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괜찮아 Jun 05. 2024

머세드 텃밭보고서

2024년 5월

7월에 이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샌프란시스코에 매우 가까운 도시로 간다. 이제 곧 이 텃밭놀이도 그만두어야 한다.  아침마다 물을 주는데 힘이 빠진다. 잡초도 뽑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 내가 이렇게 텃밭을 가꾸는데 재미를 붙일지는 몰랐다. '사서 먹는 게 더 싸게 먹히는데' 하면서 효율성 없는 노동을 거부하였었다. 하지만 텃밭을 가꾸는 행위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이 있는 것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성장의 순간을 같이하는 즐거움을 준다. 


어렸을 때, 엄마는 뒤뜰에 오이, 마늘종, 가지, 고추등 갖가지 채소를 키우셨다. 여름에는 그 밭에서 나는 채소로 대부분의 식생활을 해결하였던 것 같다. 나는 아침마다 텃밭에 물을 줄 때마다,  엄마가 채소밭에 물을 주실 때 활짝 웃으시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계시지 않은 그리운 사람. 뭉클함과 아쉬움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때 엄마가 텃밭에서 일을 하실 때 좀 도와드릴걸. 그 무슨 대단한 공부를 한다고 모른 척했는지.... 


시어머님도 당신 집 주변의 빈 땅만 있으면 온갖 채소를 키우신다.  배추나 파는 물론이고, 고추, 깨, 옥수수, 감자, 고구마.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연세가 아흔이 돼 가는데도 당신에겐 채소를 가꾸는 것은 그냥 하루에 밥 세끼 먹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다. '본인만 부지런하면 손바닥만 한 땅을 가꾸어서도 굶지 않고 살 수 있는거구나' 하는 지혜를 주신 두 어머님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한국이나 머세드나 5월은 햇살의 계절이다. 그 햇살을 받으며 식물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성질이 제일 급한 놈들은 토마토이다. 모종을 살 때 보았더니 서양에서 워낙 많이 먹는 식물이라 그런지 미국의 인종구성처럼 종류와 색상이 다양했다.  전혀 예상을 못했던 검은색 방울토마토 (사진 5) 마치 포도 같다.  토마토 바닥은 처음에 녹색이었다가 점점 자주색으로 바뀌고 있다. 구글링을 해보니 영양이 매우 풍부한 토마토라고 한다.  아침마다 토마스 (우리 집 토마토는 다 이름이 있다)를 만나는 것이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처음엔 고추인가 하고 고개를 상하좌우로 돌리며 확인하던 로마토마토(토니: 사진 4)) 또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토순이와 토랑이는 (사진 2 사진 3) 우리가 익숙한 방울토마토와 전통적인 토마토이다. 그런데 토식이(사진 1)는 토마토치곤 매우 매끈하다. 열매만 보면 토마토라고 생각 못 할 외모이다. 토마토 세계의 아이돌이 될 상이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익어가며 자신의 속에 있는 색상을 내뿜는 날들을 기다린다. 



위: 좌로 부터 아이돌 토마토, 방울 토마토, 토마토,               아래: 로만토마토, 블랙토마토



그다음에 열일하는 것이 고추들이다. 고흐 씨(사진 3)가 제법 자란 것 같지만 내 경험상 아직 멀었다.  멕시칸 고추들은 정말 크다. 고갱 씨가 고흐 씨의 뒤를 따르고 있다. (사진 3) 뒤쪽에 있어 햇살을 덜 받아 그런가 보다.   고향씨 (사진 2)는 피망이다. 한번 얼굴내밀기가 힘들지 한번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하면 쑥쑥 그 성장세가 무섭다. 아직 다른 4개의 고씨 가족은 아직 이제 꽃이 시들고 곧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아침마다 나에게 상쾌한 향을 제공해 주었던 민트 삼 형제 (사진 5) : 페퍼민트, 스페어민트, 그리고 스위트 민트. 아침마다 이들을 조금씩 따서 레몬과 함께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향이 훌륭한 차가 된다. 그 차로 하루를 시작한다. 고기 요리할 때 넣으면 만사형통인 로즈메리와 타임(사진 2, 4). 또한 샐러드 할 때 그 향을 담당해 준 바질 (사진 3), 그리고 차이브(사진 1), 실제로 먹어보니 향이 전혀 달랐지만 모양이 비슷해서 부추가 필요할 때 대신하였다.  정말 고마운 아이들이었다. 아마 내가 어디에 살든, 어떤 형태의 흙이든 (화분이든, 화단이든) 이 아이들은 다시 키우고 싶다. 


위: 좌로부터 차이브, 타임, 바질,                     아래: 좌로부터 로즈마리, 민트삼형제


그런데 벌써 이별을 해야 할 아이들이 생겼다. 고수(사진 3)와 카모마일(사진 1) 적상추(사진 2)가 웃자랐다. 고수는 올해 아보카도 토스트나, 과카몰리 만들면서 자주 먹던 고마운 향채이다. 이제는 꽃을 피우고 은퇴 의사를 밝힌다. 우리 집 밥상의 야채의 대표주자로 활약하였던 적상추, 또한 자신의 임무를 다하였음을 고한다.  카모마일은 꽃을 피우면 뽑아서 말려서 차로 마시면 된다고 하였다. 가까이 가면 향이 참 좋다. 향으로 자신을 남기는 운명,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6월 말 전에 텃밭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째 보고서였는데 마지막 보고서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