으로 돌아와 그림이 아닌 글만 쓰며 문인으로 살아간다 (이런 점은 나혜석의 삶을 모티브로 삼은게 아닌가 추측된다).  


또한  시선의 자식들과 손주들이 시선을 기릴 물건들을 탐험하면서 그들은 과거 시선과의 같이 했었던 순간들을 기억하는데 그들에 비친 시선은 약간은 다른 모습이다. 그러면서 시선에 대해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읽다 보면, 시선은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이 소설에서 강렬하게 살아 있다. 


경쾌한 그녀 

 나는 책을 읽으면서 시선이 경쾌한 여자로 느껴졌다. 책의 각장 첫머리에 제시되어 있는 그녀의 글에는 사실, 몇 장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회상은 대부분 어둡다. 그녀의 글에서 "죽음의 냄새"가 난다는 평이 언급되어 있다. 주로 마티아스와의 관계, 그리고 어린 시절을 보낸 하와이에 대한 그리움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경쾌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가 전통적인 제도와 관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원하는 것을 찾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경쾌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일단 그녀의 발언이 과감하고 정직하다.  한 예로, 결혼의 필수 요소로 "폭력성이나 뒤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육체적인 보다는 대화나 이해가 더 중요한지 않겠느냐지 질문에 "대화는 친구랑 하는 것이지 남편이랑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녀가 70대 노인이라고는 짐작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시선의 시대의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친 세대) 여성의 삶의 모습은 그냥 폭력적인 시대의 희생양이 되거나, 강인하게 살아남는 모습으로 프레임화 되어 있다. 채만식의 '김약국집 딸들'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항상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시선은 이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경쾌한 전후 세대의 여성상은 나에겐 매우 새롭다. 그런데 가끔은 작가가 만든 시선은 노인네 몸에 20 ,30대의 영혼을 집어넣은 것 같은 느낌이 나기도 하는데 이건 내가 이전 프레임에 너무 익숙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 소설이 시선의 관점에서 진행되었다면 그녀의 삶은 갈등과 고민, 분노, 안타까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녀가 사회에서 당하는 어려움은 정제된 글로, 그리고 한 발 건너서 후손들의 기억 속에 편집되어 제시되기 때문에 일단은 그 강도가 약하다. 그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녀는, 제사를 반대하고, 집안일에 얽매이지 않고 (그래서 아이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누가 남존여비적인 발언을 하면 쏘아붙이고, 예술인들과 즐기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주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신경을 써주고  긍정적으로 손주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당시 한국사회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삶을 사는 유명인이었고 그로 인해 자식들이 손해 본 면이 많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아 있어 그 강도가 약하게 남아 있다. 이러한 구도가 독자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게 하는 중요한 요인인 것 같다. 


제사의 원형을 찾아서 

평소에 제사를 반대하던 시선의 부탁으로 그의 자식들과 손자들은 10주기 때 하와이에서 제사인 듯 제사 아닌 ^^;  제사를 지내게 된다. 시선의 이 기발한 아이디어 또한 시선의 경쾌함을 보여주는 매력 중 하나였다.  제사의 원래 목적이 죽은 사람을 기리는 것이었는데 너무 형식적으로 변형이 되었다. 그리고 가족 간의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죽은 사람을 위해 산사람들이 고생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고인과 나와의 관계에 대하여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우리의 축제가 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축제를 통해 고인은 우리 마음속에 태어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당장 나도 죽을 때 이런 유언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해 본다. 


이 제사는 이 소설의 전개를 구성하는 기본 구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명에 가까운 시선의 후손들이 각자  시선과의 추억을 기리며  자신들의 삶의 이슈를 풀어보는 과정을 소설은 풀어내고 있다. 이 많은 스토리를 담는 과정에서 시선의 이야기가 잡아끌던 집중력이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아마 스토리에 잔가지가 너무 많은 탓도 있겠으나, 그들의 삶이 시선만큼 극적이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나는 작가가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구성이나 스토리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정세랑 작가가 SF성향의 작품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는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작가의 영특함이 시선과 그 후손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곳곳에 게임 속의 두더지처럼 수시로 고개를 내밀어 독자들의 흥미로움을 잃지 않게 하는 신선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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